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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명문대 창구’ 된 영재학교…천재소년 자리는 없었다

등록 2023-08-23 18:12수정 2023-08-23 23:17

‘천재 소년’으로 불리며 열살 나이로 과학고에 입학한 백강현(11)군이 학교폭력 등을 이유로 자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영재교육과 관련한 논란이 제기된다. ‘뛰어난 학생의 잠재력 계발’을 지향점으로 삼은 영재교육마저 경쟁적 입시 체계, 사교육을 통한 교육 불평등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을 보여준 단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교육청 등의 설명을 23일 들어보면, 백군 아버지는 지난 21일 유튜브 영상을 통해 백군의 자퇴 결심 배경에 언어폭력과 소외감, 학교의 지원 부족 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학교는 이번 학교폭력 사안을 중부교육지원청에 보고했다. 아직 학교는 백군의 자퇴 서류를 처리하지 않았다.

백군이 다닌 서울과학고는 영재학교로 과학고, 영재교육원, 영재학급과 함께 대표적인 영재교육 기관의 하나다. 국내 영재기관에서 교육을 받는 학생은 지난해 기준 7만2천명이다. 백군은 지난 3월 만 10살 나이에 서울과학고에 입학했다. 영재학교는 일반 학교와 달리 초·중등교육법을 적용받지 않고 교육과정 또한 학교마다 자유롭게 짤 수 있어 백군처럼 조기 입학과 졸업이 가능하다.

하지만 영재학교는 도입 초기부터 영재의 개성 발현과 국가 인재 양성이라는 목표와 달리, 고교 서열화의 꼭짓점에 있는 학교로 여겨졌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는 “우리나라 영재학교 학생 상당수는 사교육을 통해 ‘만들어진 영재’가 돼 입학하고, 영재학교들은 상위권 대학으로 향하는 통로가 됐다”고 말했다. 입학 이후 교육의 질보단 영재학교로의 진입 여부에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일반 유명 고교처럼 ‘유명대’를 가는 통로로서 성격이 짙어졌다는 의미다.

실제 교육부 발표를 보면, 지난해 영재학교 졸업생 9.1%(73명)는 의약학계열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재학교가 상위권 대학이나, 특정 선호학과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영재교육 진흥법까지 만들어졌으나, ‘뛰어난 재능을 조기 발굴해 타고난 잠재력 계발 등을 통해 개인 자아실현을 도모하며 국가·사회 발전에 구실을 한다’는 입법 목적과는 거리가 있다.

정미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부소장은 “여전히 영재 교육기관 입학을 위해선 선행학습을 해주는 사교육에 의존해야 하고, 졸업 뒤에는 (영재학교에서의 추가 교육비와 장학금 환수 등) 제재에도 의대에 입학하거나 다른 이공계열에 일단 입학한 뒤 다시 의대로 가는 경우도 많다”며 “영재학교마저 사교육과 의대 진학을 통해 학생을 계층화 하게 된 부분 또한 백군의 자퇴 논란을 계기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선발’과 ‘대입’에 정작 중요한 ‘교육’이 밀리며, 백군 아버지가 지적한 정서적 지원도 뒷순위로 밀린 모습이다. 정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제5차 영재교육진흥 종합계획(2023~2027년)’은 입학 뒤 적응과 관련해 ‘졸업생 멘토링 프로그램’ 등 일부 학교 사례를 제시하는 정도에 그쳤다. 손정주 한국교원대 영재교육원장은 “영재교육은 일반 교육과정에서 학습하기엔 지적 능력이 매우 좋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그렇다 보니 (백군처럼) ‘아주 나이 어린 학생’ 같은 종류의 특성이 나타난다”며 “이들의 지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성장 과정에 대한 지원 등을 좀 더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방준호 박고은 김민제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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