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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이보다 더 잘 놀 순 없다…두근거리는 방과후

등록 2023-08-28 16:04수정 2023-08-29 02:34

20여년 역사의 ‘두근두근방과후’ 탐방

아이들 주도의 자연발생 놀이 집중
마당에서 뛰놀고 숲에서 보물 찾고
부모들도 참여하는 협동조합 형식
“교사들은 오직 아이들에게만 집중”
두근두근방과후는 아이들 주도의 자연발생적 놀이가 중심이 되어 굴러간다. 두근두근방과후 제공
두근두근방과후는 아이들 주도의 자연발생적 놀이가 중심이 되어 굴러간다. 두근두근방과후 제공

지난 22일 오후에 찾아간 과천 문원동의 ‘두근두근방과후’.

건물의 입구에는 4명의 남자 아이들이 흙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곤충들을 골똘히 관찰하고 있었다. “얘네들은 일년 내내 곤충 잡으러 다니는 아이들이에요. 곤충들 키우고 관찰하고 연구하느라 바쁘죠.” 아이들은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들리지도 않는 듯 곤충에만 맹렬하게 몰두해 있었다.

지하 식당에서는 막 학교에서 돌아온 10여명의 아이들이 치킨 간식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3.5층짜리 건물은 다양하게 크고 작은 방들로 구성돼 있었는데, 각 방마다 아이들이 다양한 놀이를 하고 있었다. 큰 놀이방의 탁구대에서는 2명의 아이가 탁구 시합을 벌이고 있었다. 한 아이는 오가는 탁구공을 놓칠세라 진지한 표정으로 심판을 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교사와 한무리의 아이들이 사방치기를 하느라 ‘까르르’ ‘까르르’ 웃음소리가 흘러넘쳤다. 도서관에서는 10여명의 아이들이 조용히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 옆 작은 방에는 여자 아이 둘이 속닥속닥 비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또다른 큰 방에서는 마피아 게임이 한창이었다. 20여명의 아이들이 교사와 함께 손에 쥔 카드 패를 보면서 심각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다.

이렇게 건물은 각자의 놀이에 몰입한 아이들의 에너지로 넘쳐나고 있었다. 누구나 하고 싶은 놀이를 자유롭게 해도 되는 공간이었지만,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온라인 게임을 하는 아이는 없었다.

아이들은 실내에서도 놀고 앞마당에서도 놀고 숲에서도 논다. 두근두근방과후 제공
아이들은 실내에서도 놀고 앞마당에서도 놀고 숲에서도 논다. 두근두근방과후 제공

안에서 놀고 마당에서 놀고 숲에서 놀고…

올해로 21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두근두근방과후는 초등학교 아이들의 방과후를 책임지는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지난 2002년 과천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을 돌보는 데서 시작한 이 방과후는 2018년 ‘과천 두근두근 공동체 교육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2019년에는 학부모들이 돈을 모으고 대출을 받아 현재 건물을 매입하면서 그간 불안정하게 전전하던 전월세살이를 청산하고 자리를 잡았다.

현재 5명의 교사와 1명의 조리교사가 60여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부모들도 조합원으로 재정, 시설, 홍보 등 운영에 참여하며, 매월 교사와 부모들은 회의를 열어 주요 안건들을 처리한다. 출자금을 내고 입학한 뒤 졸업할 때 돌려받는다. 매월 교육비를 내야 하며, 연말 결산에서 적자가 발생하면 부모들이 갹출해서 해결한다. 무엇보다 이 방과후의 가장 큰 특징은 교사가 중심이 되어 이끌어나가는 활동이나 학습보다는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 놀이로 굴러간다는 점이다.

두근두근방과후는 초등 저학년들이 하교하는 오후 1∼2시에 시작한다. 교사들이 아이들이 다니는 인근 4개 초등학교로 마중을 간다. 교사들과 아이들은 20∼30분 걸어서 방과후에 오는데 이 과정부터가 신나는 놀이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싸움을 하면서 온다. 더울 때는 분수에서 뛰놀거나 양재천에 들어가 물고기도 잡으면서 온다.

방과후에 도착하면 가방을 부려놓고 간식도 먹고 숙제도 한다. 그렇게 한숨 돌리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놀기 시작한다. 뜻맞는 친구들과 앞마당에서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고 포로탈출 놀이도 한다. 10분 거리 인근 숲은 아이들이 아끼는 보물창고다. 곤충도 잡고 열매도 따고, 나뭇잎과 꽃을 모으기도 하는 등 사계절이 지루하지 않은 놀이터다. 실내 건물에선 갑작스레 연극활동이 시작되기도 하고, 폼을 잡고 영화를 찍기도 한다. 그날의 특별활동에는 참여하고 싶은 사람만 참여하면 된다. 마피아 게임 같은 놀이는 인기가 많기 때문에 참여 명단에 빨리 이름을 올려놔야 한다. 그렇게 놀다 저녁 6∼7시에는 하나둘씩 집으로 귀가한다.

방학에는 아침 8시부터 이곳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낸다. 모두가 집에 갇혀서 지내던 코로나19 때도 아이들은 이곳에 와서 띄엄띄엄 앉아서 온라인 수업도 받고 점심도 먹고 놀면서 하루를 보냈다.

아이들의 활동 반경이 동네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양재천을 따라 한강까지 왕복 26㎞를 다녀오기도 하고, 방학에는 제주도로 자전거여행을 다녀오거나 무인도 캠핑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졸업여행비를 마련하려는 6학년 아이들은 사업을 벌여 돈을 벌기도 했고, 6년간 여기서 놀았던 경험을 엮어 독립출판물 ‘놀고들 있네’를 펴내기도 했다. 재미로 만들어 본 영화는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3관왕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놀이 중에 뭐가 가장 제일 재밌냐고 물었다. 깡통차기, 마피아 게임, 사방치기, 얼음땡, 축구, 곤충 채집, 달고나 만들기, 탕후루 만들기, 산에서 나무에 밧줄 묶어서 만든 그네 타기, 영화 만들기…. 끊이지 않고 줄줄이 나왔다.

6년째 이곳이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 6학년 이강군은 “학교나 학원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서 움직여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자유롭게 다양한 놀이와 활동을 하니까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초등 2학년 박서윤양은 “다같이 놀고 싶을 때는 다같이 놀고, 한두명과 놀고 싶을 때는 한두명과 놀 수 있으니까 그게 좋다”고 말했다. 4학년 양은결군은 “놀면서 친구를 사귀니까 친구들을 아주 빨리 많이 사귈 수 있고, 형들이 잘해주니까 좋다”고 말했다.

방학 때는 제주도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두근두근방과후 제공
방학 때는 제주도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두근두근방과후 제공

오직 아이들에게만 집중하는 열린 공간

이곳에서 20년간 교사로 일하고 있는 방극조씨는 “직장인들이 왜 금요일을 기다리고 월요일을 싫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정도로”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왔다고 한다. 공동육아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가 감명을 받고 이곳 교사를 자원한 그는 “아이들과 산에서 놀 생각에 신나서 새벽에 일어나서 산에 가서 밧줄을 매어놓고 땅도 파놓고 했다”면서 “아이들처럼 호기심이 많다보니 함께 이것저것 재밌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동료 교사와 함께 두근두근방과후에서의 20년 경험을 엮어 ‘두근두근방과후에는 ‘두근두근’이 있다’(나무발전소)를 펴내기도 했다.

그는 두근두근방과후에 대해 “아이들과 뛰어놀고 산에 가고 나무에 올라가고 물고기를 잡고 그런 교사들이 있고 그게 우리의 일상”이라며 “우리는 부모에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아이들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철학과 방향성이 잡혀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은 부모들이 계속 왔다갔다 하면서 교사들과 함께 소통하고 결정하고, 교사 1명이 연차를 쓰면 부모가 와서 일일교사를 해야 하는 등 완전히 열려 있는 공간입니다. 교사와 아이들이 어떻게 만나는지 완전히 오픈되어 있죠. 그러니 교사들이 부모에게 보이기 위한 결과물을 만들고 치장을 하는 데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요. 교사들은 오직 아이들에게만 집중하면 됩니다. 그래서 투명성, 객관성, 형평성 등이 이뤄져요. 이게 이곳 시스템의 장점입니다.”

두근두근방과후가 처음부터 현재의 자율발생적 놀이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아니었다. 많은 실험과 도전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어떠한 환경에 놓여 있을 때 스스로 동기부여와 자발성과 책임성이 극대화되는지를 고민한 결과다.

원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만족도도 높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이곳에 보내고 있는 장희정씨는 “학교에서는 같은 학년끼리만 놀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성별도 학년도 다 섞여서 노니까 형들에게는 배우고 동생들은 챙기게 되는 등 어우러져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거 같다”며 “주말에도 형들 집에 초대받아서 놀러가고 같이 축구도 하고 도서관도 다니니까 좋다”고 말했다.

이곳에 아이를 보내기 위해 멀리서 이사오는 부모들도 있다. 3명의 자녀를 모두 이곳에 보낸 이병정씨는 “보통 맞벌이들은 아이들을 학원으로 돌리거나 조부모의 도움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데,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기도 싫고 조부모들은 멀리 살아서 고민하던 차에 이곳을 알게 되어 수원에서 과천으로 이사를 왔다”며 “이곳은 숙제 정도만 교사가 봐주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뛰어놀고 야외활동도 많이 하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60∼70명이 어울려 놀면서 나름의 사회생활을 경험하기 때문에 인성과 사회성 및 사고의 유연성 발달에 도움이 되는 거 같다”며 “6년간 이곳을 다니고 졸업한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는 지금 대학생, 고등학생인데,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계속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는 우정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학령기 인구 감소로 인해 어린이집부터 대학까지 많은 돌봄·교육기관들이 휘청거리고 있지만, 두근두근방과후는 오히려 지금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코로나19 때도 돌봄을 책임지면서 부모들의 신뢰가 더욱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할 돌봄을 맡고 있는 만큼 이같은 방과후에 대한 돌봄기관으로서의 법적 근거 마련과 정부 지원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두근두근방과후 건물 모습. 두근두근방과후 제공
두근두근방과후 건물 모습. 두근두근방과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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