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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들불처럼 일어나는 민주노조운동 / 이총각

등록 2013-06-13 19:17수정 2013-06-14 16:19

이총각은 1972년 동일방직 노조 간부를 맡으면서 70년대 들불처럼 결성된 민주노조들과 직간접적인 교류를 하며 많은 동지들을 만난다. 방용석 원풍모방 노조 위원장도 가장 오랜 노동운동 동지의 한명이다. 사진은 86년 3월 노동자복지협의회 주최로 열린 노동운동 탄압 규탄 및 최저임금 쟁취대회에서 방 위원장이 연설을 하는 모습.
이총각은 1972년 동일방직 노조 간부를 맡으면서 70년대 들불처럼 결성된 민주노조들과 직간접적인 교류를 하며 많은 동지들을 만난다. 방용석 원풍모방 노조 위원장도 가장 오랜 노동운동 동지의 한명이다. 사진은 86년 3월 노동자복지협의회 주최로 열린 노동운동 탄압 규탄 및 최저임금 쟁취대회에서 방 위원장이 연설을 하는 모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21
청계피복노동조합 결성으로 시작된 1970년대에는 민주노동조합운동이 거세게 일어난 시기였다. 청계노조, 동일방직 노조, 반도상사 노조, 콘트롤데이타 노조, 한국(원풍)모방 노조, 와이에이치(YH)무역 노조, 삼성제약 노조 등이 70년대의 대표적인 민주노조였다. 와이에이치무역과 삼성제약은 다른 노조들보다 조금 늦은 75년 5월 노조를 결성하고 민주노조운동을 시작했다.

73년 12월20일에는 금속노조 영등포지부 콘트롤데이타 분회가 결성되었다. 콘트롤데이타는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으로 컴퓨터 기억장치 조립생산업체였다. 생산직 여성 노동자 대부분이 고졸 출신이고 외자기업이었지만 노조 결성 전까지는 임금과 노동조건 등이 동종 업체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생리휴가나 월차휴가도 제대로 쓸 수 없었고, 잔업과 특근이 많아 하루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이 예사였다.

콘트롤데이타 노동조합은 박명자를 위원장으로 8명의 여성 조합원이 모여 창립대회를 치렀다. 당시로는 흔치 않은 여성 위원장인데다 노조 간부들과 대의원 모두 여성으로 구성된 것은 남성 노동자들이 생산직에는 없고 기술직이나 관리직에만 배치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조창립 당시 도시산업선교회(산선)의 지원을 받았지만 그 이후로는 관계를 이어가지 않았고, 금속노조 영등포지부의 교육과 선전 활동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인지 결성 초기에 많이 나타나는 노사분쟁 없이 원만한 활동을 이어가며 8%의 임금인상과 물가인상에 따른 생계보조비 지급(기본급의 160%), 생리휴가의 원활한 사용, 남성 노동자들에게만 지급했던 연 400%의 상여금을 생산직 여성 노동자들에게도 지급하는 것 등을 관철시켰다.

이총각은 그 무렵 콘트롤데이타 조합원 총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때 동일방직하고는 사뭇 다른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 그들은 화려하고 세련된 옷차림에 화장도 진하게 하는 등 미용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았다. 게다가 임금도 월등히 많아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들에 비하면 동일방직 노동자들은 ‘촌티’가 흘렀다. 총각 자신만 해도 동일방직에 들어간 뒤 어머니가 천을 떠와 옷을 맞춰 입기도 하고 월부로 겨울 코트를 사 입기도 했지만 그저 한두 벌이었고, 하복 한 벌, 동복 한 벌씩인 작업복을 평상복처럼 입고 다녔다. 그리고 화장이라고 해봐야 동네마다 북 치고 돌아다니며 파는 ‘동동구리무’를 하나 사서 온 식구가 돌아가며 바를 정도였으니 피부미용이랄 것도 없었다.

그러다 77년 5월30일 콘트롤데이타 노조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박 위원장이 조합원들의 불신임을 받아 물러나고, 제2대 이영순 위원장이 선출되면서 여성 노동자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풀어나가는 민주노조로 탈바꿈을 시도했다. 결혼 후 직장 계속 다니기 운동을 통한 결혼퇴직제 철폐 운동과 출산휴가 60일 쟁취는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콘트롤데이타보다 1년 남짓 앞선 72년 8월17일 한국(원풍)모방은 어용노조 집행부를 뒤엎고 지동진이 지부장에 선출되면서 민주노조운동을 선도해나가기 시작했다.

한국모방의 노조 지부장은 남자였지만 노조 간부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70년에 입사한 방용석은 이때 대의원에 당선되어 교선부장의 자리에 오르면서 기나긴 노동운동의 역사를 써내려간다.

한국모방의 민주노조운동은 퇴사한 노동자 200명이 72년 4월 결성한 ‘퇴직금 받기 투쟁위원회’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를 계기로 노조 정상화가 시급한 과제라는 인식이 생겨나 한국모방노조 정상화투쟁위원회가 구성되었고 노사 갈등이 본격화되었다. 워낙 한국모방에는 산선과 지오세 회원들이 현장 소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민주노조를 구축하는 데 큰 구실을 했다. 끈질긴 투쟁이 전개되는 동안 소모임이 20여개까지 늘어나면서 한국모방 노동자들은 노동운동의 주체로서 자기인식을 확립해가며 하루하루 성장해갔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73년 회사의 부도에 직면한 노조는 한국모방 수습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공장시설을 보호하는 한편 운영권을 인수해 하청 형태로 공장을 가동해 나가다가 새로운 사장에게 넘겨주는 색다른 경험도 하게 된다. 74년 6월에는 지동진이 물러나고 방용석이 지부장에 당선되었고, 몇달 뒤 한국모방은 노조가 요구한 고용승계 조건을 받아들인 원풍산업에 인수된다.

이총각의 노동운동 역사 속에 방용석은 단연 맨 앞자리에 있는 동지였다. 그는 동일방직의 투쟁이 전개되는 동안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길잡이가 돼주었다.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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