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로비에 임직원의 부정청탁을 금지하는 내용의 입간판이 서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서울 강북지역의 한 사립대에 다니고 있는 ㄱ(23)씨는 지난 26일 금융기관에 최종 합격했다. 4학년 2학기 초에 조기 취업을 하게 된 것이다. 회사 쪽은 오는 10월부터 출근을 하라고 알려왔다. 출근하게 되면 수업 출석을 할 수 없어, 담당 교수들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에프(F) 학점만 주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지만, 교수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성적 처리와 관련한 부탁은 ‘부정청탁’에 해당하고, 조기취업생이라도 수업에 빠지면 학점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최근 취업에 성공한 대학생 김아무개(24)씨도 비슷한 처지다. 마지막 학기 전공과목 6학점이 남아있지만, 수업을 듣지 않고는 학점을 받을 방법이 없다. 김씨는 “전공과목은 야간 강의나 사이버 강의가 없어 무조건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결석할 수밖에 없다. 출석 일수를 채우지 못해 학점이 안 나오면 졸업이 안 돼 취업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이 28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교육부가 조기 취업 학점인정 문제와 관련해 늑장 대처하면서 ‘취업 바늘구멍’을 통과한 조기취업생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일부 대학들이 조기취업생에 대한 학점 관련 학칙을 아직 바꾸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 26일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학칙을 개정해 조기취업생들에게 학점을 부여할 수 있다는 공문을 보냈다. 이에 앞서 국민권익위원회가 조기취업생에 대한 관행적인 학점 부여가 김영란법에 저촉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아 학생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동안 대학에서는 학기 중에 취업한 학생들이 출석 일수를 채우지 못하더라도 취업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이른바 ‘취업계’를 내면 학점을 관행적으로 인정해줬다.
ㅎ대학 관계자는 “학칙을 고치려면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도 해야 하고 대학평의원회 심의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며 “지금으로써는 학칙을 개정할 때까지 학생들과 교수들이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희대의 한 교수도 “학교로부터 취업계를 인정하라는 지침을 아직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교육부가 하루빨리 세부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송기석 국민의당 의원은 “김영란법 입법예고가 지난 5월에 됐는데도 교육부가 넉 달 동안 무얼 했는지 궁금하다”며 “온라인 강의 수강이나 보고서 작성 등으로 조기취업생들이 출석을 대체할 수 있도록 교육부가 지침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8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취업계 문제에 대해 “김영란법을 검토했으나 그런 것까지 문제가 되는지 인지가 늦어졌다”며 “권익위에 요청해서 학생들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필요한 조처를 하겠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