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7월 오재식은 한국학생기독교운동협의회(KSCC) 초대 간사를 맡으며 기독교사회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사진은 당시 그에게 취직 대신 간사 활동을 권유한 동지들로, ‘기독학생 청년운동 4인방’으로 불린 강문규(왼쪽부터)·박상증·손명걸·오재식의 모습.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30
1960년 봄 오재식은 폐결핵 치료를 무사히 끝내고 비로소 집으로 돌아왔다. 딸아이까지 태어났으니, 그로서는 가장의 책임감을 더 무겁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임신한 몸으로 교사 일을 하며 혼자 가정을 꾸리느라 힘들었던 아내 노옥신 대신에 당장 생활비부터 벌어야 했다.
재식은 다시 한번 강원용 목사에게 취직 자리 주선을 부탁했다. 강 목사는 워낙 활동이 활발해 그만큼 발이 넓었기에 아는 사람도 참 많았다. 동양시멘트의 이양구 회장도 강 목사와 친한 사이였다. 이 회장은 훗날 강 목사가 수유리에 크리스찬아카데미를 세울 때 한국판유리의 최태섭 사장과 함께 상당한 기부금을 내놓아 그 터를 구해줄 정도로 막역했다.
강 목사의 소개로 이 회장을 만난 재식은 동양시멘트에 취직을 하게 됐다. 그제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그는 어릴 적 추자도 시절부터 한처럼 맺힌 집안의 가난을 떨쳐내도록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해 7월 어느 주일날, 재식은 어느 때보다 홀가분한 심정으로 경동교회로 예배를 보러 갔다. 예배가 끝난 뒤 교회를 나오려는데, 멀리서 박상증 형과 손명걸 선배가 그에게 손짓을 했다. 박상증은 당시 서울신학교 전임강사였는데, 그의 동생 승증과 친구인 재식은 그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감리교 교육국에서 일하는 손명걸은 기독학생운동 관련 모임에서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
두 사람은 점심을 먹자 하면서 재식을 교회 밖 식당으로 이끌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상증 형은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너 동양시멘트 간다고 들었는데, 그거 접어.” “아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네가 해야 할 일이 있어. 기독학생회로 다시 와야 해.” “형님, 저 결혼했어요. 당장 돈이 없어서 아이 키우기도 힘들어요.” “잔소리 마. 이건 명령이야.”
손 선배는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고, 상증 형은 계속 재식을 설득하거나 다그치면서 얘기를 이어나갔다.
얘기를 들어보니 사정은 이러했다. ‘미국 감리교의 선교사 제임스 레이니가 한국 감리교단에 오기로 했다. 59년 결성된 한국학생기독교운동협의회(KSCC·협의회)의 활성화를 위한 컨설턴트로 그를 활용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를 도와줄 실무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마침 미군부대에서 복무한 덕분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재식이 적임자로 뽑혔다.’
협의회는 기독학생회(KSCM)·와이엠시에이(YMCA)·와이더블유시에이(YWCA) 세 단체의 통합을 위한 전단계로 구성된 임시기구였다. 앞서 그해 5월 세계학생기독교연맹(WSCF) 아시아지역 간사 프랭크 엥걸의 방한을 계기로 협의회는 세계학생기독교연맹이 주창한 ‘학생들을 위한 교회의 생명과 사명’(LMC)을 주제로 한 활동 계획을 정하고자 연구모임을 구성해놓은 상태였다.
재식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자신 서울대 시절 5년간 기독학생회 활동에 누구보다 적극 참여했고, 대한기독학생회전국연합회(KSCF) 회장까지 맡았던 만큼 애정과 책임을 동시에 느꼈다. 하지만 이제는 홀몸이 아니라 한 여인의 남편, 한 아이의 아버지인 가장이었다.
그는 혼자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자 이번에도 강 목사를 찾아갔다. 그는 생각을 다 털어놓으며 “그러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강 목사는 한참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게 하나님의 섭리인지 모르겠다. 동양시멘트에는 내가 얘기할게. 그거 받아봐. 별수 없겠다. 나도 그 일을 생각하니 너밖에 할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장 믿고 따르는 ‘멘토’ 강 목사가 선뜻 이렇게 결정을 내려주니 재식은 그 자리에서 결심을 할 수 있었다. 그는 60년 7월25일 협의회의 초대 간사로 부임했다. 학생 동아리 활동의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사회인이자 직업인으로서 기독교학생운동에 본격적으로 몸을 담게 된 첫발이었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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