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문화연대와 전교조 등 53개 단체로 이뤄진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지난달 13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한글이 목숨이다’라고 적힌 펼침막을 든 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교육부가 초등학생 교과서에까지 한자를 병기하려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밀어붙여 어린이의 국어 교육에 어려움을 가중시키리라는 비판이 거센 가운데, 초등 교사 10명에 4명꼴로 한글 읽기·쓰기에 부진한 학생이 적잖아 수업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8월 교사연수에 참가한 전국 초등학교 교사 2142명을 상대로 ‘한글 기초 문해교육 실태’를 설문조사한 결과를 3일 발표했다.
한글 읽기·쓰기가 심하게 부진한 학생이 있다는 교사가 55.6%로 과반이다. 초등 1~2학년을 가르친 적이 있는 교사(990명) 사이에선 그 비율이 더 높아 63.1%에 이른다. 한글 부진 학생이 ‘10% 이상’이라는 교사 비율은 17.8%였는데, 초등 1~2학년을 맡은 교사는 20.5%로 더 높았다. 이런 영향으로 “교실에서 읽기·쓰기 격차 탓에 수업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털어놓은 교사가 41.5%에 이른다.
초등학생 한글 부진은 사회경제적 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도시 지역, 농산어촌 읍·면 지역에서 더 심했다. 1~2학년 교육 경험이 있는 교사 가운데 한글 부진 학생이 ‘10% 이상’이라는 비율이 34%다. 한글 부진 학생이 ‘20% 이상’이라는 교사는 읍·면 지역에선 14.2%로, 도시의 2.8%에 비해 5배 넘게 높았다. 좋은교사운동이 올해 읍·면 지역 초등학생을 상대로 ‘기초 한글문해 검사’를 해보니 1학년의 18.5%와 2학년의 6.8%는 가장 낮은 수준(자음+모음 구조인 ‘가, 나…’ 같은 글자)의 기초 한글도 해득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38.8%는 다문화가정 자녀로 조사됐다.
하지만 한글 기초가 부진한 학생들이 학교에서 이를 만회할 기회는 미흡했다. 이런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별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응답은 28.2%에 그쳤다. 현행 ‘2009 교육과정’은 기초 국어가 부족한 학생을 위해 프로그램을 편성·운영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는 있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구현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다문화가정 학생들은 집에서 한글을 따로 배우기가 어려울 수 있어 한글 부진이 지속되거나 학년이 오를수록 더 심화할 위험이 큰 것으로 지적된다.
초등교사 양성기관인 교육대학에서도 한글 기초 문해교육 지도방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대에서 체계적인 한글 기초 지도방법을 배웠는지를 묻는 질문에 교사 63.5%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유은혜 의원은 “가장 중요한 기초·기본인 한글 읽기·쓰기 교육에서 매우 걱정되는 징후가 뚜렷하다. 그런데도 한글 교육 등에 부작용이 우려되는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를 강행하려는 교육부 태도를 납득할 수 없다”고 짚었다.
이수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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