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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1400명 전원이 동참한 반도상사 파업 / 이총각

등록 2013-06-12 19:10수정 2013-06-13 16:32

1973년 12월 도시산업선교회 노동교육 프로그램에서 시작된 교육 담당 최영희와 인천 부평공단의 럭키그룹 계열 반도상사 노조 지부장 한순임(뒷줄 왼쪽 둘째)의 만남은 훗날 ‘동일방직 똥물사건’ 때 악연으로 변한다. 사진은 75년 가을 섬유노조본부의 간부교육을 마치고 춘천 소양강변에서  찍은 것으로 뒷줄 맨오른쪽이 이총각, 왼쪽 둘째가 한순임이다.
1973년 12월 도시산업선교회 노동교육 프로그램에서 시작된 교육 담당 최영희와 인천 부평공단의 럭키그룹 계열 반도상사 노조 지부장 한순임(뒷줄 왼쪽 둘째)의 만남은 훗날 ‘동일방직 똥물사건’ 때 악연으로 변한다. 사진은 75년 가을 섬유노조본부의 간부교육을 마치고 춘천 소양강변에서 찍은 것으로 뒷줄 맨오른쪽이 이총각, 왼쪽 둘째가 한순임이다.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20
1973년 12월8일 도시산업선교회(산선)는 ‘부평지역 여성지도자 훈련’ 프로그램을 3개월 과정으로 진행했다. 대학을 막 졸업한 최영희(18대 국회의원)가 훈련 지도에 참여했다. 훈련에는 반도상사를 비롯 인천 부평공단의 3개 회사에서 1~2명씩 모두 8명의 여성 노동자가 참여했다.

 특히 반도상사 노동자 한순임은 나중에 각 부서의 리더가 될 만한 사람 14명을 더 데리고 왔다. 럭키그룹(현 엘지그룹)의 계열사로 수출용 가발을 생산하던 반도상사는 낮은 임금에 잦은 철야와 연장 작업 등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노동자들의 불만이 터지기 일보 직전인 상태였다. 1400명의 노동자 가운데 여성이 1200명이었는데 그중 800명이 마치 수용소 같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더구나 74년 초에는 기숙사에 불이 나서 여성 노동자 30명이 화상을 입었는데도 회사는 어떤 보상도 해주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폭력적인 현장 분위기는 악명이 높아서 반장들이 여성 노동자의 뺨을 때리거나 엉덩이를 발로 차는 것은 예사였다.

 한순임은 아주 똑똑하고 언변이 뛰어났다. 그가 훈련에 데려온 동료는 26명으로 늘어나 노조 결성과 이후의 투쟁을 함께 준비해 나갔다. 그런데 74년 2월 설 전날 귀향하는 노동자들의 소지품을 검사하는 데 항의하던 한 여성 노동자가 경비원한테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참을 만큼 참아온 노동자들의 분노가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74년 2월26일 오전 8시30분을 기해 시작된 반도상사의 파업은 하루 만에 1400명 전원을 투쟁에 동참시키며 엄청난 결집력을 보여주었다. 바로 전날 파업을 알리는 유인물이 탈의장과 기숙사 방마다 비밀리에 전달되었지만 전혀 회사 쪽으로 새어나가지 않고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이날은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한파가 몰아닥쳤는데도 노동자들은 공장 2층 바닥에 앉아 질서정연하게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한순임이 호소문 낭독에 이어 구호를 선창했다. “임금 60% 인상, 폭행 사원 처벌, 현장과 기숙사 시설 개선, 취업규칙 공개, 강제잔업 철폐, 파업 투쟁에 대한 보복 금지와 사장의 공개서약 등이 관철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한다”는 결의였다.

 그날 밤 10시 회사 쪽과 합의서가 작성되고 14시간에 걸친 농성이 끝나자 노동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두려움을 견디게 해준 건 바로 동지애였다. 노동자로서 처음 경험해본 파업 투쟁은 무슨 일이든지 함께 하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이튿날부터 회사의 악랄한 부당노동행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섬유노조본부(섬유본조)와 약속한 노조결성대회는 노동자들을 기만한 사기극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분노가 폭발해 통곡을 하며 쓰러지는 조합원이 속출했다. 당장 농성에 들어갔다. 회사는 전경 수백명을 동원해 강제해산을 시도했고 한순임을 비롯한 노동자 21명이 연행되었다.

 지도자를 빼앗긴 여성 노동자들은 해산하지 않고 바로 2차 파업에 들어갔다. 결국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한 회사는 파업 사흘째가 되자 경찰에 연행된 사람들을 풀어줄 것을 요청했다.

 두 차례의 파업 사태는 회사와 당국으로 하여금 노동자들의 배후에 산선을 비롯한 이른바 ‘불순세력’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경찰에서 풀려난 며칠 뒤 한순임·장현자·옥판점·김복순은 다시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산선의 조화순 목사와 최영희는 간첩이고 빨갱이인데 그들 손에 놀아났다며 마구 때렸다. 사흘 만에 풀려난 그들은 회사 운동장에서 여전히 농성중인 동료들과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마침내 4월15일 ‘섬유노동조합 반도상사지부’가 결성되었고, 한순임이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지부장에 당선되었다. 이후 한달이 지나도록 노조 신고 필증도 나오지 않고 회사 쪽의 분열공작은 끊임없이 계속됐지만, 노조 결성 첫해 37%의 임금인상과 함께 기숙사 시설 개선과 사감 처벌, 식당 시설 개선, 퇴직금제 확립, 연월차수당 제도 확립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그러나 3년 뒤 한순임은 중앙정보부의 공작에 넘어가 동일방직 민주노조를 파괴하는 데 깊이 관여했으며, 산선을 비판하는 강연과 글쓰기에 앞장섰다. 한순임 집행부 때 반도상사 노조를 방문한 적이 있는 총각은 훗날 그가 동일방직 조합원을 꾀어내 반조직적 교육을 일삼자 인간적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반도상사 민주노조는 81년 3월13일 럭키그룹에서 회사를 폐쇄하면서 끝내 해체되었다.

 한편 여성지도자 훈련을 지도했던 최영희와 이총각은 동일방직 노조 간부 교육 때 만나 긴 인연을 맺게 된 사이다. 총각에게는 지오세 지도투사도 아니고, 산선의 목사도 아닌 대학 출신 활동가인 그의 교육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총각이 인천 만석동에 산다는 얘길 듣고 그는 ‘하꼬방’(판잣집)에 대한 조사를 할 계획이라며 도와달라고 했다. 기꺼이 그러마고 했더니 나중에 남자친구인 장명국과 같이 와서 총각의 어머니가 해준 만두를 맛나게 먹고 가곤 했다.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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