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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선생님도 학생들도 초롱초롱

등록 2005-11-06 17:08수정 2005-11-07 13:57

서울 중동중 2학년 4반 학생들이 지난달 26일 오전 사회 교과교실에서 모둠별로 컴퓨터가 배치된 책상에 둘러앉아 송영심 교사가 낸 돌발 퀴즈의 답을 찾으려 열중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a href=mailto:jsk@hani.co.kr>jsk@hani.co.kr</a>
서울 중동중 2학년 4반 학생들이 지난달 26일 오전 사회 교과교실에서 모둠별로 컴퓨터가 배치된 책상에 둘러앉아 송영심 교사가 낸 돌발 퀴즈의 답을 찾으려 열중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즐거운 학교 싹틔우는 ‘교과교실’

학생들은 저마다 학습지를 받아들고 문제를 풀기 시작한다. 이웃 반 친구가 낸 영어 단어시험이다. 지난 달 18일 오후 7교시, 서울 성동구 자양고등학교 영어 교과교실에 들어선 2학년7반 학생들은 이렇게 수업에 참여했다.

송형호(46) 교사는 이어 프로젝션 텔레비전 화면으로 학생들의 시선을 끈다. ‘스코틀랜드 문화’가 주제인데, 컴퓨터로 화면을 넘기며 백파이프 설명이 등장하면 연주를 들려주고, 낯선 단어는 짤막한 플래시 게임으로 맞추게 하며 ‘눈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이날 마지막 영어 수업 50분은 훌쩍 지나갔다.

“아마 학급 교실에서였다면 절반 넘게 졸았을 거예요.” 7년째 교과교실에서 수업해 온 송 교사의 노하우는 연주 장면 파일도, 단어 퀴즈 게임도 학생들이 찾도록 해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다. 황인수(17)군은 “공부하며 친구들과 교류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학습자 중심 교육’을 내건 7차 교육과정이 도입된 지 5년째, 학교 교실의 수업 풍경은 그다지 바뀐 게 없는데 교과교실에서만큼은 좀 달랐다.

수원 칠보중 교과교실(3층) 배치도
수원 칠보중 교과교실(3층) 배치도
8년 전부터 교과교실을 적용해 온 서울 강남구 중동중. 지난달 26일 국사 수업을 위해 ‘사회C’ 교실로 모인 2학년 4반학생들은 모둠별로 둘러앉아 컴퓨터를 다루며 마치 게임하듯 수업에 참여했다. 송영심(45) 교사는 마이크를 쥔 채 고려시대 천리장성 지도 찾기 등의 돌발 퀴즈를 내며 모둠별로 점수를 주거나 깎으며 관심을 끌었다. 왕준일(14·2년)군은 “교실을 이동하는 게 불편하긴 해도, 보통 수업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학급 교실에서 교사들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있는 교실로 찾아가 수업을 받는 장면들이다. 미국 중등학교나 우리의 대학교를 떠올리면 된다.


2002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학교 교육 내실화 연구’를 보면 영어과 교사들은, 교과교실 배정과 그에 걸맞은 시설의 확보를 첫손에 꼽았다.

교과교실의 장점은 무엇보다 수업의 질 개션을 꾀하는 데 유리하다는 점이다. 교사가 강의하고 연구하며 학습자료를 두고 학생과 면담하는 장이 된다는 것이다.

송형호 교사는 “교실로 학습자료나 도구를 챙겨가도, 컴퓨터를 가동하느라 몇 분을 놓치면 이미 수업 분위기는 망치고 만다”며 교과교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교과교실은 교실과 기자재 부족 등 여건 미흡으로 그다지 늘지 않았다. 중동중은 2학년까지 전과목 교과교실 수업을 실시하다가 최근에는 1학년만 전과목을 적용하는 것으로 물러섰다. 학생들 이동에 따른 혼잡과 안전 사고 우려, 교사 업무 과중 등을 내세운 반론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면적인 교과교실제를 시도하는 학교들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인창중은 2001년부터 모든 학급의 수업을 교과교실에서 한다. 손종욱(49) 교장은 모든 교사에게 교실 1곳을 배정하는 ‘1교사 1교실제’라고 소개했다. 교무실에서 책상을 뺐다. 교사들이 행정 직원처럼 머물지 말고 “교실에서 아이들 곁에 있어 달라는 뜻에서였다”고 한다. 일부 교사들은 반발했지만 행정 전산화로 업무를 줄이겠다며 설득했다.

예컨대 1학년1반 학생들은 담임 교사가 있는 교실에서 조회를 한 뒤, 시간표에 따라 교과교실을 찾아다닌다. 급식실이 마련되기 전에는 담임 교사와 점심을 먹은 뒤 종례 때까지 교과교실로 옮겨다닌다. 초창기엔 학생들이 서너 층을 오르내리고 교사들은 복잡한 시간표를 조정하느라 진땀을 흘렸지만 날로 안정돼 가고 있다고 전한다.

생활지도가 소홀해지는 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으나 실제로 해보니 기우였다. 교사들의 상담 시간은 줄지 않았다. 아이들이 옮겨다니면 안전 사고가 늘 것이라는 걱정도, “복잡한 도로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덜 나듯” 아이들이 잘 적응하면서 잦아들었다.

1학년생에겐 전 과목을 교과교실에서 가르치는 서울중동중에서 1학년 학생들이 지난달 26일 4교시 수업을 앞두고 사회 교과교실 앞에서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김진수 기자 <a href=mailto:jsk@hani.co.kr>jsk@hani.co.kr</a>
1학년생에겐 전 과목을 교과교실에서 가르치는 서울중동중에서 1학년 학생들이 지난달 26일 4교시 수업을 앞두고 사회 교과교실 앞에서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교사들이 교실이 있거나 복도를 오가며 “늘 가까이 있어서인지 교내에서 담배가 사라졌다”고 손 교장은 귀띔했다. 지난달 부산의 중학교 교실에서 학생이 다투다 목숨을 잃은 사건 같은 학교폭력도, 교과교실제를 도입해 교사들이 교실에 상주하면 막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교과교실을 교사 서너 명이 함께 쓸 경우는 교실이 잘 활용되지 않더라는 경험에서, 전면적인 교과교실제 도입 주장은 더욱 힘을 얻는다.

3년 전 개교한 수원시 권선구 칠보중의 실험은 그래서 더욱 주목된다. 교수-학습 방법을 바꿔야겠다고 확신한 박평제(59) 교장은 교과교실제 전면 시행을 추진했다. 인근 초등학교서 셋방살이를 하던 첫 해 신축 중이던 학교 건물의 내부를 조금 바꿀 수 있었다. 기자재 설치를 위해 교실 3칸을 1.5칸 크기 교실 2개로 고치고, 과학실의 수도 시설을 벽 쪽으로 옮겨 강의식 수업도 할 수 있게 설계 변경을 결정했다. 교무실은 줄이고 반 칸 교실 11곳을 교과연구실로 정했다. 올해 전 학년 33학급 모두를 45개 교과교실에서 가르친다. 교사는 교장·교감을 더해 57명인데, 일부 교과교실을 교사 둘이 쓰도록 해 교실 부족 문제를 풀었다. 음악실·미술실 등 특별교실과 일반교실을 묶어 교실 활용도를 80%선에 맞췄다. ‘정보통신기술(ICT) 활용 교육’ 분야 선도시범학교로 지정받아 연구를 주도한 김용(50) 연구부장은 “교실을 다양한 용도에 맞게 지으면 면적은 부족한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화학 교사였던 박평제 교장은 “교과교실, 교과연구실은 모든 교사들의 꿈”이라며 “실제 해 보니 예상보다 난관이 많았지만 ‘교실이 바뀌어야 교육이 바뀐다’는 명언을 따라 꾸준히 헤쳐가야 할 길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교과교실’ 아직도 먼길?

“교실 붕괴”란 말이 떠돌며 학교교육 불신이 팽배하자 2002년 3월 교육인적자원부는 매우 포괄적인 내용의 ‘공교육 내실화 대책’을 내놓으며 “7차 교육과정 운영에 적합한 교과교실, 다목적실 등을 2004년까지 3만1316실로 확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용도의 교과교실이 현재 얼마나 확보됐는지를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다시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2008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선안’에서 “현행 학급 중심의 교실체계에서 교과 중심의 교실 체계로의 전환을 위해 우선 고등학교(일반계)부터 (교과교실을) 단계적으로 확보”하겠다며 ‘교과교실 확보 5개년 계획(2006~2010년)’을 2005년 중에 수립·추진하겠다고 공표했다. 이 또한 얼마쯤 구체화하고 있는지, 두 달이 채 안 남은 올해 안에 과연 마련될지조차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지난 5월 발표된 교육부의 ‘영어교육 활성화 5개년 종합대책(2006~2010년)’에 나타난 숫자를 살펴보자. 올 3월 현재 영어학습 전용 교실을 1개 이상 확보한 학교는 1만708곳 가운데 3718곳(34.7%)로 집계됐다고 한다. 이런 수치로 교과교실 확보 수준을 미뤄 짐작해 볼 따름이다.

5개년 동안 영어학습 전용 교실 확대에 들일 예산은 해마다 699억원씩 모두 3495억원으로, 이 종합대책 총 소요예산 7647억여원의 절반을 넘는다. 갈 길이 멀어만 보인다.

교육부 학교정책실 관계자는 “교과교실 확보 계획 수립 등의 업무를 맡은 부서가 바뀌고 담당자들도 교체돼 현황 파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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