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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원 때문에 자살충동 바로 내 아이일 수 있어요”

등록 2008-01-07 18:33

학업스트레스 상담하는 이지성 성남 상원초 교사
학업스트레스 상담하는 이지성 성남 상원초 교사
[아이랑 부모랑] 학업스트레스 상담하는 이지성 성남 상원초 교사
“초등 저학년 때 스트레스 쌓이면
사춘기 때 극단적으로 폭발할수도
부모, 아이 말에 귀부터 기울여야”

지난해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초등학생들이 하루 평균 2시간 37분 동안 3.13개의 사교육을 받고 있고, 27%의 학생이 자살 충동을 느껴 본 적이 있으며, 자살을 생각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성적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 5월 초 교육방송 〈지식채널e〉에 방영된 뒤 인터넷을 통해 급속하게 퍼진 이 동영상은 누리꾼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 뒤로 아이들이 ‘학습노동’의 굴레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졌다는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부모들이 “설마 내 아이가…”라며 애써 위안을 삼고는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일 게다. 그렇다면 우리 집 아이들에게는 정말 문제가 없는 것일까? 학교에 상담실을 차려 학업 스트레스로 지친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온 이지성 경기 성남 상원초등학교 교사는 손사래를 친다. 뉴스에 종종 보도되는 아이들이 바로 내 아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한참 놀아야 할 시기에 부모의 강요로 매일 서너 군데씩 학원을 다닌다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의 겉모습만 보고는 ‘잘 따라온다’고 착각하죠. 아이의 속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은 조금도 하지 않고요.” 이 교사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이 생각이 독버섯처럼 자라 나중에 입시나 사춘기 등 일정한 계기가 있을 때 실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폭발할 수 있다”며 “‘내 아이가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자살 소식을 전하는 보도에서 부모들이 한결같이 “우리 아이가 이럴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하는 이유를 곱씹어보라는 얘기다.

이 교사가 아이들의 학업 스트레스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해 봄부터다. 학교를 거닐다 조회대 계단 아래 앉아 훌쩍이고 있는 3학년 남자 아이를 만났다. 왜 울고 있느냐고 묻자 그 아이는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선생님, 죽고 싶어요. 학원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이 교사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제 만 9살짜리 아이가 공부 때문에 죽고 싶다니.

이 교사는 곧바로 자신이 영어를 가르치는 3학년과 5학년 아이들 6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종이를 나눠준 뒤 부모님께 꼭 하고 싶은 말을 써 보라고 했다. ‘죽고 싶다’는 말을 적은 아이들이 3학년은 열에 한 명, 5학년은 열에 두세 명꼴로 나왔다. 죽고 싶은 이유로는 학원 스트레스를 압도적으로 많이 꼽았다. 아이들은 “학원에 가라고 하는 엄마가 마귀 같다”거나 “학원을 폭파시키고 싶다”와 같은 말로 부모와 학원에 대한 원망을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한목소리로 이 교사에게 부탁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줄 전혀 몰라요. 그러니까 절대로 우리 부모님께 오늘 쓴 이야기를 말하면 안 돼요.”

이 교사는 이런 결과가 믿기지 않아 인터넷을 뒤져 봤다. 그러나 여러 시민단체에서 밝힌 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각성을 깨달은 이 교사는 그때부터 자신이 사용하는 영어교과실에서 쉬는 시간이나 방과후 시간을 활용해 상담을 시작했다. 교실 앞문에는 ‘상원 피노키오 어린이 상담실’이라는 글자를 큼지막하게 출력해 붙여놨다. 이 교사는 상담실에서 마음이 멍든 아이들을 만난 경험을 담아 지난해 11월 〈피노키오 상담실 이야기〉라는 책을 펴냈다.

공부 스트레스는 초등학생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한 학생이 학원에 들어가고 있다. 〈한겨레〉자료사진
공부 스트레스는 초등학생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한 학생이 학원에 들어가고 있다. 〈한겨레〉자료사진
그렇다면 부모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교사는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큰 위안을 받는다”고 조언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힘들긴 뭐가 힘들어? 남들도 다 하는데”라거나 “그것도 못 참아서 뭐가 될래?”라며 아이 마음에 대못을 박기 일쑤다. 이 교사는 실제 “죽고 싶다”는 아이들이 상담실을 찾으면 어설픈 조언을 하기보다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고, 이야기가 끝나면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줬다. 그러면 아이들은 더는 죽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런 행동에는 “네가 힘든 거 이해해”, “나는 네 편이야”, “이렇게 맛있는 것들을 놔두고 죽으면 억울하지 않겠니?”라고 하는 세 가지 메시지를 담는다는 게 이 교사의 설명이다.


“매일 학교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가 저녁 늦게까지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든데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아이들 마음이 멍들 수밖에 없죠. 아이를 ‘자식’이나 ‘학생’으로만 보지 말고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한다면 ‘아동 학대’ 수준의 학업 스트레스는 주지 않게 될 겁니다.”

글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 교사가 제안하는 학습법

하루 60%는 놀아야…공부할 때는 즐겁게 스스로

이지성 교사는 〈학원 과외 필요 없는 6·3·1학습법〉, 〈솔로몬 학습법〉, 〈성공하는 아이에게는 미래형 커리큘럼이 있다〉 등 학습법 저자로도 유명하다.

이 교사가 제안하는 학습법은 단순하다. 무작정 ‘열심히’ 할 게 아니라 ‘즐겁게’ 공부하라는 것이다. 마음이 즐거워야 두뇌가 열리고, 그래야 한 시간을 공부하더라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교사의 생각이다. 그가 하루의 60%는 놀고, 30%는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고, 10%는 책을 읽는 ‘6·3·1학습법’을 제안한 것도 이런 생각과 맥이 닿아 있다. 그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원칙은 ‘스스로’다. ‘즐겁게’가 태도의 문제라면, ‘스스로’는 방법에 해당한다. 그는 사교육이 아이들한테서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을 빼앗았다고 본다. 대부분의 시간을 학원을 돌아다니며 앉아서 듣기만 할 뿐,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이 없다 보니,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공부에 쏟아부어도 성적은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학원 수업만으로도 녹초가 되니 집에서 혼자 공부할 힘이 남아 있겠느냐”며 “우리나라는 ‘공부는 스스로 즐겁게 하는 것’이라는 상식이 오히려 비상식이 되는 이상한 사회”라고 꼬집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부모 탓이 크다는 게 이 교사의 생각이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공부는 힘들어도 참고 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도, ‘학원 뺑뺑이’를 돌려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과 시간을 빼앗는 것도 부모들이기 때문이다. 이 교사는 “부모를 고객으로 여기고 끊임없이 현혹하는 사교육 기관의 상업성, 그리고 부모의 욕심과 허영심 때문에 아이들만 고통받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 “아이가 즐겁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부모가 힘들더라도 먼저 열정적이고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부모가 힘들면 그만큼 아이가 힘이 나는 법”이라고 말했다.

이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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