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20일 낮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수학여행에 어린이 통학버스인 ‘노란버스’만 이용하도록 한 법제처 유권해석 이후 학교 현장의 혼란이 계속되자 정부가 이달 안에 관련 규칙을 바꾸고 법을 개정해 전세버스 이용을 합법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다수 학교가 이미 현장 체험학습을 취소한 뒤라 사후 약방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 초등학교 가운데 열에 여덟은 이미 취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 ㄱ씨는 1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미 학교 현장에서의 갈등은 커질 대로 커진 뒤라, 이제 와 내놓은 대책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ㄱ씨 학교는 애초 가을 체험학습을 위해 전세버스 15대 임대 계약을 맺었다. 이후 통학용 노란버스가 아니어서 취소하려 하자 버스업체는 100만원이 넘는 위약금을 요구했다. 학교 쪽은 회계법상 위약금 지출 항목은 없다며 교사들에게 위약금을 분담하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학교 관리자는 물론 교사들 사이에서도 체험학습 여부를 두고 갈등이 극에 달했다.
ㄱ씨는 “다행히 버스를 취소하지 않은 상태여서 올해는 체험학습을 가기로 했다”면서도 “교육당국이 애초에 수습을 제대로 했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이미 교내 구성원들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남긴 상태”라고 말했다.
그새 노란버스를 구하지 못한 학교들은 이미 체험학습을 줄줄이 취소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7일 기준 서울 내 초등학교 604곳 가운데 2학기에 현장 체험학습을 계획한 학교는 589곳이고, 이 중 479곳(81.3%)이 현장 체험학습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부 발표 뒤 현장학습을 취소한 학교들에서 재추진하겠다는 문의나 보고는 없다”고 말했다.
김한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대변인은 “학교 현장에선 이미 학교운영위원회까지 거쳐 체험학습을 취소했는데, 이제 와서 (정부 대책이) 무슨 소용이냐는 분위기”라며 “체험학습을 취소한 학교들에서 올해 다시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혼란의 배경엔 정부부처 간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도로교통법이) 교육부 소관 법이 아니어서 결정권이 없었다”며 “교육부도 학교 현장의 혼란을 예상했고 이 때문에 경찰청에 공문 발송, 회의 등을 통해 여러번 우려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문제 제기에도 경찰청이 법제처 유권해석에 따라 노란버스가 아닌 전세버스를 단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문제가 불거지자 단속을 유예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교육부 책임도 작지 않다. 윤미숙 전국초등교사노조 대변인은 “(노란버스만 이용해야 한다는) 법제처 해석이 나온 건 작년”이라며 “그동안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아 학교 현장에 혼란과 갈등을 야기한 교육부 잘못이 가장 크다”고 짚었다.
체험학습에 전세버스 이용을 허용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원회에서 의결됐다. 여야는 20일 행안위 전체회의, 21일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바로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하기로 했다.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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