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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강아지똥! 질문 있어요”

등록 2005-03-20 20:35수정 2005-03-20 20:35


대안학교 대안을 키운다

“선생님” 호칭대신 친근한 별명

많은 학부모들이 대안학교 언저리에서 귀동냥을 하거나 대안학교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새로운 교육’에 대한 목마름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학교는 기존 제도권 학교들과 어떻게 다를까? 이 ‘다름’의 양과 질이 대안학교의 ‘대안성’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일 터다. 대안교육 전문가들은 가장 본질적인 차이를 학교문화에서 찾는다. 아이들이 훈육의 대상이 아니라, 삶과 배움의 주체로 서고, 구성원들이 민주적으로 관계를 맺어 나간다는 점이 가장 다르다는 얘기다. 경기 고양시 고양자유학교의 일상을 통해 대안초등학교의 학교문화를 들여다 봤다.

■ “교장 선생님 별명은 강아지똥”


이 학교에서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대신 별명을 부른다. 대표교사(교장)인 이철국 교사의 별명은 ‘강아지똥’이다. 아이들은 줄여서 그냥 ‘강똥’이라고 부른다. 네 명의 담임교사는 각각 ‘바람개비’, ‘둥지’, ‘해바라기’, ‘반달’로 불린다. 아이들은 수업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아주 자연스럽게 “강똥~, 지금 뭐해요?”라거나 “바람개비~, 이게 뭔지 알아요?”라고 말한다. 별명은 교사들이 스스로 짓기도 하고 아이들이 지어 주는 경우도 있다. 별명 문화는 학교 일상에서 ‘관계 맺기의 민주성’을 구현하는 데 큰 구실을 한다. 교사와 학생이 위계적 질서에서 벗어나 서로 평등한 인격체로서 만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정찬(13·6년)군은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왠지 나보다 훨씬 높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별명을 부르다 보면 벽이 없어지고 친구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 서로를 존중 해주는 문화

▲ 고양자유학교 식구총회 시간에 교사와 학생들이 안건에 대해 토론을 한 뒤 손을 들어 자기 의견을 밝히고 있다. 맨 뒤 의자에 앉아 있는 이가 이철국 대표 교사다,
교사와 아이들은 서로에게 높임말을 쓴다. 수업 시간은 물론이고 쉬는 시간에 교사와 학생이 단 둘이서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마찬가지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출발한 많은 대안초등학교들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서로 예사말을 썼지만 얼마 전부터 높임말로 바꿨다. 진형민 교사는 “높임말 문화는 서로 예사말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서로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충분히 담아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사와 아이들이 배움 앞에서 좀 더 겸손하게 마주할 수 있게 해 주고 학교 분위기를 진지하게 바꿔 준다”고 설명했다.

위계질서 벗어나 벽 없애
교사가 먼저 높임말 써주니
아이들도 자연스레 따라와

소풍, 바자회 등 안건 토론
규칙도 학생들 스스로 정해

그러나 이미 예사말 쓰는 데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높임말을 쓰라는 강요는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교사들이 먼저 아이들에게 높임말을 쓰기 시작하자 두 달만에 높임말 문화로 바뀌었다는 게 학교 쪽의 설명이다. 높임말을 쓴다고 해서 교사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아이들은 없다. 이 학교에선 아이들이 교사의 목에 매달리거나 무릎에 걸터 앉아 장난을 치는 장면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점심 시간이면 교사와 마주 앉아 손뼉을 치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생일을 맞은 아이에게는 교사들이 빙 둘러서서 손에 촛불을 든 채 축복의 노래를 불러 준다.

■ 교사와 아이들은 삶과 배움의 동반자

아이들은 완성된 학교에 들어와 다니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과 함께 학교를 만들어가는 소중한 존재들로 여겨진다. 당연히 아이들의 선택과 결정은 최대한 존중받는다. ‘식구총회’는 아이들의 의견이 학교 일상에 반영되는 가장 중요한 통로다. 매주 금요일에 열리는 식구총회 때 모든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을 통해 모두가 지켜야 할 규칙도 스스로 정한다. 학교에서 강아지를 키울 것인지에서부터 소풍, 운동회, 바자회 등 학교 행사를 언제 어떻게 할지에 이르기까지 학교의 거의 모든 일을 안건으로 올려 토론하고 결정한다. ‘고양자유의날’(등교는 하되, 교과 수업은 하지 않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날)도 식구총회에서 아이들이 제안해 만들었다. 김형학(12·5년)군은 “학교 생활과 관련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할 수 있고, 학생들의 의견이 실제로 이 반영되기 때문에 정말 내가 학교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자랑했다. 일반 공립학교에 다니던 딸을 이번 학기부터 이 학교로 전학시킨 학부모 정언진(44)씨는 “아이가 자신이 존중 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매우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며 “엄마가 왜 자신을 대안학교에 보냈는지 아기가 벌써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언니, 오빠와 동생이 한솥밥

이 학교에는 ‘두레’라는 생활 모둠이 있다. 두레는 학년을 골고루 섞어 구성하고, 각 두레마다 교사 한 명이 담임을 맡는다. 일반 학교로 치면 학급인 셈이다. 아이들은 두레별로 모여 ‘아침 열기’를 하고, 밥을 나눠 먹고, 청소를 하고, 알림장을 쓴다. 대신 교과수업은 두레가 아닌 학년별로 이뤄진다. 그러나 ‘두레의 날’인 매주 금요일에는 식구총회 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두레별로 주제 수업을 한다. 학기 초에 두레 구성원들이 모여 스스로 주제를 정한 뒤, 한 학기 내내 한 주제로 활동을 한다. 이번 학기에는 돈 벌기, 집 짓기, 텃밭 가꾸기, 지하철 여행 등이 선정됐다. 이철국 교사는 “두레라는 작은 사회에서 고학년은 열 명 안팎의 두레 식구들을 돌보고 이끌어가면서 언니, 오빠의 역할을 익히고, 동생들은 자신들이 크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보고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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