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영어 영역의 출제 오류 논란에 이어, 생명과학Ⅱ(과학탐구) 8번 문항도 복수 정답 논란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수능 당일인 13일 밝힌 정답이 교과서의 설명과 어긋난다는 것이다. 생명과학 연구자 일부는 ‘출제 과정의 실수 때문에 정답 오류가 생긴 것 같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현장 교사 일부는 ‘정답 처리에 문제는 없다’고 말해 견해가 엇갈리는 상황이다.
문제가 된 8번 문항은 미생물 대장균이 먹이인 젖당이 주어졌을 때 에너지원을 얻으려 젖당을 분해하는 대사 활동을 어떻게 벌이느냐를 묻는다. 논란의 핵심은, 문항의 ‘보기’ 설명에서 “젖당이 있을 때 야생형 대장균에서 아르엔에이(RNA) 중합효소는 ㉠에 결합한다”는 설명이 옳은지 판단하라는 것이다. 문항에서 제시된 그림에서 ㉠이 디엔에이(DNA) 염기서열 중 어떤 부위인지는 수험생한테 제시하지 않았다.
이 문항의 내용은 <생명과학Ⅱ> 교과서에 유전자 발현의 조절(특히 ‘오페론 학설’)을 설명하는 대목에 자세히 서술돼 있다. 교과서를 보면, ㉠은 젖당분해 효소 등을 만드는 구조유전자의 작동을 억제하는 ‘조절유전자’로 이해된다. “젖당이 있을 때”의 교과서 설명을 보면, 구조유전자가 조절유전자의 억제 단백질에서 벗어나 젖당분해 효소 등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이와 관련한 아르엔에이중합효소가 ‘프로모터’라는 부위에 결합한다. 즉, 아르엔에이 중합효소는 ㉠(조절유전자)이 아닌 ㉡(프로모터)에 결합하는 것이다.
수험생들은 이런 교과서 내용을 근거로 볼 때 8번 문항에 제시된 보기 ㄱ이 틀린 설명인데도 평가원이 옳은 설명으로 처리하고 있다며 항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학계와 교육계의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교과서와 문항을 살펴본 복수의 국내외 생명과학자들은 <한겨레>에 “교과서의 설명은 옳고 이를 바탕으로 출제한 문항에서 보기 ㄱ의 설명은 틀린 것으로 보인다”며 “출제 과정에서 ㉠과 ㉡이 뒤바뀌는 오타 실수가 빚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이들은 “현재 생물학 지식으로 보면, 유전자의 프로모터에 결합해 디엔에이(DNA) 정보를 전사하는 기능의 아르엔에이 중합효소가 ‘조절유전자(㉠)의 프로모터’에도 결합하지만, 오페론 학설을 묻는 이 문항에선 조절유전자보다 ‘구조유전자의 프로모터(㉡)’에 결합한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달리, 한 고교 생물교사는 “젖당이 있거나 없거나 중합효소는 조절유전자(의 프로모터)에 결합하니까, 젖당이 있을 때 ‘㉠에만 결합한다’면 틀린 설명이지만 ‘㉠에 결합한다’고 말하면 틀리지 않은 설명”이라며 “오페론 부분만 볼 게 아니라 전반의 지식을 묻는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오페론 학설을 다룬 문제에서 ㉡ 부위에 관한 설명을 보기로 제시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점에서 함정이 있는 문제로 여겨진다”며 “좋은 문제는 아니지만 오류는 아니다”라고 짚었다.
한 입시학원 강사는 “오페론을 설명하는 문제에서 조절유전자와 프로모터 그림을 제시하고서 중합효소가 어디에 결합하느냐 물으면 가르치는 나도 틀릴 만한 문제”며 “엄밀하게 따지면 오류는 없다지만 수험생들한텐 치사한 문제 같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복수정답 처리를 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생명과학Ⅱ는 3만3221명이 응시했으나, 8번 문항에서 평가원이 내놓은 정답을 고른 학생은 11% 수준이다. 74%는 복수정답 논란이 일고 있는 2번을 골랐다. 평가원은 이 문항에 대해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등 학회에 자문을 의뢰했으며, 이의심사실무위원회 심사를 거쳐 24일 최종 정답과 심의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오철우 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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