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바지를 입은 여학생(왼쪽)과 교복 치마를 입은 여학생.
“교복 업체에서 산 치마인데도 학교에서 너무 짧다고 벌점을 줘서 열 받았어요. 그래서 교복 바지를 입었는데 너무 편해요. 앞으로도 쭉 입으려고요.” 서울의 한 고등학교 2학년인 손아무개(18)양은 올해 1학기부터 교복 치마 대신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만족감이 크다. 손양은 “친구들한테도 바지를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아무개(18)양은 학교에서 교복 바지를 허용하지 않아 불만이라고 했다. 바지를 입으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치마는 바지보다 행동할 때 불편하고 겨울에는 추워요.” 이양의 학교는 치마에 체육복 바지를 받쳐 입으면 벌점을 준다.
이번 겨울에도 ‘교복 치마파’ 대 ‘치마·바지 선택파’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여학생도 바지를 입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 지는 10여년이 됐다. 지난해에는 한 여학생이 치마만 입게 한 교칙이 인권을 침해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기도 했다. 2014년 겨울, 여학생들의 치마·바지 선택권은 얼마나 보장되고 있을까.
시·도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내려보낸 ‘교복 선정·변경 구입 등에 관한 지침’에는 ‘학생·학부모·교원의 의견을 반영해 학생들이 스커트와 바지를 선택·착용할 수 있도록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일선 학교에서 치마만 입기로 결정하면 학생들은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시교육청 교복 담당 장학사는 23일 “관내 318개 고등학교 중 절반가량이 교복 바지 착용을 제한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했다.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하지만 보수적인 교육 현장이 쉽게 따라오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교복 바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 학교에서도 여학생들은 선뜻 바지를 입지 못한다고 한다. 교복업체가 치마만 팔거나 학교가 치마만 공동구매하는 경우가 많아, 바지를 입고 싶으면 남학생 바지를 별도로 사서 줄여 입는 수밖에 없다. 번거롭기도 하지만, 교복 한 벌을 걸치더라도 ‘스타일과 핏’을 ‘생명’처럼 여기는 사춘기 여학생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등학교 2학년인 김아무개(18)양도 그렇게 설명했다. “교복 바지가 있지만 안 입어요. 남학생 바지를 사서 줄여 입어야 하거든요. 절대 안 예뻐요. 그래서 춥더라도 치마를 입어요.”
모두가 치마를 입는데 혼자만 바지를 입으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는 시선도 부담스럽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인 현아무개(15)양은 “여성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 입는다. 주로 ‘보이시’한 친구들이 바지를 입는다”고 했다.
반면 복장 규정에서 남녀 구별을 없애는 학교도 있다. 2010년부터 치마·바지 선택권을 준 서울 용산구 한강중학교는 최근 남학생들처럼 넥타이를 매고 싶다는 여학생들 의견이 많아 학교운영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성덕현 한강중 교장은 “자기 마음대로 골라서 입을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 치마든 바지든 강요하기 시작하면 그건 성차별과 인권침해가 된다”고 말했다.
글·사진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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