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서울 금천구 독산동 독산고의 학교협동조합이 운영하는 학교매점에서 점심을 마친 학생들이 물건을 사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협동조합’ 학교매점 확산
교사·지역사회 뒷받침 힘입어
꾸렸거나 추진 중인 학교 10곳
서울시·교육청, 적극 지원 약속
교사·지역사회 뒷받침 힘입어
꾸렸거나 추진 중인 학교 10곳
서울시·교육청, 적극 지원 약속
19일 오전 10시20분. 2교시 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리자 서울 금천구 독산고의 작은 매점에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벌써부터 배가 고픈 아이들 20여명은 간식을 먹고 수다를 떠느라 야단법석이었다. 꿀맛 같던 10분의 휴식시간이 끝나갈 무렵 귀에 익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수업시간이다~.” 판매대 안쪽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김현미(47)·박영인(43)씨로 학부모들이다. “정신없지요. 그래도 재미있어요. 예쁘고, 기분도 좋아지고…. 내 딸 같죠.” 둘은 이달 3일부터 운영을 시작한 ‘독산누리 사회적협동조합’의 이사장과 이사를 맡아 팔자에 없던 ‘매점 아줌마’가 됐다.
학생들이 간식이나 문구를 사러 몰려드는 학교매점을 학생·학부모·교사들이 손수 운영하는 학교가 점차 늘고 있다. ‘학교협동조합’ 방식이다. 지난해 첫발을 뗀 경기 성남시 복정고의 매점 ‘복스쿱스’, 서울 구로구 영림중의 매점 ‘여물점’(여유있고 물좋은 매점)과 경기 기흥고·흥덕고·한국도예고·덕이고·한국문화영상고, 부산 국제중·고, 광주 수완중, 강원 원주고 등 10곳이 이미 꾸려졌거나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독산고에선 지난해 4월 홍태숙(42) 교사 등 학교운영위원들이 나서 ‘학생에게 건강한 먹을거리를 주자’, ‘매점 수익은 학생들에게 돌려주자’는 의견을 냈다.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1년 넘게 논의한 끝에 사회적협동조합을 창립하기로 하고 교육부 인가를 받아 조합이 지난달 매점 임대 운영자로 낙찰됐다. 김홍섭(61) 독산고 교장은 △판매·운영에 학부모들이 앞장서고 △학생 대표들이 학생의 눈으로 품목·가격 결정에 참여하며 △교사들이 적극 거들고 △금천구 사회적기업지원센터·금천아이쿱생협과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등 지역사회가 뒷받침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조합원으론 학생 21명, 학부모 17명, 교사 18명, 주민 4명 등 60명이 참여했다. 5000원 낸 학생도, 24만원을 낸 학부모도, 조합원인 교장도 ‘1인 1표’의 협동조합 원리에 따라 동등한 의사결정권을 갖는다. 학생회장 김민성(17·2년)군, 부학생회장 임하연(17·2년)양도 이사로서 품목 선정, 가격 결정에 참가한다.
1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세계사회적경제포럼(GSEF) 2014 서울’의 토론회에선 학교협동조합이 활발할 말레이시아 사례가 소개됐다. 1993년 협동조합법 제정 이후 말레이시아는 교육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2013년 현재 학교협동조합 2097개에 학생 조합원만 177만명에 이른다. 사업도 수학여행, 세탁, 농업, 기념품 제작까지 다양하다.
이런 움직임은 서울에서도 빠르게 번져갈 전망이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17일 ‘글로벌 교육혁신도시 서울’을 선언하며 20개 교육협력사업 가운데 하나로 ‘민주적 참여를 통한 학교매점 협동조합 활성화(2018년까지 20개 설립 지원)’를 내놨다. 조 교육감은 “학교협동조합은 초중등학교마다 교사, 학생, 학부모, 지역주민이 윤리적 경제활동과 소통·나눔의 교육을 실현하는 교육경제공동체”라며 지원을 약속했다. 서울시 학교협동조합 추진단의 김명신 단장(전 서울시의원)은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이 교육과정·교재 개발, 협동조합 교육 등을 뒷받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달라진 매점을 찾은 독산고 학생들은 “값도 100~300원 싸졌고, 좀더 밝아진 것 같다”고 했다. 엄마들이 지키는 판매대에선 미덥지 않은 햄버거 등은 볼 수 없고, 우리밀 등 친환경 과자들이 앞자리를 채웠다. 교사들의 발길도 늘었다. 김홍섭 교장은 “앞으로 학교협동조합이 수학여행, 체험활동 등까지 맡게 되면, 학교 수익사업의 투명성을 높이면서 교사들은 교육활동에 전념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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