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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아이들 ‘생각의 창’ 어떻게 열어주지?

등록 2005-01-23 19:49수정 2005-01-23 19:49


우리 사회가 오랜 기간 멍에처럼 짊어져 온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은 학교 교육에 짙은 그림자를 남겼다.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력을 길러 주는 교육의 부재도 어두운 그림자의 일부다. 빈 깡통에 물건 쓸어 담듯이 일방적으로 지식을 쏟아 붓는 데 급급한 왜곡된 교육풍토에서 아이들의 머릿속에 ‘생각의 나무’가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척박한 풍토에서 밭을 가는 농부의 마음으로 철학교육의 꽃을 피워 보겠다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이들이 있다. ‘철학교육 전공자 모임’이라는 다소 투박한 이름의 교사모임 회원들이 그들이다.

대학교 철학과 교수와 대학원생, 철학 담당 교사 등으로 이뤄진 한국철학교육연구회의 소모임 중 하나인 ‘철학교육 전공자 모임’은 이름 그대로 철학교육을 전공했거나 현재 전공하고 있는 교사들의 모임이다. 현재 정기적으로 모이는 회원은 초·중·고교 교사 7명과 이화여대 철학과 이지애 교수 등 모두 8명이다. 대부분 철학교육을 주제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거나 학위 논문을 준비중인 교사들이다. 서울 중동고 안광복(34·철학) 교사는 “주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는 다른 과목과는 달리, 철학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부터 고민해야 하기 때문에 철학교사 중에는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심정으로’ 석·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교사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모임에는 철학 담당 교사뿐만 아니라 고교 국어교사, 중학교 도덕교사, 초등학교 교사도 포함돼 있다. 서울 은광여고 신철희(49·국어) 교사는 “철학은 문학을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며 “모임에서 공부한 철학적 사고와 지식이 국어 수업을 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모임 회원들은 2주마다 한 번씩 토요일 오후에 모여 밤 늦게까지 토론을 하고 각자의 수업 사례를 나눈다. 요즘 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주제는 ‘철학적 상담’이다. 철학자들의 이론을 활용해 아이들의 구체적인 고민을 풀어 줄 수 있는 상담 모델을 다듬어 가고 있다. 지금까지 프롬, 프로이트, 니체 등의 철학을 어떻게 상담에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연구하고 학교에서 실제 상담에 적용해 왔다. 서울 상명대 사대 부속여고 권희정(33·철학) 교사는 “많은 학생들이 철학 교사를 상담자로 생각해서 부담없이 고민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현실적인 필요 때문에 철학적 상담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모임 교사들은 스스로를 “가늘고 모질다”고 말한다.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비주류’ 과목이지만 끊임없는 연구와 실천을 통해 철학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하나씩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공교육 현장에서 철학이 차지하는 초라한 위상에 비춰 볼 때, 이 모임의 이력은 결코 짧지 않다. 이 모임의 뿌리는 지난 1996년 꾸려진 서울 지역 고등학교 철학·논리 담당 교사 4명의 수업연구모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워낙 초창기라서 ‘맨 땅에 헤딩’하듯 철학을 가르쳐야 했던 교사들이 수업 방법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 모임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모임이 98년 서울시교육청의 교과연구회로 등록하면서 ‘서울 중등 철학·논리교육연구회’(philoedu.com)로 발전했다.

이 모임은 그동안 철학·논리 교과서와 중학교 도덕 교과서를 분석하고, 영화와 고전, 동화, 문학과 같은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철학수업 모형을 개발하는 등 교실수업에서 ‘깊이 있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논술이 대학 입시를 위한 또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바람직한 논술교육 모형을 연구하기도 했다. 논술문을 쓰는 과정에서 철학적 쟁점들을 고민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논술을 도입한 목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권 교사는 “이를 위해 교사들 스스로 논술 문제를 만들어 직접 논술문을 써 보면서 다양한 논제들이 학생들에게 어떤 사고 과정을 유발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기도 하고 철학적 사고를 강화하는 수업 방법에 대해 토론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2002년부터는 각자의 관심 분야에 따라 소모임 형태로 흩어져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논리 어드벤쳐 게임 ‘하데스의 진자’ 연구반, ‘철학적 논술문제’ 연구반, 미국 어린이철학교육연구소(IAPC) 프로그램 연구반 등이 그것이다. 이 소모임 중 2개는 없어지고, 미국 어린이철학교육연구소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철학적 토론 수업’을 연구하던 소모임이 현재 ‘철학적 상담’을 공부하고 있는 ‘철학교육 전공자 모임’으로 이어졌다.

서울 상도초등학교 안병웅(43) 교사는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꾸준히 철학교육을 해야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사고, 배려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며 “모임에 나오는 교사들이 모두 철학을 현장감 있게 학교 교육에 접목해 가고 있는 분들이어서 실제 수업이나 학급 운영을 하면서 아이들의 철학적 사고를 확장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끝> 글·사진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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