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부산 금정구 장전동 부산대 본관 건물 앞에서 이 학교 학생들이 전날 이 건물에서 뛰어내려 숨진 국문과 고현철 교수의 명복을 빌고 있다. 부산/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국공립대 교수·교직원들 비판
교육부 ‘총장 직선제 폐지’ 압박에
간선제로 뽑힌 후보마저 줄퇴짜
교육부 ‘총장 직선제 폐지’ 압박에
간선제로 뽑힌 후보마저 줄퇴짜
고현철(54) 부산대 교수가 ‘총장 직선제 폐지’에 항의하며 목숨을 끊은 것을 계기로 퇴보하는 대학 민주주의에 대한 교수들의 절망과 분노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대학 선진화·구조조정’ 등을 빌미로 이명박 정부부터 이어져온 일련의 교육정책이 대학의 자율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만큼 교수사회의 조직적 반발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고 교수가 재직하던 부산대 민주동문회는 18일 성명을 내어 “대학을 교육부의 꼭두각시로만 여기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대학의 자율성을 지키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며 “교육부가 정권의 입맛에 맞는 대학 총장을 뽑으려 해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고 규탄했다. 부산대 교수회는 총장 직선제 포기를 압박하는 교육부에 정면으로 맞설 것임을 분명히했다. 부산대의 한 교수는 “전국 국공립대가 부산대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부산대는 고 교수의 죽음으로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중압감을 느낀다. 침묵하던 동료 교수들이 대학의 자존심을 짓밟는 교육당국의 조처에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대 교수회도 이날 총장 직선제 회복에 나서자는 취지의 글을 교수들한테 보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송주명 상임의장(한신대 교수)은 “대학을 일방적으로 통제하고 군림하려는 대학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교육계에선 이번 사건의 원인을 그동안 교육부가 대학을 국가권력, 자본권력에 종속시키려 했던 데서 찾는다. 국립대 총장 직선제 폐지는 이명박 정부 때 공식화한 이래 박근혜 정부 들어 가속화했다. 2012년 이주호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국립대 선진화 2단계 방안’을 추진하며 총장들한테서 직선제 폐지를 약속하는 양해각서(MOU)를 받아냈다. 그 결과 총장 직선제를 고수했던 경북대는 2010년 60억원에 이르던 재정지원이 0원으로 깎였다. 부산대·경북대·전남대·전북대 등은 어쩔 수 없이 학칙을 바꿔 직선제를 폐지했다.
박근혜 정부는 압박 강도를 더 높였다. 총장 직선제 폐지 시한을 제시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정부 지원금을 전액 환수하거나 삭감하겠다고 을렀다. 심지어 ‘총장추천위원회’의 위원을 뽑는 데도 선호도 조사나 설문조사 방식 등을 쓰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교육부는 총장 직선제가 파벌 형성이나 논공행상 같은 폐해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육부가 대안으로 내놓은 총장 공모제 방식 역시 후보자 난립이나 파벌 등의 문제를 여전히 드러내고 있다.
나아가 현 정부 들어 교육부는 공모제(간선제) 방식으로 적법하게 뽑은 총장 후보들마저 연거푸 퇴짜를 놓고 있다. 2006년 이후 총장 후보로 선출됐다가 교육부에 의해 거부된 14건 중 8건이 현 정부에서 이뤄졌다. 반면 교육부는 한국체육대 총장 후보들을 4차례나 퇴짜 놓다가 올해 2월 친박 정치인 김성조(57) 전 새누리당 의원을 총장으로 승인했다. 이를 두고 “사실상 총장 임명제로 회귀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부산 대구 청주/김광수 김일우 오윤주 기자,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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