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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특별기고] 수능을 끝낸 아들딸들아, 애썼다 애썼어…

등록 2007-11-15 20:23수정 2007-11-16 09:38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경남 창원 내동 창원여고 앞에서 15일 오전 한 선생님이 ‘파이팅’을 외치며 수험생 제자를 격려하고 있다. 창원/박종식 기자 <A href="mailto:anaki@hani.co.kr">anaki@hani.co.kr</A>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경남 창원 내동 창원여고 앞에서 15일 오전 한 선생님이 ‘파이팅’을 외치며 수험생 제자를 격려하고 있다. 창원/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참으로 애썼다. 마치 전쟁터에서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든 것 같은 너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네 얼굴을 이렇게 바라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구나. 깊이 잠든 네 얼굴을 보며, 나는 자꾸자꾸 “애썼다, 애썼어”라는 말밖에 잘 나오지 않는구나.

가위눌린 새벽 엄마 곁으로 와 잠이 들고, 꿈에서도 시험을 보는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2번, 3번을 외치던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어찌 그런 일뿐이겠느냐. 중학교 때부터 6년, 아니 초등학교 때부터 12년은 참으로 숨가쁘고 초조하게 달려온 긴 시간이었다. 네 마음이야 오죽 속이 탔겠느냐마는 너를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은 늘 숯처럼 까맣게 탔다. 무슨 말도 너에게 가 닿지 않는 줄을 알면서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우리는 너의 눈치를 살피고 너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고, 닦달했다. 이제 잠시나마 한숨을 놓아라. 다 잊고 푹 자거라.

그리고 털고 일어나 너도 몰래 어느덧 와 있는 11월의 거리도 천천히 걸어 보아라. 은행잎이 노랗게 지고 있는 거리도 걸어 보고, 상가의 불빛과 거리의 사람들도 눈여겨보아라. 멀리 보이는 산도 멀리 바라보고, 가까이에 있는 나무들도 한참씩 바라보아라. 그러다가 책방에도 들러 이런저런 책도 구경하고, 옷가게에 들러 ‘아! 나도 이제 숙녀로구나’ 하며 더 성숙한 몸과 마음을 생각하며 이 옷 저 옷도 들춰 보거라.

나는 권한다. 하루, 이틀만이라도 홀로 그렇게 지냈으면 한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훌쩍 자라버린 자기 자신을 한번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이제 영화도 보고, 그림도 보러 나가고, 가벼운 여행이라도 하루쯤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 11월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겨울 초입의 산천은 참으로 아름답단다. 가까운 산사를 찾아도 좋고, 쓸쓸한 바닷가나 억새가 하얗게 나부끼는 강 언덕에서 지는 해를 홀로 바라보는 것도 좋으리라. 낯선 농촌 마을의 적막을 보는 것도 좋으리라. 아니면 그동안 명절 때도 찾아가 보지 못했던 시골 할머니 댁에 한 번 갔다 오는 것도 좋으리라. 오래오래 농사를 짓고 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랑 눈을 맞추고 앉아 어릴 적 아버지의 이야기도 들으며 놀다가 하룻밤쯤 편히 자고 오는 것도 좋을 것이다.

식구들과도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식구들과 얼굴을 맞대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을 가져 보자. 우리가 언제 무릎을 맞대고 앉아 서로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너의 꿈과 인생에 대해서, 아버지의 하루와 어머니의 아침에 대해서, 동생의 친구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마음 풀어놓고 나누어 보았니? 텔레비전도 마음대로 틀어놓고 얼굴을 활짝 펴고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어 보자꾸나.

인생의 한 고개를 넘어온 세상의 아들딸들아! 인생은 참으로 길다. 이제 네 앞에는 네가 가꾸어 가야 할 광활한 미래의 땅이 꿈틀거리며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무엇이 두렵고,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산도 밀어 버릴 싱싱한 어깨가 있고, 천리를 가도 좋을 씩씩한 다리와 바위라도 부술 힘이 솟는 두 주먹이 있다. 그 힘찬 몸과 마음을 오늘은 그냥 쉬게 놔두자.

김용택(시인·전북 임실 덕치초등학교 교사)


[현장] 수능 보는 날, 교실 안팎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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