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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페메’로 고백하고 카톡으로 이별하는 10대의 연애

등록 2016-07-04 19:40수정 2016-07-07 10:58

페이스북·카톡 등이 주요 소통수단

3일 만에도 헤어지는 스피드 연애

“부모들 빼곤 다 안다” 말 나올 정도

“최근에 열세 번째 연애를 시작했어요. 만난 지 90일 됐어요. 같은 학교 3학년 오빠예요.”

지난달 말 서울 마포구의 한 중학교 운동장에서 만난 이 학교 1학년 김예솔(가명)양은 연애 경험을 묻자 신이 나서 말했다. 김양과 같이 있던 다른 여학생 네 명 중 이수진(가명)양도 “나는 여덟 번 하고 잠시 쉬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조가영(가명)양은 생애 두 번째 연애, 강조은(가명)양은 첫 연애 중이라고 말했다. 수진양은 옆에서 듣고만 있는 박민희(가명)양을 가리키며 “얘는 모쏠(모태솔로·연애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며 까르르 웃었다.

‘성춘향과 이몽룡’부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 택이 정환이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10대가 연애호르몬이 왕성한 시기라는 건 주지의 사실. 하지만 기성세대에게 ‘10대의 연애’는 늘 낯설다.

■ 저연령화, 디지털화, 스피드화된 연애

예솔양은 이 학교에서 자타공인 가장 유명한 ‘커플’이다. 교복 블라우스 안에 흰색과 분홍색이 교차하는 줄무늬 티셔츠를 받쳐 입었다. 연애 시작 기념으로 얼마 전 남자친구와 맞춘 옷이다. 복도에서 친구들이 조르면 교복 블라우스를 올리고 안에 입은 커플티를 보여준다. 그럼 “와” 탄성이 나온다. 방과 후엔 교복을 벗고 티셔츠만 입는다. 매일 입고 다니는 이유를 묻자 김양은 “자랑하려고요”라고 말했다.

10대의 연애는 더이상 소수 ‘노는 아이들’의 이야기거나 들킬까 조심하는 ‘비밀’이 아니라 ‘자랑’이고 ‘스펙’이다. 2013년 서울시 ‘청소년성문화연구조사’ 결과를 보면 초등학생 41.5%, 중학생 37.8%, 고등학생 46.3%가 연애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수험 압박이 커진 탓에 연애 시작 연령은 ‘응팔’의 시대보다 더 내려갔다. ㅎ여고 3학년 김아무개(19)양은 “중학교, 남녀공학 애들이 가장 활발하다. 요즘은 초등학생끼리도 많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중학교에서 만난 김예솔(가명·13)양이 최근 남자친구와 티셔츠를 맞춰 입고 사진을 찍는 모습. 김양 제공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중학교에서 만난 김예솔(가명·13)양이 최근 남자친구와 티셔츠를 맞춰 입고 사진을 찍는 모습. 김양 제공

예솔양, 가영양, 조은양은 모두 ‘페메’(페이스북 메신저)로 고백을 받고 연애를 시작했다. 예솔양은 학교에서 얼굴만 아는 사이였던 ‘오빠’가 페북(페이스북)으로 찾은 뒤 페메로 “사귀자”며 고백을 해 왔다. 예솔양은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열세 번 연애하는 동안 한 번도 직접 만나서 고백을 하고 시작한 적이 없다. 열세 번 모두 페메로 시작했다. 세 번은 내가 먼저 사귀자고 했다”고 말했다. 상대방의 연락처를 모르는 상태에서 말을 걸기엔 페메가 제격이다. 페메로 고백을 한 뒤 상대방이 받아들이면, 페북 신상정보에 ‘연애중’을 띄우며 관계가 시작된다. 헤어질 때도 페메나 카카오톡(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예솔양의 최장기 연애는 186일, 최단기 연애는 3일이었다. 예솔양은 “186일 사귀었던 전 남친이 ‘우린 좀 안 맞는 것 같다’고 카톡을 보냈는데, 기분은 좀 안 좋았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끝냈다”고 말했다. 가영양도 “첫 번째 연애는 2주 만에 헤어졌다”고 말했다. 워낙 짧게 만났다가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1년 이상 된 커플들은 친구들 사이에서 ‘부부’라고 불리기도 한다.

■ ‘사돈끼리 인사하시죠’에 당황하는 부모

에스엔에스 시대 10대의 연애 경험이 많아지고 주변에도 쉽게 연애 사실이 알려지다 보니 “부모 빼곤 다 안다”는 말들도 나온다.

2년 전 중1 딸의 학부모 모임에 나갔던 이아무개(52)씨는 주변 학부모들이 다른 학부모를 가리키며 “사돈끼리 인사하시죠”라고 말해 어리둥절해졌다. 알고 보니 딸은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 학교의 ‘1호 커플’(가장 대표적인 커플)이었다. 이씨는 어쩔 줄 몰라 “나중에 봐야 알죠” 하며 웃어넘겼지만, 한편으로는 놀라고 한편으로는 불편한 감정을 숨기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학부모 장아무개(53)씨 역시 중3 딸의 학교 축제에 갔다가 화들짝 놀랐다. 축제 분위기에 들뜬 학생들이 2학년 한 커플에게 “뽀뽀해”라고 부추기자, 이들이 교사와 학부모가 보는 가운데 운동장에서 입맞춤을 한 것이다. 장씨가 딸에게 “너무 심하지 않니”라고 말하자, 딸은 “엄마, 저 상황에서 주춤거리면 애들이 더 뭐라고 해. 그냥 하는 게 나아”라고 답해 더욱 놀랐다.

자녀들의 연애에 불안해하는 부모들에 대해 목소희 서울시교육청 성인권정책전문관은 “한 강의에서 학부모들에게 ‘청소년은 성적인 존재인가요?’라고 물었더니 한 분이 ‘성적인 존재는 맞는데,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하더라. 청소년은 성적인 존재를 넘어 엄연한 성적 주체인데 어른들은 그걸 부정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목 전문관은 “‘주체’라는 것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며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의미다. 연애도 하나의 인간관계로 보고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는 게 낫다”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자료집 ‘연애 권하는 사회 속 10대의 연애’ 보고서(2013)를 보면 중학생들은 연애의 장점으로 ‘마음속에 있는 말을 편히 할 수 있는 상대가 생긴다’ ‘남의 의견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된다’ 등을 적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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