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작은 학교에 큰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등록 2006-03-26 17:42

계수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학교 옆 텃밭에 씨감자를 심고 있다. 감자 재배는 이 학교의 환경체험학습프로그램의 하나로 이뤄지는 교육활동이다.
계수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학교 옆 텃밭에 씨감자를 심고 있다. 감자 재배는 이 학교의 환경체험학습프로그램의 하나로 이뤄지는 교육활동이다.
경기 시흥 계수초등학교의 희망 일구기

계수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엄마와 함께 가을 숲 기행을 다녀온 뒤 그린 가을 열매와 씨앗 그림.
계수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엄마와 함께 가을 숲 기행을 다녀온 뒤 그린 가을 열매와 씨앗 그림.
한때는 학생수가 계속 줄어 학교 문을 닫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해야 했다. 그러나 2년여 세월이 지난 지금 사정은 사뭇 달라졌다. 교정에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학부모들의 마음 속에서는 행복한 학교의 꿈이 영글어 간다. 아이를 이 학교로 전학시키고 싶다는 학부모들의 문의 전화도 심심찮게 걸려 온다. 경기 시흥시 변두리에 있는 작고 아름다운 학교, 계수초등학교 얘기다.

위기를 기회로 삼다 2004년이 끝나갈 무렵, 계수초등학교는 학생수가 60명을 갓 넘는, 전형적인 농촌 지역의 쇠락해가는 소규모 학교 가운데 하나였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도시에 속해 있지만, 학교 주변이 오랫동안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이면서 학생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한 탓이다. 당연히 통폐합 대상 학교로 분류됐다. 동문회가 나서 학생 유치에 안간힘을 써준 덕에 가까스로 복식수업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위기가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됐다. 도시의 과밀·거대학교에 염증을 느낀 일부 학부모들이 계수초등학교로 눈길을 돌렸다.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의 인격적인 만남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학교 규모가 작아야 한다고 믿는 학부모들이 하나둘씩 계수초등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학부모들은 단지 ‘작은’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주변에 논과 밭, 숲이 있는 작은 학교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공교육 테두리 안에서 대안적인 교육 모델을 찾아 보자고 뜻을 모았다. 이들과 뜻을 같이 하는 몇몇 교사들이 이 학교로 옮겨 온 것도 큰 힘이 됐다. 교사와 학부모들의 노력이 입소문을 통해 퍼지면서 전학을 위해 학교를 찾는 학부모들의 발길이 더 잦아졌다. 해마다 줄던 학생수가 1년만에 30여명이나 늘어, 현재는 95명의 아이들의 행복한 배움터로 거듭났다. 지난해 큰 학교에서 이 학교로 아들을 전학시킨 송미희(40)씨는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고, 하나 하나가 존중받을 수 있는 학교를 꿈꾸며 전학을 왔다”며 “아이가 방학 때에도 학교에 가고 싶어 할 정도로 학교를 좋아해 옮기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가정처럼 포근한 학교 이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이 서로를 잘 안다.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 작은 학교 구성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박진호 교장은 “교장을 포함해 모든 교사들이 전교생의 얼굴을 알고 이름을 불러줄 수 있다는 것은 교육적으로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서로가 친밀한 관계를 맺다 보니 학교 문턱이 낮다. 학부모들은 수시로 학교에 찾아와 아이들이 공부하고 노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고 서로 어울려 수다도 떤다. 각자 집에서 음식을 한 가지씩 가져와 나눠 먹는가 하면, 운동장에서 교사들과 둘러앉아 삼겹살 파티도 연다. 여름방학 때면 밤에 학교 운동장에 대형 화면을 설치해 놓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데 어울려 수박을 쪼개 먹으며 영화를 본다. ‘계수 가족 씨네마’라는 그럴싸한 이름도 붙여줬다.

아이들도 전교생이 서로 형제처럼 친하게 지낸다. 낮은 학년 아이들은 집에서 형을 대하듯 높은 학년 아이들을 ‘형아’라고 부르며 따른다. 올해부터는 한 달에 한 차례씩 전교생이 한자리에 모여 스스로 지켜야 할 규칙 등에 대해 토론하고 각자 가진 장기도 뽐내는 어린이 자치활동도 계획하고 있다.

이존세 교감은 “교사들이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고, 학부모들과도 수시로 대화를 하기 때문에 굳이 가정방문이 필요 없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학부모 조정애(39)씨는 “꼭 내 아이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학부모들이 관심을 갖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한가족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학기 때에는 1학년 학부모들이 서로 돌아가며 학교에서 방과후 교실을 열어 맞벌이 부부 자녀들을 돌보기도 했다.


계수초등학교 아이들이 지난 겨울방학 때 학부모들이 연 계절학교에서 과자 만들기 수업을 하고 있다. 계수초등학교 학부모회 제공
계수초등학교 아이들이 지난 겨울방학 때 학부모들이 연 계절학교에서 과자 만들기 수업을 하고 있다. 계수초등학교 학부모회 제공

학부모와 교사, 머리를 맞대다 학부모들이 명실상부한 교육 주체로서 학교운영에 참여하는 것도 이 학교의 큰 특징이다. 한 달에 한 번꼴로 학부모 총회를 열어 학교의 크고 작은 일을 논의한다. 학년말과 학년초에 열리는 학부모 총회에서는 교사들과 함께 지난 1년 동안의 교육활동을 평가하고, 새해 교육계획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눈다. 이와 별도로 매달 학급별로 정례 학부모-교사 간담회를 열어 교육활동과 학급운영에 대해 토론한다.

학부모들은 의견을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방학 때마다 여는 계절학교가 대표적이다. 지난 겨울방학 때는 3일 동안 인근에 있는 조리과학고에서 요리수업을 했다. 지난해 여름방학 때는 3일 동안 요리, 난타, 생태체험, 둥구미 짜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계절학교의 강사는 대부분 학부모가 맡는다.

몸으로 배우는 공부 대안적인 교육을 추구하는 학교답게, 계수초등학교는 체험학습을 중시한다. 지난해의 경우 매주 토요일을 체험학습의 날로 정해 반나절 내내 체험 위주의 교육을 했다. 특히 생태체험학습은 이 학교의 자랑거리다. 매달 첫째주 토요일에는 시흥기독교청년회(YMCA)와 함께 전교생을 대상으로 생태교육을 실시했다. 올해에는 환경부의 지원을 받아 ‘우리 학교는 자연 놀이터’라는 환경체험학습프로그램을 1년 동안 진행할 계획이다. 학교 숲 생태체험 및 자연놀이, 학교 앞 저수지 수생식물 관찰, 오이도 갯벌 체험 등이 한 달에 한 차례씩 토요일에 이뤄진다. 이와 함께 학교 인근 포도밭 170여평을 빌려 1년 내내 텃밭 가꾸기 활동도 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손수 배추와 무, 감자, 콩 등을 심고 가꾼 뒤, 11월께에는 수확한 배추로 김장을 담그고, 콩으로는 두부를 만들어 먹는 것까지를 교육목표로 세웠다.

또 다른 대안을 꿈꾼다 ‘공교육 테두리 안에서 대안 찾기’라는 계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의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아직은 막 첫 걸음을 뗀 것에 불과하다. 학부모들이 지난해 말 경기 광주 남한산초등학교, 충남 아산 거산초등학교, 전북 완주 삼우초등학교 등 공교육 혁신 모델로 꼽히는 작은 학교들을 잇따라 방문한 것도 아직은 채워야 할 것이 많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수초등학교의 일부 학부모들은 얼마전부터 조심스럽게 좀더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흥 지역에 대안적인 교육 모델을 추구하는 ‘작은 학교 벨트’를 만들자는 구상이다. 평범한 작은 학교였던 계수초등학교의 변화의 물꼬를 트는 데 주춧돌 구실을 한 학부모 김윤식(43·계수장기발전위원회 위원장)씨는 “학교 인근에 있는 성택중학교를 제2의 계수초등학교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성택중은 학생수가 5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사립학교다. 김씨는 “계수초등학교에서 새로운 학교를 꿈꿔 본 학부모들이 뜻을 모아 자녀를 도시의 큰 중학교로 보내지 않고 성택중을 선택한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이문세 ‘옛 사랑’·아이유가 왜…이재명 공판에 등장한 이유는 1.

이문세 ‘옛 사랑’·아이유가 왜…이재명 공판에 등장한 이유는

“그럴거면 의대 갔어야…건방진 것들” 막나가는 의협 부회장 2.

“그럴거면 의대 갔어야…건방진 것들” 막나가는 의협 부회장

윤 ‘체코 원전 수주’ 장담했지만…‘지재권’ 걸림돌 못 치운 듯 3.

윤 ‘체코 원전 수주’ 장담했지만…‘지재권’ 걸림돌 못 치운 듯

폭염 요란하게 씻어간다…태풍 풀라산 주말 강풍, 폭우 4.

폭염 요란하게 씻어간다…태풍 풀라산 주말 강풍, 폭우

강남역서 실신한 배우 “끝까지 돌봐주신 시민 두 분께…” 5.

강남역서 실신한 배우 “끝까지 돌봐주신 시민 두 분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