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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회색빛 도시 학교에 피어나는 ‘초록빛 감성’

등록 2007-10-29 19:05수정 2007-10-29 19:43

수원 율현초등학교 2학년 5반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학교 인근 서호천 주변에서 식물을 관찰하고 있다.
수원 율현초등학교 2학년 5반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학교 인근 서호천 주변에서 식물을 관찰하고 있다.
[교실 밖 교실] 수원시 율현초교의 생태적 교실
텃밭서 채소 키워 ‘육아일기’ 쓰고
자연에서 느낀 점 국어시간에 발표
도시아이들 마음 속에 ‘자연’ 살포시

“와! 예쁘다. 너, 이 꽃잎 어디서 났어?” “얘들아! 여기 신기한 게 있어.”

지난 24일 오전 경기 수원 팔달구 서호천 옆. 한적하던 냇가는 아이들이 조잘대는 소리로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아이들은 서호천 주변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오가며 나뭇잎과 꽃잎, 풀, 열매 등을 주워 와 스케치북에 붙였다. 형형색색의 자연물로 꾸미는 ‘자연 팔레트’ 활동이다.

이곳은 인근 율현초등학교 2학년 5반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교실’이다.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담임 전미정 교사와 함께 수시로 이곳에 나와 체험 활동을 한다. ‘자연 팔레트’ 활동은 슬기로운 생활의 ‘가을의 산과 들’ 단원 수업의 하나로 이뤄졌다. 자연물 수집을 마친 아이들은 다시 교실로 들어가 자기가 체험한 가을의 색깔에 대한 느낌을 스케치북에 적고 돌아가며 발표도 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전형적인 새도시 학교지만, 이 반 아이들은 이처럼 자연을 벗삼아 놀고 배울 기회가 많다. 이 반 아이들의 ‘교실 밖 교실’은 서호천 주변뿐이 아니다. 아이들의 손길과 발길이 가장 자주 닿는 곳이 학교 울타리를 따라 만들어진 텃밭이다. 학기 초에 텃밭의 구역을 나눠 아이들에게 모둠별로 ‘분양’해주면, 아이들이 자기가 맡은 텃밭에 감자, 고추, 당근, 상추, 브로컬리, 방울토마토 등을 심고 가꾼다. 채소가 자라는 모습과 자기의 느낌을 담아 각자 한 권씩 ‘육아일기’를 쓰기도 한다. 엄마가 아기를 돌보는 심정으로 소중하게 기르자는 뜻으로 ‘관찰일기’가 아닌 ‘육아일기’라고 이름 붙였다. 텃밭 한쪽에 구덩이를 파서 만든 조그만 생태연못에는 벼와 수생식물을 기른다. 아이들이 손수 모내기를 하고 거름도 준다.

채소가 자라는 모습과 자기의 느낌을 담아 각자 한 권씩 ‘육아일기’를 쓰기도 한다.
채소가 자라는 모습과 자기의 느낌을 담아 각자 한 권씩 ‘육아일기’를 쓰기도 한다.
이 밖에 학교 주변의 산과 공원의 숲, 저수지, 논, 농업과학관 등도 아이들이 자주 찾는 배움터다. 23일에는 산림청의 숲해설가와 함께 일월저수지에 가 여러 가지 가을 열매로 자연놀이를 하고, 저수지 옆 논에서 메뚜기를 관찰했다. 이와 같은 교실 밖 체험 활동은 곧바로 교실 수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슬기로운 생활 시간에 밖에 나가 자연을 관찰하고 왔다면 이어지는 국어시간에는 보고, 듣고, 느낀 점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활동을 한다. 즐거운 생활 시간에는 계절의 느낌을 몸으로 표현해 보거나 관찰한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내 보기도 한다. 한 가지 체험 활동을 중심으로 여러 교과가 자연스럽게 통합되는 것이다.

자연은 교실 안에서도 살아 숨쉰다. 햇볕이 잘 드는 교실 뒤쪽 창가에 꾸며 놓은 ‘생명터’라는 공간은 하나의 작은 생태계다. 생명터에는 광주리 모양의 납작한 항아리에 흙과 물을 담아 연못을 만든 뒤 부레옥잠과 물배추, 창포 등 물풀을 기른다. 올챙이와 사슴벌레, 누에 등과 같은 작은 생명도 함께 키운다. 개구리 알에서 올챙이가 태어나고 개구리가 되는 과정을 함께 지켜본다. 개구리로 완전히 자라면 학교 옆 서호천에 풀어준다. 누에를 기를 때는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누에에게 뽕잎을 먹이느라 바빠지기도 한다. 누에가 자라 고치를 짓고, 나방이 되어 고치를 뚫고 나오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생명의 경이로움에 탄성을 지른다. 또 교실 창가에는 아이들 수만큼의 화분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아이들이 하나씩 맡아 1년 동안 가꾸는 화분들이다. 전 교사는 이런 일련의 생태적인 학급운영을 ‘햇살, 흙, 물로 빚어진 초록감성의 아이들’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다. 그는 “갈수록 자연에서 멀어져 가는 도심의 아이들에게 자연과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 교사가 아이들과 함께 알콩달콩 가꿔 나가는 ‘자연을 닮은 교실’의 일상은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 ‘초록 물드는 교실’(blog.naver.com/korandoya)과 미니홈피 ‘초록 감성의 아이들’(www.cyworld.com/korandoya)에서 엿볼 수 있다. 이 반 신민경(9)양은 “내 손으로 작은 생명을 보살피고 있다는 것이 뿌듯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수원/글·사진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통합적으로 한 주제를 깊이있게

율현초 자연체험 교육과정

전미정 교사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생태적인 학급운영의 ‘원조’는 이 학교 노은희 교사다. 10년 가까이 ‘풀빛 물드는 아이들’이라는 주제로 자연과 함께하는 학급운영을 해온 노 교사가 학교 연구부장이 되어 올해부터 담임을 맡지 않게 되면서,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 교사에게 통째로 넘겨줬다. 전 교사는 3년 전부터 노 교사의 학급운영을 어깨너머로 배워 조금씩 실천해온 터였다.

노 교사가 연구부장이 되면서 올해부터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학교 차원의 특색사업이 있다. 체험으로 몰입하는 교육과정 운영이다. 그동안 자신이 학급 차원에서 실천해온 내용을 학교 교육과정에 확대 적용해 보는 첫 실험이다.

체험 교육과정은 ‘교과간 주제통합 창의적 교육활동’과 창의적 재량활동 시간을 활용한 ‘학년 연계 주제탐구 활동’ 두 가지로 나뉜다. 교과간 주제통합 활동은 학년별로 각 교과에서 체험학습에 적합한 단원을 고른 뒤 공통주제별로 묶어 한 달에 하루씩 전일제 체험활동으로 이뤄진다. 이를 위해 각 학년 교사들은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회의를 통해 교육과정을 분석해 별도의 연간 교육계획을 짰다. 4학년부장인 박정민 교사는 “개별 교과 중심의 분절적인 40분 단위의 교실수업으로는 아이들에게 폭넓은 체험 기회를 주기 어려운데, 교과간 주제통합 교육활동은 이런 단점을 보완해 학습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교육과정을 재구성해 체험 위주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은 도시의 대규모 학교에서는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다.

학년 연계 주제탐구 창의적 재량활동은 일주일에 한 시간씩의 창의적 재량활동을 좀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노 교사는 “학년별로 한 주제를 골라 1년 동안 탐구활동을 하되, 학년 발달 단계에 따라 자연과 역사, 문화로 이어지도록 연계성 있게 운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올해의 경우 1학년은 기본생활 습관과 기초학습 태도 정착, 2학년은 계절별 식물관찰, 3학년은 누에 기르기와 우리 고장 역사 탐방, 4학년은 우리 고장 탐구, 5학년은 단소 연주, 6학년은 전통문양과 민속놀이를 주제로 정했다.

이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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