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효/동아대 교수(교육학)
학력신장·사교육비 경감 등
그럴듯한 논리로 대중 현혹
진실은 바로 ‘차등’ ‘양극화’
그럴듯한 논리로 대중 현혹
진실은 바로 ‘차등’ ‘양극화’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발달한 신자유주의는 무한경쟁, 시장화, 민영화, 자율화, 소비자주권 등의 가치가 강조되고, 사회적·공공적 책임에 있어서 국가 역할은 축소되는 특징을 가졌다. 우리나라도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영향을 받아, 통합, 평등, 대중 중심적 가치보다는 구분, 차등, 소수 중심적 가치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게 됐다. 이런 가치는 보수주의 관점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어, 교육에 있어서는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개혁안으로 구체화했다. 대표적인 특징을 꼽자면 교육에서의 소비자주권과 학교 자율화다. ‘주권’과 ‘자율’이라는 말이 그럴듯해서, 마치 교육체계가 진정한 발전으로 도약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학생들을 구분짓고 차등하며, 엘리트 위주의 ‘잘하는 자’와 ‘가진 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줘 교육 양극화 현상을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런데 왜 대중들은 거부감을 갖지 못했을까? 그것은 겉과 속이 다른 책략, 즉 차등과 무한경쟁 그리고 선택을 통한 학생의 학력 향상, 학교 만족도 증가, 사교육비 경감,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선전에 현혹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학생의 성적을 기준으로 학생을 구분하고 차등하여 가르치는 것이 더 낫다는 논리로 나타난 ‘수준별 수업’이고, 다른 하나는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학교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해준다는 논리로 나타난 ‘학교 선택’이다.
이 두 가지 교육정책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이렇다.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이 같은 반(또는 학교)에서 함께 수업하면, 교사는 중간 수준에 맞추게 되고, 그렇게 되면 공부 잘하는 학생은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서 수업이 무의미해지고, 공부 못하는 학생은 그것조차 이해가 안 되어서 수업이 무의미해진다. 얼마나 교육적 낭비인가. 그러니까 학생의 수준에 맞춰서 반(상위반, 중위반, 하위반)이나 학교(일류, 이류, 삼류 고등학교)를 따로 배정하고, 교사가 해당 학생들의 수준에 맞춰 수업하면 모든 학생들이 혜택을 보게 될 것이다. 그 결과로 학생들의 학력이 향상되고 학교 만족도가 높아지며 사교육비도 경감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솔깃한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많은 사람들은 사교육비가 과거보다 줄어들기는커녕 더 증가하기만 해서 힘들다고 느낄 것이다. 구분짓고 차등하는 교육체제일수록 그 구분의 상위 그룹에 들기 위해 사교육비가 더 들고 스트레스를 더 받는다. 실제 주요 연구들을 보면, 학생들의 학력은 극소수의 최상위 그룹 학생을 빼면 오히려 학생들을 구분짓지 않고 함께 가르치는 것이 더 효과적이며, 그럴 때 학생들의 행복감도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교육정책인가? 학교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학생들에게 오로지 성적만이 최고라는 비교육적인 가치를 가르치는 데 열중한다. 이런 상황에서 상위반 또는 일류 고등학교에 들지 못한 학생들의 인권과 존엄성은 발 디딜 틈이 없다.
현재의 교육정책은 학력 신장이라는 소모적인 명목으로 경쟁만 조장하고, 사교육비를 더 부추기며, 강제적인 일제고사를 치른 결과를 공개해 학교 서열화를 부채질한다. 또한, ‘자율’과 ‘선택’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국민들을 현혹해 학생들을 구분짓고 차등하며 특권계층 학생들에게 유리한 특목고와 자율형사립고를 확대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마치 사교육비 문제와 중·고등학교 입시지옥 문제로 인해 평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1970년대 이전으로 되돌아간 듯하다. 역사의 교훈마저 망각한 채 공교육을 약화시키는 데 몰입하는 것이 내 아이에게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김달효/동아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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