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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배심원단, 찬반 표결해주세요”

등록 2006-11-19 21:20

지난 8일 양천구 목동 진명여고 2학년 12반 교실에서 학생들이 임덕준 교사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햇볕정책을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지난 8일 양천구 목동 진명여고 2학년 12반 교실에서 학생들이 임덕준 교사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햇볕정책을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우리학교논술수업]

요즘 교육계의 화두는 단연 논술이다. 대입에서 논술의 비중이 커지면서 논술을 가르치지 못하는 공교육의 무능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꼭 입시를 겨냥해서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 자신이 맡은 교과에서 꾸준히 독서와 토론, 발표 중심의 수업을 실천해온 교사들도 적지 않다. 학교수업을 통한 여러가지 형태의 논술교육 사례를 매주 한 차례씩 싣는다.

진명여고 임덕준 교사 ‘철학적 도덕수업’

“많은 지원을 해줬지만, 돌아온 것은 핵개발뿐입니다. 북한의 어떤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하는 햇볕정책은 이제 폐기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금강산 관광 등 성과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 햇볕정책을 포기하면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진명여고 2학년12반. 대북 포용정책과 관련해 찬반 토론자 5명씩이 마주보고 앉아 50분 동안 진행된 토론의 승패는 나머지 학생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의 표결로 결정됐다. “팽팽했지만 찬성 쪽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었나 봅니다. 찬성 쪽 5명에게 2점씩의 추가 점수를 드리겠습니다.”

이날 수업은 임덕준 교사(도덕)가 맡고 있는 ‘윤리와 사상’ 수행평가의 하나로 벌어진 토론 대항전이다. 한 학기에 한 차례씩 세 시간에 걸쳐 진행된다. 첫 시간에는 토론 주제 선정과 예비토론, 두번째 시간에는 토론 대항전, 마지막 시간에는 반 전체가 참여하는 자유토론이 진행된다. 그동안 임 교사가 다룬 주제는 ‘여성성은 타고나는가, 만들어지는가’와 같은 고전적인 것에서부터 미인대회, 이라크 파병, 안락사 등 시사적인 것까지 다양하다.

토론·발표위주 수업 18년째
미인대회·이라크 파병 등
다양한 주제로 생각 키워

임 교사는 1988년 교단에 선 이래 18년째 토론과 발표, 글쓰기 중심의 ‘철학적인 도덕수업’을 해오고 있다. 한 학기에 한 차례씩은 반마다 다른 주제로 50분 동안 원고지 1천자 분량의 논술문을 쓰게 한다. 이번 학기의 주제는 ‘우리가 원하는 것(혹은 꿈)은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일까’, ‘인문학의 위기는 현대 기술문명의 위기인가’ 등이다. 정답이 없는 프랑스 바칼로레아 철학시험 논제와 비슷하다.

임 교사는 수업시간에 좀처럼 분필을 들지 않는다. 대신 매주 2시간 수업 가운데 1시간은 학생들이 스스로 정한 주제나 임 교사가 제시한 주제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하는 수업을 한다. 유행하는 광고 카피나 대중가요 가사 등도 단골 주제다. 나머지 1시간은 학생들이 돌아가며 교과서 내용을 요약하고 보충 자료를 조사해 발표하게 한다. 이 시간에 임 교사가 가장 비중을 두는 것은 교과서 주제와 내용에 대한 학생들의 논평이다. ‘교과서 비판적으로 읽기’를 통해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학생들은 교과서 발표와 주제 발표, 토론 대항전 시간에 나온 친구들과 임 교사의 의견,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토론노트’에 정리한다. 2학년 신유진(18)양은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토론노트만 충실하게 써나가면 따로 학원에 다니며 논술 준비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토론·발표수업의 교육적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임 교사는 서울대 등이 도입하려고 하는 통합교과형 논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대학들이 통합교과형 논술을 도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변별력 확보입니다. 논술이 본고사로 변질될 가능성이 매우 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단 한 번 치르는 논술고사가 당락에 결정적인 변수가 되면 학교 수업 정상화는 다시 물거품이 됩니다.”

글·사진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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