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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부모가 연 교문 “아이가 즐겁대요”

등록 2005-02-27 15:36수정 2005-02-27 15:36

 산어린이학교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지난해 말 학교 강당에서 열린 ‘해 보내기’ 행사에서 연극놀이 발표를 하고 있다. 산어린이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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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어린이학교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지난해 말 학교 강당에서 열린 ‘해 보내기’ 행사에서 연극놀이 발표를 하고 있다. 산어린이학교 제공 \\


대안학교 대안을 키운다
1.주어진 길 대신 새로운 길

우리 사회에서 대안학교는 이제 이방지대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중등 과정의 대안교육 특성화학교들이 하나둘씩 문을 열기 시작해, 2000년대에 들어서는 탈학교 청소년들을 위한 비정규형 대안학교와 비인가 대안초등학교들이 봇물 터지듯 생겨나고 있다. 교육부도 제도권 밖의 다양한 대안학교들을 공교육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법 개정안을 내놓은 상태다. ‘제도화’를 앞두고 있는 대안학교들이 그동안 일궈 놓은 대안적인 학교문화와 교육과정 등 교육적 성과와 과제를 여덟차례에 걸쳐 싣는다.

주부 강정민(35·서울 강동구 상일동)씨는 학교 다니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아들 호영(9)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기만 하다. 강씨는 지난해 초 호영이에게 남들과는 다른 배움의 길을 열어 줬다. 대안초등학교인 경기 하남시의 푸른숲학교에 입학시킨 것이다. 물론 결정하기까지 고민도 적지 않았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에 일반 학교와 달리 만만찮게 들어가는 교육비를 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제도권 밖의 낯선 길을 가는 데서 오는 불안감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고민 끝에 결국 대안학교에 보내기로 마음을 굳혔다. 다른 사교육을 일절 시키지 않는다면 비용도 감당할 만했다. 강씨는 “경쟁 위주의 학교 교육 속에 아이를 편입시켜 의미도 알지 못하는 공부, 머리만 키우는 공부를 시키는 것이 아이의 인생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저마다의 빛깔과 향기를 가진 존재로 배려해 주기 힘들고, 교사와 학생, 학부모 등 학교 구성원들이 맺는 상호 관계의 질이 낮을 수밖에 없는 기존 학교에 대한 실망도 대안학교를 선택하게 된 중요한 이유의 하나였다. 강씨는 “아이가 쉬는 날에도 학교에 가자고 떼를 쓸 정도로 학교 생활을 즐거워한다”며 “둘째아이도 역시 대안초등학교에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공교육 경쟁 틀 벗고
목마른 사람이 우물파듯
대안초등교 곳곳 세워
19곳 이어 올봄 3곳 더 새싹

공동육아 경험 모태
주체적 교육 쑥쑥
'그들만의 대안' 시선도

최근 몇 해 사이 강씨처럼 초등학교 과정부터 아이를 제도권 학교 대신 대안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듯이, 뜻이 맞는 학부모들이 힘을 모아 새로운 학교를 만드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2001년 3월 경기 시흥시에서 국내 최초의 전일제 대안초등학교인 산어린이학교가 문을 연 뒤로 해마다 대안초등학교들이 세워져, 현재 전일제로 운영 중인 대안초등학교만 전국에 19개나 된다. 올봄에 문을 여는 학교도 3곳이다.(표 참조) 또 여러 지역에서 준비 모임이 꾸려져 대안초등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만들기까지 적지 않은 돈과 품이 들어가는데다, 학력 인정도 받지 못하는 제도권 밖 학교가 여기저기에 세워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대안교육 전문가들은 대안적인 육아 형태인 ‘공동육아’의 경험을 가진 학부모들이 늘어나면서 ‘공동육아 이후’의 대안에 대한 요구가 분출되고 있는 것을 가장 직접적인 배경으로 꼽는다. 이는 산어린이학교를 비롯해 상당수 대안초등학교가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냈던 학부모들이 중심이 돼 만든 학교라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산어린이학교 운영위원장인 황윤옥 ‘공동육아와 공동체 교육’ 사무총장은 “공동육아 어린이집 아이들이 자라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서 학부모들이 공동육아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대안학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며 “협동조합 형태의 어린이집을 만들고 운영해 본 경험이 새로운 학교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밑바탕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을 ‘의무’가 아닌 ‘권리’로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학부모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공교육이 이런 학부모들의 교육적 욕구를 좀처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학부모들이 ‘대안’을 찾아 나서는 이유로 꼽힌다. 대안교육연대 김경옥 사무국장은 “‘사람 노릇 하려면 꼭 정부가 인정하는 학교에 가야 한다’는 공고한 근대의 ‘학교 신화’가 깨지고 있다”며 “배울 만큼 배우고도 사회에서 제 길을 찾지 못하고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가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주어진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찾아야겠다고 자각하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대안초등학교들이 모두 순탄한 길을 걸어 온 것은 아니다. 학교 운영과 교육 방법을 둘러싼 교사와 학부모들의 갈등으로 학교가 두 곳으로 나누어지거나, 아예 문을 닫기까지 한다. ‘중산층을 위한 학교’라거나 ‘그들만의 대안’이라는 곱지 않은 눈길도 여전하다. 그러나 대안초등학교들이 우리나라 교육에 던지는 긍정적인 메시지도 결코 적지 않다. 황윤옥 사무총장은 “그동안 사실상 정부가 독점하던 학교 교육 영역에서 ‘민’이 주체로 나섰다는 점과 국가가 정한 교육 과정을 교과서를 통해 수동적으로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자신의 교육 현장에 맞는 교육 과정을 스스로 구성하고 진행하는 능동적인 교사들을 배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안초등학교가 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인식을 한 단계 높이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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