20일 저녁 <문화방송>(MBC) 라디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한 성기선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왼쪽). 유튜브 갈무리
네 차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관장한 성기선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초고난도 문항(킬러문항)을 내려서(줄여서) 중난도·고난도 문항을 늘리면 중위권 학생들은 정말 쩔쩔매고 사교육이 더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2024학년도 수능 출제와 관련해서는 “가장 역량이 뛰어난 분들을 모시고 출제를 해야 하는데 만약 문항을 어렵게 냈다고 출제위원장을 압수수색하고 이런 분위기로 가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성 전 원장은 20일 저녁 <문화방송>(MBC) 라디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에 나와 이같이 말했다. 성 전 원장은 2017년 10월31일부터 2021년 2월18일까지 10대 평가원장을 맡았다. 역대 평가원장 11명 가운데 8명이 중도사퇴하는 가운데 성 전 원장은 임기를 다 채운 3명 중 1명이다.
성 전 원장은 “9등급으로 학생을 분류하는 수능 체계가 교육적으로 옳지 않고 향후에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지금 주어진 조건 속에서는 초고난도, 고난도, 중난도, 저난도 문항을 분포시켜야 한다. 성취도 차이가 나도록 해야만 지금의 대입제도에서 정시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킬러 문항’이라고 불리는 초고난도 문제를 배제하면서도 변별력을 확보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방침을 두고는 “말이 안 된다”면서도 “변별을 위해서 초고난도 문항을 내리고(줄이고) 중난도, 고난도 문항을 확 늘릴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 전 원장은 “그러면 중위권에 있는 학생들은 정말 쩔쩔매게 되어 있다. 이른바 ‘불수능’은 초고난도 문항 한두 개 때문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어려울 때 (학생들이) 느끼는 체감난이도는 훨씬 더 강하다(높다)”고 짚었다. 특히 중상위권, 중위권 학생들은 중고난도 문제라고 하면 수학을 훨씬 더 어렵게 생각하는데 그러면 사교육이 더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게 성 전 원장의 주장이다.
‘킬러문항’과 사교육 증가를 연결시키는 정부의 논리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성 전 원장은 “(문제가) 어려워서 사교육이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근본적인 학벌사회, 대학 서열주의 문제 때문에 불안해서 (사교육을)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이 펴낸 ‘교육에 대한 국민 인식과 미래교육정책의 방향’ 보고서를 보면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난 20년간 동일했다. 2001년 조사(30.5%)와 2021년 조사(24.3%)에서 학부모들은 ‘남들이 하니까 심리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에’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2021년 조사 선택지에는 2001년 조사에 없던 ‘남들보다 앞서 나가게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추가됐는데 이를 꼽은 학부모도 23.4%에 달했다. 절반에 가까운 학부모가 타인을 의식한 불안과 경쟁심리 등에 근거해 사교육을 시킨 셈이다.
2024학년도 수능 출제위원 섭외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성 전 원장은 “그 해에 가장 역량이 뛰어난 분들을 출제위원장, 검토위원장, 영역별 출제위원으로 섭외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만약에 출제(위원으로) 잘못 들어갔다가 문항 어렵게 냈다고 하면 출제위원장 압수수색 들어가고 이러면 안 되지 않냐”며 “그런 분위기로 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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