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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포기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꼭 돌아온다

등록 2023-09-18 16:37수정 2023-09-19 02:32

연재 ㅣ 괴짜샘의 마음 톡톡

직업학교에 다니는 영호가 꼭 상담을 받고 싶다고 찾아왔다. 검은색 후드 티에 노란색 운동화 끈이 잘 어울렸다. 영호는 전에 다니던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며 도와 달라고 했다. 직업학교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공부 외에 다른 곳에 관심 있는 아이들이 고3 때 다닐 수 있게 만든 공립위탁학교다. 한 해에 중도 탈락률이 8% 정도로, 진로 수정이 많은 학교다.

영호는 중학교 때 옷에 관심이 생겼고, 지금까지 ‘패션디자이너’가 꿈인 친구다. ‘패션디자이너’라는 글자를 종이에 써 보라고 했다. ‘패션디자이너’에 동그라미를 치고 잠시 집중해서 보라고 했다. 눈을 감고 동그라미 안에 있는 ‘패션디자이너’를 생각하라고 했다. 5분 정도 지난 후 눈을 뜨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 물었다.

영호는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안 한 게 후회스럽다고 한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 매일 담배를 피우고, 물건을 훔쳤고, 고등학교 때는 오토바이를 타다가 큰 사고도 났다고 한다. 흡연은 중학교 때 친구와 같이 걸어가다가 길에서 우연히 담배를 주우면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여자친구가 담배를 싫어해 끊었다. 오토바이는 훔치거나 빌려서 타고 다니자 엄마가 걱정되어서 사주었는데, 사고가 난 후 엄마에게 미안해 팔았다.

이어서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이 문신 이야기도 꺼냈다. 친구를 따라 갔다가 유혹을 이기지 못해 문신을 했다고 한다. 하고 난 뒤 바로 후회가 되어 병원에서 지웠지만, 손등에 별 모양 문신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한참을 이야기를 나눈 뒤 기분을 물었다. “상쾌하고 후련하다”고 답했다. 그래서 상쾌한 기억을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했다. 공부를 해서 100점을 맞은 적이 있다고 했다. 야간 자율학습실에 책가방을 메고 처음 갔을 때도 너무 떨리고 설렜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항상 칭찬을 해주어서 자신이 변화할 수 있었단다.

영호는 패션다자이너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해서 4년제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했다. 디자이너가 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친구들과의 만남은 큰 모임이 아니면 안 나가고 공부에 집중하겠다고 다짐했다. “오늘부터 영어공부를 새벽 2시까지 하겠다”는 굳은 다짐도 했다.

상담을 마치면서 여태까지 자기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너무 좋았다는 소감을 말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정신을 차리고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폭풍 같은 청소년기를 보낸 영호가 마음을 잡고 어렵게 직업학교까지 왔으며, 여기서 또 한 단계 나아가 대학 진학까지 꿈꾸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런 변화 동기에 대해 영호는 여자 친구와 결혼하고 싶다는 꿈이 생기고 또 엄마가 끝까지 믿어 주신 덕분이라고 말했다.

영호를 통해 포기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언젠가 돌아온다는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방승호 모험상담연구소 소장 hoho617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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