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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농성 진압된 자리엔 푸른 작업복만 ‘수북’ / 이총각

등록 2013-06-26 19:27수정 2013-07-05 17:09

1976년 7월25일 동일방직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알몸시위’도 불사했던 여성 조합원 가운데 일부는 경찰의 폭력진압 과정에서 충격을 받아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사진은 그날 이후 동일방직 공장 앞 육교 아래 상주하며 노동자들을 감시하던 경찰 기동대 버스. <동일방직 노동조합운동사> 중에서
1976년 7월25일 동일방직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알몸시위’도 불사했던 여성 조합원 가운데 일부는 경찰의 폭력진압 과정에서 충격을 받아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사진은 그날 이후 동일방직 공장 앞 육교 아래 상주하며 노동자들을 감시하던 경찰 기동대 버스. <동일방직 노동조합운동사> 중에서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30
1976년 7월25일 아침 원풍모방 노동조합 방용석 지부장은 섬유산업노조본부(섬유본조)의 방순조 위원장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동일방직에서 농성이 사흘째 계속되고 있는데 같이 가보자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동일방직 노조에 대한 회사 쪽의 부당노동행위 상황을 익히 알고 있던 그였기에 흔쾌히 길을 나섰다. 방 위원장과 노동부 노사정책국장인 신연호 그리고 섬유본조 쟁의부장과 함께 그가 동일방직에 도착해 보니, 노조 사무실 앞 잔디밭에 여성 조합원 수백명이 앉아서 여전히 농성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7월말 한여름이라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무더위에 땡볕 아래서 며칠을 보낸 여성 조합원들은 많이 지쳐 있었다.

사실 방 지부장은 그때까지 동일방직 민주노조 총무부장 ‘이총각’을 남자로 알고 있었다. 이영숙 지부장과는 이런저런 자리에서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왜 이름을 안 부르고 총각이라고만 할까?’ 혼자 생각했던 것이다. 더구나 당시 총각은 이 지부장과 함께 경찰에 연행된 상태여서 농성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방 지부장은 여전히 그가 여자란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방 지부장과 일행이 농성장에 가까이 가니, 조합원들이 그를 알아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당시 원풍모방 노조는 방 지부장의 뛰어난 지휘 아래 민주노조의 선봉에서 가장 활발한 투쟁을 전개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 만큼 그의 지지 방문은 조합원들에게 큰 격려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 낌새를 알아차린 듯, 회사 관계자가 정보과 형사와 함께 그에게 다가오더니 사무실에 가서 차 한잔 하자며 끌다시피 데리고 갔다. 방 지부장도 당장 농성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어서 그들의 얘기라도 들어볼 요량으로 따라갔다.

그 뒤 일행과 식사를 하러 회사 밖으로 나온 그는 노동부의 신 과장에게 항의를 했다. “회계 부정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도 안 된 상태에서 지부장과 총무부장을 무작정 연행해 가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 아닙니까? 그 두 사람만 풀어주면 농성이 끝나지 않겠어요?” 하지만 신 과장으로서도 별 뾰족한 수가 없어 보였다.

그러다 그와 일행들이 다시 동일방직으로 돌아왔을 때는 경찰의 강제해산 작전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사이 경찰차가 들이닥쳐서 회사 밖까지 소란스러웠다. 출입을 통제해 회사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담장 너머로 회사 안을 들여다보니 농성 여성 조합원들을 가득 태운 대형버스가 막 떠나려는 중이었다.

그런데 농성을 했던 그 자리에 푸르스름한 작업복 한 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누군가 옆에서 농성자들이 옷을 벗게 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방 지부장은 그 순간 여성으로서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넘어선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가슴 찡한 충격을 느꼈다. 잔디밭 한쪽엔 해산 와중에 다친 여성 노동자들이 사내 의료실에서 내온 듯한 매트리스 위에 쓰러져 있었다.

잠시 밥을 먹고 오는 사이에 모든 상황은 끝나 있었다. 엄청난 사태가 벌어졌으나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방 지부장은 마음이 무거웠다. 정문을 통해 농성 조합원을 태운 2대의 버스가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자 그는 인천 동부경찰서로 달려가 이 지부장과 이총각의 면회를 신청했다. 하지만 면회조차 허락되지 않아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알몸시위는 72명이 연행되고 50여명이 실신했으며 14명이 병원에 입원하는 것으로 처절하게 끝이 났다. 그 가운데 2명은 충격으로 각각 6개월·1년 동안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특히 현장에서 실신해 며칠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조합원 이돈희는 깨어난 지 사흘 만에 병원에서 강제퇴원 당하자 ‘죽어도 노동조합을 지키겠다’며 성치 않은 몸으로 노조 사무실로 출근해 동료들의 간호를 받으며 한동안 소파에 누워 지냈다. 병세가 심했던 이순옥은 “경찰이 잡으러 온다!”고 소리 지르고, 불쑥불쑥 “지부장을 내놓으라!”고 고함을 지르다가 까무러치곤 했다. 처음 당해본 경찰의 폭력은 여리디여린 여성 노동자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황당했고 화가 났으며 무서웠다. 노동자가 노조를 알고 그 안에서 다함께 행복해지는 당연한 권리는 그렇게 피눈물을 흘리는 시련 없이는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동일방직 민주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꼬투리를 잡으려고 경찰이 압수해 갔던 회계장부는 영수증 처리가 안 된 8만원 외에 다른 하자가 전혀 없었다. 경찰은 그나마 문제삼아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에서 기각되고 말았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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