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지대 교수 대화 등 녹취록 받아
김문기쪽 “학생이 먼저 돈 요구”
김문기·차남 국감증인 다시 채택
김문기쪽 “학생이 먼저 돈 요구”
김문기·차남 국감증인 다시 채택
사학 비리 당사자로서 상지대 총장직 사퇴 요구를 받고 있는 김문기(82)씨의 측근이 총학생회 간부 학생한테서 학생 집회 동향, 교수 대화 녹취파일 등을 넘겨받으며 김씨의 복귀에 반대하는 학생·교수들의 동향을 파악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이를 밝힌 총학생회 간부 학생은 김씨 측근한테서 200만원을 받았다고 털어놔 ‘학생 매수·사찰 의혹’이 불거졌다. 의혹의 당사자인 상지대 총장 비서실의 조용길 실장은 “학생이 돈을 먼저 요구했고 녹음파일도 자발적으로 건네줬다”고 주장했다.
김문기씨와 차남 김길남(46) 전 재단 이사장은 2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의 교육부 국정감사에 다시 증인으로 채택된 만큼 학생 매수·사찰 의혹이 국정감사의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상지대 총학생회·교수협의회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참여연대 등은 22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문기씨 측근의 학생 매수 및 불법 사찰·도청 의혹’을 제기하고 △김씨와 옛 재단 이사진의 퇴출 △교육부 즉각 감사 및 검찰 수사 등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에 나온 총학생회 간부 ㅅ(26)씨는 “8월22일 지인 소개로 알게 된 조용길씨한테서 이튿날 전화로 ‘총장님(김문기씨)한테 네 얘기 했고 흐뭇해하신다. 총학생회 회의 내용을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8월30일 (조씨를) 만나 몇 가지를 알려줬고, ‘옷을 사 입으라’며 현금 30만원을 줘서 받았다”고 밝혔다. ㅅ씨는 “10월10일까지 30만~50만원씩 모두 200만원을 받았다. 일부 금액은 내가 먼저 요청하기도 했다. 사정이 다급해서 판단이 흐려졌다”고 말했다. ㅅ씨는 조씨한테서 ‘총학생회 집회 계획, 교수 대화 등을 수시로 알려주고 녹음도 해달라’는 요구를 받았고, 금품 제공 말고도 징계 제외, 다음 총학생회 선거 지원 등도 제안받았다고 털어놨다.
ㅅ씨는 상지대 교수협의회 대외협력특별위원장인 정대화 교수가 지난 4일 교내 농성장에서 한 말 및 9일 학생들과 대화한 내용을 녹취해 조씨한테 보냈다. 녹취록엔 정 교수가 학생들에게 ‘김문기씨가 1999년 국정감사 때 출석해 한 진술, 향후 전망’ 등과 관련한 의견을 밝힌 내용이 담겨 있다. 조씨는 ㅅ씨에게 문자메시지로 “○○아 보내준 것 잘 들었다/ 정대화가 어디서 발언한 거니/ 천막인지 식당인지/ 아이들은 그 자리에 몇명이나 있었는지” 따위를 묻고 “이 내용은 우리가 녹음기로 녹음했다 할게”라고 보냈다.
김문기씨는 이 녹취록을 ‘대학 운영 정상화 방안’과 함께 교육부에 제출하며 “설립자 총장을 음해하는 세뇌교육을 시키고 있음”이라고 적었다. 조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녹취록은 김문기씨에게 보고를 하고 교육부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학생이 먼저 돈을 요구했고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었을 뿐이다. 학생이 직접 정대화 교수와의 대화 내용을 녹음했기에 불법 도청 및 매수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송상교 변호사는 “ㅅ씨가 자의가 아닌 학교 쪽 요구로, 둘 사이 대화가 아닌 제3자의 대화를 녹음한 행위에 비춰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짚었다.
조씨는 <한겨레>에 “나는 총장 비서실장이 아니고 총무처 소속 계약직 직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총장실에 있던 8월22일 기준 교직원 명단에는 조씨의 직함이 ‘비서실 실장’으로 돼 있다.
윤명식 상지대 총학생회장은 “김문기씨 쪽이 총학생회 활동을 염탐하고 간부한테 돈을 줬다니 충격이 크다”고 말했다.
김문기씨 쪽은 2007년과 2008년에도 총학생회 간부들한테 자신들을 지지하는 조건으로 금품 제공 약속 등을 했던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1986년엔 교수 채용 비리 규명을 촉구하는 학생 농성장 주변에 김문기씨 사위(당시 상지대 기획실장)의 지시를 받은 직원들이 “가자 북의 낙원으로” 등 유인물을 제작해 뿌리는 ‘용공 조작’ 사건도 있었다.
김문기씨 쪽은 총장 복귀 이후 사퇴를 요구하는 학내 구성원들과 갈등을 빚는 한편 비판적인 교수들을 상대로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교육부는 8월22일 총장 사퇴를 촉구하고 9월18일 ‘총장 사퇴를 포함한 정상화 방안’을 요구한 뒤로는 추가 대응에 나서지 않고 있다. 김씨 쪽이 ‘총장 선임은 정당하다’며 두달째 버티는데도 교육부가 이사회 감사 등에 나서지 않아 미온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교육부 관계자는 “상황을 확인한 뒤 대처 방안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상지대 교수협의회·총학생회와 교육·시민단체들은 “김문기씨가 총장에 복귀한 뒤 교수·학생을 사찰하고 불법 도청을 시도하는 파렴치한 행동까지 저질렀다. 비교육적 행태까지 벌어지고 학내 분규가 격심해지는 만큼 교육부가 상지대 재정상화 조처를 미룰 이유가 없으며 검찰 등도 학생 매수·도청 의혹을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