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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옥신의 집 찾아가 “반대해도 결혼합니다” / 오재식

등록 2013-02-12 19:58수정 2013-02-13 08:39

오재식(왼쪽)은 1957년 11월23일 서울 영락교회에서 고교 때부터 기독학생회 활동을 함께 한 노옥신(오른쪽)과 한경직 목사(가운데)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말단 군인 신분으로 처가의 강한반대를 무릅쓴 채 강행한 결혼이었던 까닭에 신혼여행도 가지 못한 슬픈 날이었다.
오재식(왼쪽)은 1957년 11월23일 서울 영락교회에서 고교 때부터 기독학생회 활동을 함께 한 노옥신(오른쪽)과 한경직 목사(가운데)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말단 군인 신분으로 처가의 강한반대를 무릅쓴 채 강행한 결혼이었던 까닭에 신혼여행도 가지 못한 슬픈 날이었다.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27
오재식이 1957년 대학 졸업 뒤 입대해 미군부대에서 영자신문을 만들며 잘 지내고 있는 동안 노옥신은 집안에서 시달리고 있었다. 대학 졸업 뒤 교사로 일한 지 2년째, 당시로서는 ‘과년한’ 딸이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집안에서도 옥신이 오래전부터 재식과 사귀고 있는 줄 알고 있었지만, 재식을 사윗감으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부친(노병희)이 당시 김치복 사장의 대한화재 대주주로 참여하는 등 사업을 일군 덕분에 옥신의 집안은 한경직 목사가 영락교회를 세울 때 교회의 중요한 재정은 모두 지원할 정도로 재력이 있었다. 실향민이라도 막강한 영향력이 있었으니 ‘삼팔따라지’에 가진 게 아무것도 없던 재식이 눈에 들 리가 없었다.

대학 시절에도 옥신은 재식과 만나는 것을 들켜 며칠씩 집안에 감금당하곤 했다. 부모뿐만 아니라 집안 사람 전체가 반대했고, 막역한 사이인 김치복 사장까지도 말렸다. 하지만 딱 한 사람, 옥신의 언니만은 두 사람을 이해해줘서, 감금된 옥신을 풀어줘 재식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곤 했다.

혼기가 찬 옥신에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중매가 들어왔다. 그때마다 거절하다 지쳐 끙끙 앓던 그는 어느날 군대로 면회를 가서는 재식에게 하소연을 했다. “미스터 오, 나 어쩌면 좋아. 집에서 선보라는 통에 죽을 지경이야.”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앉아 있는 옥신을 바라만 볼 뿐 재식은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다 그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일단 집에서 선을 보라 하면 거절하지 말고 만나 봐. 만나 보니 싫다고 하면 되잖아.”

당장은 군대 졸병이요 장래도 불투명한 재식이었으니 사실 속수무책이었다. 다만, 자신이 옥신을 믿는 것처럼 옥신도 그를 믿고 기다려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거짓으로 만나는 선보기도 한두번일 뿐 끝내는 사달이 나고 말았다. 겨우 집안을 빠져나와 면회를 온 옥신은 재식을 보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렸다. 더는 옥신에게만 짐을 지울 수 없다고 판단한 재식은 하루 휴가를 받아서 옥신의 집으로 불쑥 찾아갔다. 그러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우리 둘이 결혼하겠습니다.” 그러자 옥신의 부친이 화난 목소리로 되물었다. “뭐? 그래, 누가 너희들 결혼을 허락했나?” “저희들끼리 합의했습니다. 오는 11월23일 추수감사절에 결혼하겠습니다.”

마침 옥신의 집안은 고혈압이 가족력으로 있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부친을 본 옥신의 큰오빠가 나섰다. “아니, 이 사람아. 결혼이라는 게 양가가 하는 건데 맘대로 날짜를 정할 수 있는 거야. 우리하고 의논해야지. 결혼을 할지 안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일방적으로 날짜를 정하는 게 아냐.”

하지만 재식은 여전히 딱 버티고 앉아 쐐기를 박았다. “좌우간 우린 결혼합니다. 반대하셔도 합니다.”

재식이 그렇게 통보하고 떠난 뒤 집안은 발칵 뒤집혔고, 옥신은 “어떻게 저렇게 몰상식하고 무례한 후레아들 놈하고 사귀었냐”는 비난을 들으며 두들겨 맞기까지 했다.

물론 재식도 큰소리를 쳐놓긴 했으나, 이만저만한 걱정이 아니었다. 돈 한 푼 없는데다 군인 신분이라 자유롭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고집과 뚝심으로 결혼식을 진행시켜 나갔다. 양우석 선배와 기독학생회 동기인 최윤식 등이 친구들을 불러모아 그 대신 청첩장을 만들어 돌렸다. 청첩장에는 재식의 뜻대로 양가 부모의 이름을 모두 넣지 않았다. 그러니 옥신의 집안에서는 더더욱 난리가 났다. 부친은 ‘딸자식 하나 없는 셈 칠 테니 당장 나가라’고 옥신을 윽박질렀다. 하지만 이미 둘 사이가 세상에 알려지고 나니 마지못해 허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어떻게든 결혼식만이라도 올릴 참이었지만 옥신의 부친이 “약혼식도 안 하는 결혼이 어디 있느냐”고 해 억지로 약혼식까지 했다. 약혼식은 그해 11월9일 옥신의 집 2층에서 강원용 목사를 불러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조촐하게 치렀다. 장인·
고 오재식 선생
고 오재식 선생
장모와 양우석 선배만 참석했다.

마침내 11월23일, 재식이 정한 바로 그날 두 사람은 영락교회에서 결혼했다. 주례는 한경직 목사가 해주었다. 기독학생회 동료들과 미 제1군단의 미군들이 우르르 몰려와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신혼여행도 갈 형편이 아니었다. 당시 서울 신문로에 있던 처가에서 첫날밤을 맞은 신혼부부는 옥신의 방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울면서 보냈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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