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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원 보낸다고 ‘책읽는 기쁨’ 깨닫나요

등록 2005-01-30 17:48수정 2005-01-30 17:48

 한 중학교 도서실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도서관을 활용한 프로젝트수업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 중학교 도서실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도서관을 활용한 프로젝트수업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 새 대입제도 독서교육 어떻게 할까
‘점수 올리기 독서’되레 책과 멀어지게 해
부모 잣대 ‘좋은 책’보다 아이 눈높이 맞춰야
책 함께 고른뒤 읽고 감상하면 ‘흥미 두배’

요즘 이른바 ‘독서교육’이 화두다. 물론 동서고금을 통틀어 독서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적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교육부가 ‘대학 입시’라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 들고 바람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2007학년도 고교 신입생(현재 중학교 1학년)부터 교과별 독서활동을 학생부에 기록해 대입 전형에 활용하도록 한다는 내용 등이 담긴 ‘2008학년도 이후 대입제도 개선안’이 때 아닌 독서교육 바람의 진원지다. 대입에서 수능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논술과 심층면접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 것도 독서교육이 ‘뜨고 있는’ 중요한 이유다. 서울 ㄱ중 최아무개(15·2년)양은 “선생님들도 바뀐 대입제도를 예로 들며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학교 수업과 평가에서도 독서와 논술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어서, 요즘 들어 특히 독서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틈을 비집고 ‘독서 사교육’이 우후죽순처럼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잇따라 선을 보이고 있는 독서·토론·논술 전문 학원과 학습지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책 읽기마저 사교육에 의존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readread.co.kr) 대표인 서울 숭문고 허병두 교사는 “학교와 집에서 즐겁게 책을 읽지 않는 아이에게 학원에서 토론하고 글을 쓰기 위해 억지로 책을 읽힌다고 해서 효과가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평소 꾸준히 책을 읽다 보면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결과적으로 토론과 논술을 잘할 가능성이 높지만, 단지 토론과 논술을 잘하기 위한 목적으로 책을 읽는다면 책 읽기의 즐거움을 잃게 되고 책과 더 멀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는 “독서가 입시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면, 학생들은 책을 읽는 과정에서 ‘지은이’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출제자’나 ‘심사위원’을 만나게 되고, ‘문제’라는 틀에 스스로 갇히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스스로 책 읽기의 즐거움에 빠져들어 폭넓게 책을 읽은 아이들은 대체로 입시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 게 많은 교사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서울 중동고 양제열(19·3년)군도 그런 경우다. 양군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마을문고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정도로 책 읽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는 공공 도서관에서, 중·고등학교 때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틈날 때마다 읽었다. 야간자율학습 때도 숙제만 끝내 놓고는 주로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자신의 대출기록을 살펴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단다. 이렇게 꾸준히 책을 읽은 것이 입시에는 어떤 도움이 됐을까? 양군은 “웬만한 논술 문제는 이미 책을 읽으면서 한 번쯤 생각해 봤던 주제들이었고, 언어영역에서도 지문이 생소하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수능이나 논술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은 것은 전혀 아니다”라며 “만일 그랬다면 그렇게 많은 책을 읽지 못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독서교육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는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집에서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많은 전문가들은 “조바심 내지 말고 아이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아이의 흥미와 관심,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동·서양의 고전이나 명작 등 부모의 잣대로 고른 ‘좋은 책’들을 아이에게 읽으라고 들이미는 것은 아이를 책과 멀어지게 하는 지름길이다. 추천도서목록을 맹신하는 것도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서울 구룡중 도서관 담당인 서미선 교사는 “모든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좋은 책은 없다”며 “아이의 상황은 부모가 가장 잘 아는 만큼 추천도서라 하더라도 책을 직접 들춰 보며 아이에게 맞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모와 아이가 정기적으로 서점에 가서 함께 책을 고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서 교사는 “서점에 가서 청소년 코너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가를 죽 훑어본 뒤, 사고 싶은 책 한 권을 골라 오게 하고,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 주면 독서에 대한 동기 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책을 매개로 자녀와 대화를 하는 것도 좋다. 아이가 요즘 어떤 책에 관심을 갖고 있고, 그 이유는 뭔지 물어보거나, 아이가 읽고 있는 책을 부모도 함께 읽은 뒤, 주인공이나 인상 깊었던 대사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이다. 어린이도서연구회 청소년 책 모둠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미숙(42)씨는 “아이에게 책을 권할 때도 그냥 주지 말고, 책의 지은이나 줄거리, 읽은 느낌 등을 가볍게 툭툭 건네면 책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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