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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원시적 매체 ‘대자보’ 열풍이 왜 다시 불까요

등록 2014-01-06 19:54수정 2014-01-06 23:00

지난해 12월17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 쪽에 붙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학생들이 살펴보고 있다. 정용일 기자 <A href="mailto:yongil@hani.co.kr">yongil@hani.co.kr</A>
지난해 12월17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 쪽에 붙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학생들이 살펴보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NIE 홈스쿨] 대자보의 어제와 오늘
지난해 12월10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에 경영학과 주현우씨가 손글씨로 눌러쓴 ‘안녕들 하십니까’란 제목의 대자보를 붙였습니다. 철도 민영화와 밀양 송전탑 사태 등을 비판하는 주씨의 대자보는 이에 공감하는 이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가며 전국적인 ‘대자보 열풍’을 불러왔습니다. 1990년대 이후 대학가에서도 점차 사라져갔던 대자보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두 장의 대자보로 다시금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대자보’란 이름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60년대 중국의 문화혁명 시기입니다. 1966년 5월25일 당시 베이징대학 철학과 강사였던 녜위안쯔를 비롯한 7명은 베이징대 구내식당 동쪽 벽에 벽보를 붙였습니다. 당시 베이징대 학장이었던 루핑을 비롯한 지도층 인사들이 봉건적 사고와 자본주의에 물들어 있다고 비판하며, 대중들이 문화혁명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중국의 당권파와 대립했던 마오쩌둥은 ‘중국 최초의 마르크스, 레닌주의 대자보’라며 지지를 보냈습니다. 당의 최고기관지였던 <인민일보> 등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 매체를 당권파가 장악한 상황에서 마오쩌둥은 대중들에게 직접 다가서기 위한 대안으로 대자보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마오쩌둥은 자신의 정책을 당시 문화혁명의 선봉에 섰던 홍위병들에게 전달하고, 홍위병들은 이를 다시 대자보로 붙여 전국의 대중들이 읽도록 했습니다. 이를 통해 신문, 방송과 같은 공식 매체 없이도 일반 대중들이 정부에 반기를 들고, 문화혁명에 참여하도록 독려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문화혁명을 ‘대자보 혁명’이라고 부르는 까닭입니다. 이후 중국에서는 ‘벽보’보다 ‘대자보’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영어사전에도 중국의 대자보를 뜻하는 ‘다쯔바오’(dazibao)라는 단어가 오르게 됩니다.

사실 대자보는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 큰 글씨로 적은 종이에 불과합니다. 인쇄술을 이용해 대량으로 찍어내는 책이나 신문,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퍼지는 방송 등에 비하면 지극히 ‘원시적인’ 매체입니다. 그럼에도 대자보가 중국 문화혁명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이러한 ‘원시적’ 특성 덕분이었습니다.

일반 대중들 입장에서 신문이나 방송은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 해도 좀처럼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닫힌’ 매체입니다. 반면 대자보는 누구라도 자신의 생각을 적어 벽에 붙이기만 하면 됩니다. 정부나 권력기관의 사전 검열과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니 자신의 생각을 간편하고 자유롭게 게시할 수도 있습니다. 1975년 중국공산당은 의사표현의 자유, 다양한 견해의 토론 등과 함께 대자보의 자유로운 이용을 보장하는 신헌법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대자보 뜻은 ‘큰 글씨로 적은 종이’
1960년대 중국 문화혁명 불씨 지펴
누구라도 붙일 수 있어 영향력 확산
억압 시대 비판·저항 도구로 쓰여
학생운동 퇴조와 함께 수그러들다
권위적 통치 부활 맞서 다시 불붙어

대자보는 시간적 제약도 받지 않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이 발행시간이나 방송시간에 맞춰 보도해야 하는 데 반해 대자보는 언제라도 신속하게 글을 적어 벽에 붙일 수 있습니다. 한정된 신문지면이나 방송시간 탓에 담지 못하는 사안들에 대해서도 대자보는 ‘쓸 종이’와 ‘붙일 벽’만 있다면 얼마든지 다룰 수 있습니다. 그 형식 또한 풍자적 산문이나 운문, 고발장, 민요, 만화, 만평 등 다양합니다.

대자보는 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을 구분 짓는 책과 신문, 제작자와 시청자를 나누는 방송 등의 매체 한계도 뛰어넘습니다. 대중들은 독자인 동시에 필자로서 대자보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바를 대자보에 적고, 토론 과정을 거쳐 다시 대자보를 게시하는 과정을 통해 대중들은 능동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사회 문제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대자보는 우리에게도 친숙합니다. ‘대자보’라는 이름이 중국의 문화혁명에서 시작되었을 뿐, ‘벽에 건 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벽서’(壁書), ‘방’(榜), ‘괘서’(掛書)는 이전부터 우리나라의 역사 기록에도 등장합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그 예입니다. 신라 진성왕 2년(888년)의 기록에는 “젊은 미남 두세 명을 몰래 불러들여 음란하게 지내고, 그들에게 요직을 주어 나라의 정사를 맡겼다. 상과 벌이 공정하지 못하고 기강이 문란해졌다. 이때 이름없는 누군가가 정치를 비방하는 말을 지어 관청 거리에 방을 붙였다. 왕이 수색하게 하였으나 잡을 수 없었다”는 글이 나옵니다.

<조선왕조실록>의 성종 13년(1482) 기록을 보면, 지금의 대학인 성균관의 관직방 외벽에 “누가 성균관을 현관(賢關·성균관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하였던가, 썩고 용렬한 무리가 그 벼슬을 차지하였도다”며 성균관의 부패한 교관들을 비판하는 괘서가 붙어, 성종이 사건의 전말을 끝까지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비판과 저항’의 도구로 쓰였던 대자보는 1980년대 신군부 아래에서 반독재 투쟁에 나섰던 우리나라 대학가에서 널리 쓰였습니다. 당시 신군부는 거의 매일 각 언론사에 ‘보도지침’을 내리는 등 언론을 강력하게 통제했습니다. 방송 뉴스의 첫머리가 전두환의 그날 동정부터 알리는 것에 빗대어 ‘땡전뉴스’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입니다. ‘밤 9시가 ‘땡’ 치면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뉴스가 시작되는 것에서 따온 말입니다. 언론 자유가 억압받는 상황에서 민주화를 바라는 대학생과 시민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매체는 ‘대자보’였던 것입니다.

1990년대 이후 학생운동이 퇴조하면서 대자보는 대학가에서조차 좀처럼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대자보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정부와 여당이 언론을 통제하고, 대자보의 역할을 대신했던 인터넷마저 국가정보원 등의 국가기관이 개입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현 상황이 사람들을 다시금 ‘열린 매체’인 대자보 앞으로 불러모은 것입니다.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대신 매직으로 꾹꾹 눌러쓴 대자보가 디지털 환경에서는 느끼기 힘든 ‘진정성’을 사람들에게 모처럼 안겨주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전 펼쳐보기 | 대자보와 사발통문

역사를 살펴보면 대개 격변기에는 부패한 현실을 격렬하게 비판하고 민중들에게 저항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격문이 나붙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대자보와 사발통문이다.

‘사발통문’이란 주모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참가자 명단을 빙 둘러가며 적은 통문을 이르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통문이란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고지문’을 말하는데 조선 후기, 특히 고종 때 민중의 저항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런 형식의 선전 격문이 성행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동학군의 통문 제1호라고 할 수 있는 사발통문을 들 수 있다. 이 사발통문에서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 간부 20여 명은 전북 고부군 서부면 죽산리 송두호 집에 모여 고부성을 격파하고 악질 관리를 제거한 후 서울로 직행할 것을 결의하고 있다.

대자보나 사발통문은 모두 비판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고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공개한 글이지만 대자보는 익명이 가능한 반면 사발통문은 죽기를 각오하고 실명을 밝혔다는 점에서 한층 더 비장하다는 차이가 있다. (<우리말 뉘앙스 사전>, 북로드, 123~124쪽 가운데)

책으로 확장하기 | 게릴라 뉴스 미디어, 대자보

대자보는 매스미디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범위에 내용을 전달하는 ‘작은’ 미디어였다. 저널리즘이란 사회 전반에 걸쳐 이슈를 제기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므로, 대자보가 본격적인 저널리즘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에서 시민 발언의 구심점으로서는 뚜렷한 존재감이 있었다.

1980년대의 대자보는 시민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미디어이자, 한국 사회의 특유한 경험에서 탄생한 대안 저널리즘의 한 형태였다. 시민들이 민주화 운동을 하며 자발적으로 풀뿌리 토론장을 만들었던 경험은, 한국 사회의 역동적인 미디어 문화에 영향을 끼쳐 오늘날 온라인 공간에서의 활발한 토론 문화로 이어지고 있다.(<세상을 바꾼 미디어>, 다른, 62~64쪽 가운데)

논제로 정리하기 | 부당한 권력과 개인의 성찰

2000년 서울대 수시 논술에서는 부당한 권력에 맞선 개인의 자기성찰이 갖는 의의와 한계에 대해 논하라는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시를 함께 실어 조그만 일에만 분개할 뿐 정정당당하게 행동하지 못하는 시적 화자의 자기성찰을 보여줍니다. 시적 화자가 털어놓은 ‘나는 너무 적다’는 자기성찰은 자칫 자기연민이나 탄식에 머물고 만다는 한계에 부딪힙니다. 사회 문제에 대한 개인의 관심을 공론화하고, 적극적 사회참여를 촉구하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사례에 비추어 자기성찰의 의의와 한계, 그리고 극복 방안을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김영우 기자 kyw@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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