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글로벌 인재전형 “제시문 국문…답안은 영어로”
외대 경시대회 우수자 전형 외국어 에세이 시험 치러
교육인적자원부가 ‘논술고사 기준’을 통해 ‘영어 논술’ 금지 방침을 밝혔는데도, 일부 대학이 수시 2학기 전형에서 외국어로 답안을 쓰는 논술시험을 치렀거나 치를 예정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고려대는 올해 신설된 수시 2학기 글로벌 인재 전형에서 영어 논술 시험을 치르기로 했다. 고려대 입학처 관계자는 16일 “글로벌 인재 전형에서는 영어 면접과 함께 영어 논술을 실시할 계획”이라며 “영어 논술은 지문과 문제는 수시 2학기 일반전형의 언어 논술과 똑같지만, 답안을 영어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대의 수시 2학기 일반전형 언어 논술에는 3~5개의 국문 제시문을 요약하는 문제와, 제시문에서 하나의 공통 주제를 찾아내 제시문 사이의 관계를 밝히고 공통 주제에 대한 생각을 밝히는 문제가 출제될 예정이다. ‘논술고사 기준’을 따르겠다며 지문은 국문으로 내면서, 요약과 논술은 영어로 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논술고사 기준’ 위반이다. 교육부는 8월 ‘논술고사 기준’을 발표하면서, “금지 유형에 ‘외국어로 된 제시문의 번역 또는 해석을 필요로 하는 문제’를 포함시킨 취지에 비춰 볼 때, 영어로 답안을 쓰는 논술은 당연히 본고사로 봐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박융수 교육부 대학학무과장은 “영어 논술은 학생의 사고력이 아니라 외국어 실력을 평가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논술고사 기준’에 어긋난다”며 “이미 수험생들에게 고지했기 때문에 변경이 어렵다면 사후심의 과정에서 문제를 삼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고려대 관계자는 “글로벌 인재 전형의 영어 논술은 일반적인 논술고사와는 성격이 다른 만큼 교육부의 ‘논술고사 기준’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외국어대도 8일 경시대회 및 플렉스(한국외대가 개발한 외국어 능력 시험) 성적 우수자 전형에서 외국어 에세이 시험을 치렀다. 한국외대 관계자는 “일종의 언어 특기생을 뽑는 전형인데, 전공할 언어의 구사능력을 검증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며 “전공별로 치르는 외국어 에세이 시험은 논술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학 쪽 해명대로 외국어 에세이가 논술고사가 아니기 때문에 ‘논술고사 기준’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더욱 큰 문제가 남는다. ‘논술 이외의 대학별 필답고사’를 금지하고 있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위반이기 때문이다. 본고사 금지 위반으로 제재 대상이다.
한만중 전교조 대변인은 “주요 대학들이 너도나도 각종 특별전형을 통해 이런 식으로 사실상의 외국어 본고사를 치르면 머지않아 ‘논술고사 기준’은 무용지물이 되고, 관련 사교육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며 “교육부가 이런 상황에 대해 수수방관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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