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초등학교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신나게 뛰놀고 있다. 상주초 제공
전교생이 23명에 불과했던 초등학교가 57명으로 불어났다. 그 옆 중학교는 30명대였던 전교생이 90명으로 늘어났다. 근처 고등학교는 정원이 넘는 지원자로 떨어지는 학생들도 있다. 학령기 인구 감소로 서울에 있는 초·중·고등학교도 문을 닫는 상황에서, 지방에 있는 학교의 학생 수가 늘어나는 것은 ‘기현상’이다. 경남 남해군에 위치한 상주초등학교, 상주중학교, 남해보물섬고등학교 이야기다.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전국의 부모들이 이들 학교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정한 한려수도를 내려다보는 이 학교들 근처에는 그 흔한 학원도 전혀 없다. 아이들은 입시 교육이나 사교육 대신 천혜의 자연과 교감하고 마을공동체 속에서 성장하며 자신의 진로를 찾아간다. 이종수 남해상주 동고동락협동조합 이사장은 “지방의 대안학교들은 기숙형이 많아서 부모들은 아이들만 학교로 보내는데, 여기는 부모들이 함께 와서 터전을 잡고 살아가면서 학교와 마을이 살아나게 된 경우”라면서 “먼저 와서 살아본 가족들이 이렇게 귀농·귀촌해서도 살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고 그게 입소문이 퍼지면서 점점 더 많은 가족들이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급감하던 남해 상주 인구 수는 전입 가구들이 늘면서 인구 감소 정도가 완화되고 있다. 많은 가정들은 아이들을 성인으로 키워내고도 계속 남아서 살고 있다.
부모들도 배우고 성장하는 상주초등학교
상주초등학교는 2021년 3월 기준 23명이었던 재학생 수가 현재 57명으로 거의 3배 늘었다. 이는 근처 상주중학교가 상주초등학교 출신 학생을 우선으로 지원받기 때문에 전학생이 늘어난 덕분이다. 또 경상남도와 도교육청이 손을 잡고 ‘작은 학교 살리기 사업’ 예산을 투입해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해주면서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자연을 닮아가고 마을과 함께하는 상주초’라는 문패답게 아이들은 자연과 마을이 깃든 특색교육을 받는다.
우선 초등학교에서 5분만 걸어가면 바다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바다와 해변은 아이들의 배움터이면서 놀이터다. 아이들은 해변에서 맨발걷기도 하고 바다 수영도 배우고 요트와 보트 등 다양한 해양레저활동을 즐긴다. 모내기부터 시작해서 우렁이 농법을 배우고 허수아비를 세우고 벼를 베고 수확한 쌀로 떡을 만들기까지 1년간 진행하는 ‘어린이 농부 프로젝트’도 이 학교만의 프로그램이다. 남해 승마장에서 배우는 승마 프로그램도 눈길을 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하교한 뒤에 ‘상상놀이터’로 몰려가서 저녁까지 시간을 보낸다. 상상놀이터는 학원이 없는 이 지역 아이들의 돌봄을 책임지는 곳이다. 동고동락협동조합이 만든 이곳에서 아이들은 책도 읽고 놀기도 하고 해변에 나가 쓰레기를 환경활동도 벌인다.
사교육 스트레스 없이 자연 속에서 자라면서 건강한 돌봄 문화까지 있다는 소식에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여러 지역에서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먼저 온 가족들이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데리고 오기도 했다. 부모들은 이곳 마을에서 펜션이나 카페, 식당을 차려서 생업을 이어가기도 하고 학교에서 방과후 강사 등으로 일하기도 한다. 다양한 지역에서 온 부모들끼리 서로 융합되지 못하면 타향살이가 쉽지 않은데, 선배 부모들이 후배 부모들의 적응을 위해 돕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학부모 동아리가 5개나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고. 학교에서 부모들을 위한 평생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하남칠 교장은 “전국에서 오는 학교이다 보니 학부모들의 문화가 굉장히 중요한데, 학부모들이 학교와 마을을 살리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덕분에 인기 학교로 자리잡게 됐다”고 설명했다.
해변가의 환상적 위치, 상주중학교
은모래해변에 위치해 있어 파도 소리가 들리는 상주중학교는 2015년에 경남 최초의 대안교육 특성화 중학교로 지정된 학교다. 30명대로 급감했던 학생 수는 대안교육 특성화 중학교로 지정되자 90명 정원을 다 채우게 됐다.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려든 탓이다. 인근 상주초등학교 출신에게 우선적인 지원권을 주자, 상주초등학교 학생 수도 급증하게 됐다. 상주초등학교 다음으로는 경남 지역 학생, 비경남 지역 학생 순으로 지원 자격을 주고 있다.
교육과정은 일반적인 중학교 교육과정을 기본으로 자율적이고 자치적인 프로그램이 더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특색 교육은 다양한 이동학습이다. 1∼2학년 학생들은 지리산 종주와 남해 바래길, 제주 올레길 등을 걸으며 배운다. 올해는 일본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3학년 때는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이동학습 계획을 짜서 떠나며 교사들은 조력자의 역할만 한다. 몽골 울란바토르의 뉴에라 국제학교와 교류협약이 체결돼 있어서 몽골로 10박11일 이동학습을 떠나기도 한다.
전교생과 교사들이 함께 모여서 하는 공동체회의에선 교사와 학생이 동등한 발표권와 의결권을 가진다. 매주 열리는 공동체회의에선 학교 규정이나 학교에 대한 건의사항부터 기후위기 문제까지 폭넓게 논의된다. 공평하게 돌아가며 사회도 보고 발표도 하는 덕에 아이들의 표현력과 발표력, 자기주도성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인턴십을 통한 배움’이라는 뜻의 ‘LTI 프로젝트 학습’ 또한 이 학교만의 특색 있는 프로그램이다. 학교 밖의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서 진로를 모색해보는 프로그램이다. 예컨대, 상주초등학교 아이들을 돌보는 상상놀이터나 상주초 유치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기도 하고, 학부모들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바리스타 활동을 하거나 빵을 굽기도 한다.
남해의 자연 환경을 백분 활용하는, 바다 낚시 수업이나 다랭이논 농사 체험 등도 아이들을 설레게 한다.
전교생이 시를 써서 시집을 펴내기도 하고 방과후 동아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남해보물섬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라이딩을 다니는 MTV 자전거 동아리 등 20여개 동아리들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조용순 교장은 “보통 중학교에는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많지만 우리 학교에는 그런 친구들이 거의 없다”면서 “아이들이 행복한 것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많이들 얘기한다”고 말했다.
남해의 보물, 보물섬고등학교
지난달 보물고등학교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4일간 해양수업을 받았다. 요트와 바나나 보트도 타고, 갯벌 체험과 서핑도 했다. 바다 수영도 배우고, 바다속 7m까지 내려가는 프리다이빙도 배웠다. 모든 과정은 해양 전문가들이 지도했다. 수업 중간중간 해양 환경 캠페인도 벌이고 쓰레기도 줍고 근처의 귀농 청년들도 만났다.
지난 2021년 남해에 문을 연 남해보물섬고등학교는 기숙형 공립 대안학교다. 학년당 15명씩 전체 정원 45명 학생은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 일반 교과도 배우면서 농사, 연극, 사진, 춤, 목공, 해양수업 등 대안 교과도 배운다. 아이들이 가장 열광하는 것은 위의 해양수업이다. 이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접하기 어려운 종합적인 해양 프로그램이다. 국내외 이동학습도 많다. 지금까지 남해, 제주도, 울릉도, 서울 등지로 여행을 다녔고 2학기에는 일본으로 해외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3학년 때는 각자가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 체험여행을 다닐 예정이다.
정원은 45명이지만 동아리는 20개가 넘는다. 텐트만 들고 가서 남해지역 섬을 돌면서 1박2일씩 탐험도 하고 쓰레기도 줍는 백패킹 동아리, 남해와 제주도, 동해안 등으로 라이딩을 다니는 자전거 동아리, 교내에 커피숍을 운영하는 동아리 등이 인기다.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자신을 발견하고 진로를 개척해갈 수 있다. 백명기 교장은 “한국 교육에서 보통 아이들은 자기가 잘하는 것을 발견할 기회도 시간도 없고 발견을 시켜주는 사람도 없는데, 우리 학교는 아이들이 내면의 힘을 길러서 자신의 존재 가치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발견해나가고 공동체 생활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을 익혀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백 교장은 창원의 공립 대안고등학교인 태봉고에서 8년간 재직한 뒤 일반학교로 옮겼다가 다시 남해보물섬고등학교에 자원했다. 그는 “아이들이 엄청나게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보람 때문에 다시 대안학교로 돌아왔다”며 “교사도 보람이 있지만 아이들 역시 학교에 대한 애정과 교사에 대한 신뢰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배준환(18)군은 “친구 소개로 이 학교를 알게 돼 입학했는데 재봉이나 창업, 해양수업 같은 일반 학교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수업을 해서 재미있다”며 “선생님들도 좋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후배들에게 많이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연수(17)양은 “다양한 수업과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나 자신의 것을 찾아가는 느낌이 많이 들어서 좋다”면서 “재미있으면서 자유로운 게 우리 학교의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아이들의 입소문에 힘입어 입학 경쟁률이 있다.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기숙사 생활을 잘 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경남·부산·울산 학생이면 지원 가능하고 남해 출신 학생을 20% 우선 선발한다. 공립학교이기 때문에 등록금과 점심급식은 무료이고 기숙사비와 아침·저녁 급식비만 내면 된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