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에 찾아간 경상북도 문경의 단디마을학교.
한 방에서는 5∼6살 유아들이 영어 수업을 받고 있었다. 영어 영화를 감상한 뒤 책상에 앉아 미로 찾기에 한창이었다. 이날의 미션은 복잡한 미로를 통과해 모자를 찾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말하면서, 아이들의 미로 찾기를 도왔다. 영어 선생님 옆에는 학부모가 보조 교사로 참여해 아이들의 활동을 돕고 있었다.
다른 방에서는 7∼9살짜리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간식도 먹으면서 잡기놀이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있었다. 그 방의 한켠에는 퇴근을 하고 하나둘씩 모여든 부모들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여느 평범한 유치원이나 또는 방과후 교실과 달라 보이지 않는 이곳은 학부모들이 세웠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 시작부터가 평범하지가 않았다. 문경읍에서 ‘카페 선일’을 운영하고 있던 황지은씨는 지난해 말 6살을 앞두고 있는 딸의 유치원 입학을 지원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한 곳과 혹시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 자가용으로 15분 정도 가야 하는 유치원을 지원했다. 결과는 두 곳 모두 추첨에서 낙방. 대기번호를 받았다. 인구감소, 지방소멸, 저출산 등의 여파로 유치원도 줄어든 결과, 그나마 있는 아이들도 들어갈 유치원이 부족해진 탓이었다.
황씨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소멸을 막겠다며 이런저런 지원책도 마련하고 우리 지역으로 오라는 홍보는 많이 하지만, 정작 아이가 들어갈 유치원도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해 다른 엄마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했다. ‘이 문제에 관심 있는 엄마들은 우리 카페에 모여 같이 이야기 좀 해봐요’라며 포스터를 하나 만들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처음에는 엄마 4명이 왔다. 그들의 ‘격한 공감’에 용기를 얻어 또 포스터를 올렸다. 다음에는 8명이 왔다. 그 다음 모임에는 14명까지 늘었다. 대부분이 농사를 짓거나 자영업을 하거나 회사를 다니는 엄마들로 5∼9살 아이를 키우며 돌봄 고민을 안고 있는 엄마들이었다.
이같은 공감대를 바탕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차에 겨울방학이 닥쳤다. 이곳 엄마들에겐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장마, 한파 등이 가장 돌봄 고민이 커지는 시기다. 근처에 영유아나 초등 저학년을 위한 학원이나 교육시설도 드물고, 키즈카페 같은 실내놀이시설도 쇼핑몰 같은 복합문화센터도 없기 때문이다.
키즈카페라도 가려면 충주, 청주, 구미 등 인근 도시로 나가야 한다. 방학 내내 집에만 있기엔 아이도 지루한데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그마나 유일한 놀이시설인 동네 놀이터마저 이용할 수 없다. 엄마들은 늘 우리 동네에 키즈카페 하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저 친구들과 다 같이 모여서 마음껏 놀 수 있는 실내 공간 하나만 있어도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엄마들은 일단 “우리 이번 겨울방학 동안만이라도 아이들을 함께 돌보면 어떨까” 하고 머리를 맞댔다. 저렴한 비용으로 빌릴 수 있는 생활문화센터 공간을 빌렸다. 아이들을 이곳에 데려다놓고 엄마들이 돌아가며 재능기부 수업을 하기로 했다. 케이크를 만들 줄 아는 엄마는 아이들과 케이크를 굽는 시간을 가지고, 양초를 만들 줄 아는 엄마는 아이들과 양초를 만들었다. 어떤 엄마는 영어 수업을 맡았고 어떤 엄마는 독서 활동을 도왔다. 결과는 대성공! 아이들은 너무나 즐거워했고 엄마들은 만족했다.
이같은 결과에 고무된 엄마들에게 때마침 기회가 왔다. 지자체와 교육청이 마을교육 사업을 지원한다는 것. 엄마들은 성공한 ‘겨울방학 프로젝트’를 평상시에도 적용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즉,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하원·하교한 오후 시간을 엄마들이 돌아가며 수업도 하고 돌봄도 맡는 방과후 학교를 기획했다. 기획안을 제출해 선정됐고 지원금을 받게 됐다.
엄마들은 운영진을 꾸려 회장, 부회장, 사무국장, 서기, 홍보, 감사 등의 역할을 분담했다. 우선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인근 도서관에서 자리 한켠을 내어주겠다고 제안을 받았지만, 아무래도 혈기왕성한 어린이들이다 보니 걱정이 됐다. “아이들이 엄청 뛰고 떠들 텐데 계속 조용히 시키는 게 힘들 거 같아서 고민하던 차에” 문을 닫은 유치원 공간을 빌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돼 그 공간을 빌렸다. 지자체 예산을 쓰는 것이라 준비할 것도 제출할 서류도 많았다. “하나의 회사를 세워서 운영하는 것과 똑같더라고요. 마을학교 세우기까지 매일 만났어요. ‘내일 10시에 만나요’가 유행어였어요.” 황씨의 말이다.
그렇게 준비 끝에 단디마을학교는 지난 6월에 문을 열었다. ‘단디’는 ‘조심히’ ‘단단히’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아이들을 위한 돌봄 교실인 만큼 조심하는 마음과 단단히 하는 마음을 담은 작명이다. 일단은 엄마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 20명을 정원으로 출발했다.
단디마을학교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이 하원·하교한 뒤인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운영한다. 엄마들이 돌아가며 수업도 하고, 보조 강사와 간식 담당도 맡는다. 아이들과 각종 만들기도 하고, 연극도 하고, 책도 함께 읽고, 미니 운동회를 열거나 미니 캠핑을 가기도 한다.
엄마가 바쁠 때는 아빠가 ‘대타’를 뛰기도 한다. 술래잡기나 줄다리기 등 몸 쓰는 활동도 많이 하고, 사과축제에 가서 구경도 하고 쓰레기를 줍기도 한다. 영어, 가베, 블록쌓기, 인성교육 등은 외부 전문 강사를 초빙해 맡기기도 한다. 매달 회의를 통해 다음달 수업 일정을 짠다.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 수업에서는 하기 어려운 것들을 경험하는 걸 방점에 두고 짠다. 즉, 아이들에게 ‘수업’이라기보다는 ‘특별활동’이라는 느낌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한다.
단디마을학교 회장을 맡고 있는 오미정씨는 “사실 아이들은 뭘 크게 해주거나 가르치지 않아도 친구들과 엄마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한다”며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엄마들이 선생님이나 보조 강사로 참여하는 것에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고 특히 자신의 엄마가 선생님으로 참여하는 날을 더 신나 한다”고 설명했다. 서기를 맡고 있는 함유희씨는 “처음에는 수업을 맡는 게 부담스러웠는데, 아이들 반응이 너무 좋으니까 너무 즐겁고 계속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들은 대부분 이곳 문경에서 태어나서 자란 뒤 학업 또는 취업 등의 이유로 대도시로 나갔다가 결혼과 출산 이후 문경으로 다시 돌아온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막상 자녀를 키우면서는 다시 도시로 나가야 되나 하는 갈등과 위기의 순간이 찾아온다고 한다.
오미정씨는 “늘 돌아오고 싶은 고향이었지만 아이를 데리고 뭘 하려고 하면 일단 20∼30분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등 교육 인프라가 너무 부족하다”고 말했다. 함유희씨도 “대도시처럼 답답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아이를 신나게 뛰어놀 수 있게 하려고 문경으로 돌아왔는데, 아이가 맘껏 뛰어놀 어린이 전용 공간이 없고, 공연 하나 보려고 해도 옆 도시에 가야 하니까 아쉬운 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엄마들은 단디마을학교에 대한 지원이 더 확대되고 지속되어 더 많은 아이들이 돌봄 혜택을 누리길 바란다. 오미정씨는 “단디마을학교 정원이 20명인 관계로 들어오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모두 혜택을 받을 수 있게 지원이 확대되길 바란다”며 “올해는 단디마을학교를 자리잡게 하느라 다른 일에는 신경을 못 썼는데, 앞으로는 다른 교육 인프라 확장에도 관심을 갖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단디마을학교 설립은 엄마들의 삶에도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황지은씨는 “엄마들이 교사로 참여하다 보니, 엄마들이 뭘 잘하고, 무얼 전공했는지, 관심사가 무엇인지도 서로 알게 됐을 뿐 아니라, 각자 자기 집에서 자기 아이만 책임지다가 지역사회에 나와서 참여하고 성장하는 기회가 된 거 같다”고 말했다.
문경/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사진 단디마을학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