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2015년
거꾸로 가는 민주주의
③ 총장 간선제 반대 ‘극단’ 선택한 부산대 교수 고현철
거꾸로 가는 민주주의
③ 총장 간선제 반대 ‘극단’ 선택한 부산대 교수 고현철
전국 국공립대 학생들이 지난 10월2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대학과 사회의 민주주의를 외치며 지난 8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현철 부산대 교수의 영정사진을 들고 ‘민주적 총장 직선제’ 보장을 촉구하는 추모집회를 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세월호 조사실태 지켜보며
“무뎌진 의식 각성되고
사회 민주화 위해서라면…” 그의 외침은 전국으로 번져
7개 교수 단체 ‘직선제 사수’ 결의
하지만 교육부는 “애초 방침대로” 고 교수의 지인들은 그가 단지 국립대 총장 직선제를 위해 ‘자기의 몫’을 감당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주주의가 뒷걸음치는 것을 막기 위해 불쏘시개 구실을 자처했다는 것이다. 고교·대학 동기인 동길산 시인은 “민주주의는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되지 않았으니까 고 교수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고 교수는 유서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정보원이 2012년 대선에 개입한 사건과 함께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성과인 국립대 총장 직선제가 간선제로 바뀌는 것을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독재시대로 회귀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인식했다. 그는 “대학의 민주화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의 보루”라고 밝혔다. “무뎌져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각성되고 진정한 대학의 민주화, 나아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겠다는 결심을 실천했다는 게 지인들의 설명이다. 이는 고 교수가 일시적인 감정에 휩싸여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정황에서도 확인된다. 고 교수의 아내(54)는 <한겨레> 전화 인터뷰에서 “세월호 사건 진상조사 등 진행 과정을 보면서 ‘이래서는 해결되는 게 없다’며 힘들어하고 분노했다. 전태일처럼 해야 자극이 되지 않을까 자주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봉제공장 노동자 전태일은 1970년 서울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고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이틀 전인 8월15일 투신을 시도한 것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희생’을 고민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는 이날 부산대 대학본부 국기게양대에서 뛰어내리려 했지만 눈치를 채고 뒤따라온 아내가 말렸다. 고 교수의 아내는 “교육자로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순수한 마음을 전하고자 그런 것 같다. 제가 그 마음을 100% 이해할 수 없지만 순수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며 울먹였다. ‘대학과 사회의 민주주의를 되살려야 한다’는 고 교수의 외침을 따르겠다는 행동이 이어지고 있다. 부산대 교수회는 지난달 17일 전체 교수와 직원·학생 대표가 참여하는 직선 투표를 통해 두 명의 차기 총장 후보를 뽑았고, 대학본부는 14일 교육부에 ‘두 명의 후보 가운데 한 명을 임명해 달라고 대통령한테 요청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부산대 국어국문학과는 2013년 고 교수가 펴낸 시집 <평사리 송사리>를 9월 다시 발간해 시에 담긴 고 교수의 시대정신을 알렸다. 그의 외침은 부산대 밖으로도 퍼지고 있다. 전국거점국립대교수회연합회 등 7개 교수단체는 총장 직선제 사수를 결의했다. 총장 선출을 앞둔 경상대, 강원대 등의 교수들은 직선제 선출을 결의하고 교육부 및 대학본부와 싸우고 있다. 남송우 부경대 교수 등 부산의 지식인과 시민단체 간부 등 500여명은 지난달 ‘부산선언’을 발족하고 “제2의 고현철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지난 2일 국립대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고 간선제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부산/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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