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2일 안양 호원초등학교에서 ‘다문화가정 대상 국가 교육글로벌화 지원사업’으로 초청돼 온 말레이시아 릴라
# 올해 국립대학교에 진학한 최아무개군의 어머니는 일본인이다. 최군은 “겉모습은 ‘외국인’ 티가 나지 않아 큰 차별을 받지 않았지만, 학교 다닐 때 엄마의 국적을 일부러 얘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축구 등 스포츠에서 한일전이 펼쳐지는 날이면, 수업 중 교사를 비롯해 친구들 사이에서도 ‘왜놈, 쪽발이’ 등 혐오표현이 자연스레 오갔다. 차별 발언은 마음에 큰 생채기를 냈다. 최군은 ‘다르다’는 것이 왜 욕을 먹어야 할 일인지 여전히 의문이다.
현재 한국에서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다문화 학생은 9만9186명으로 10만명에 육박한다. 특히 만 6살 이하 미취학 아동이 11만6000여명에 달하는 등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부모 국적은 한국계를 포함해 중국이 33.7%로 가장 많고, 베트남 24.2%, 일본 13.0%, 필리핀 12.6% 차례다.
2006년 정부가 ‘다문화가족 사회통합 지원대책’을 처음 수립한 이후 어느덧 11년이 지났다. 교육부는 지난달 12일 다문화교육 지원 계획을 발표하고 올해 191억원을 투입해 다문화 중점학교를 200곳으로 확대하는 등 인식 개선 및 교육 지원방안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어떤 다문화교육을 진행하고 있을까?
“이런 차별 부당해요” 알리는 ‘건의문 수업’
인천동양중학교 최윤아 교사는 5년째 다문화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담당 과목인 국어와 연계한 ‘건의문 수업’은 지난해 다문화 인식 개선을 위한 공모전에서 최우수 사례로 선정됐다. 학생들에게 지역사회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문화 구성원에 대한 차별과 편견 사례를 조사해 오는 게 수업의 골자다.
최 교사는 “아이들이 실제 버스 표지판 및 안내방송이 한국어로만 나오는 점, 교실에서 친구들끼리 무심코 내뱉는 ‘짱깨’, ‘깜둥이’ 등 인종차별 발언이 다문화 친구들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건의문 작성 뒤 학생들 스스로 동네 음식점 메뉴판을 영어 및 중국어로 번역해 비치하고 학급 내 고운 말 쓰기에 동참하는 등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했다.
특히 메뉴판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등 학생들이 다양한 나라 언어에 관심을 갖는 과정에서 다문화 학생들의 자존감이 높아지는 변화도 봤다. 최 교사는 “건의문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이 ‘중국어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다문화 학생 한 명이 ‘나 중국어 할 줄 안다’며 손을 들었죠. 또래 친구들에게 차별받을까 봐 다문화 학생이라는 사실을 숨겼던 건데 지금은 자신의 언어능력을 좋게 인식하면서 자부심을 갖고 학교생활을 합니다.”
최 교사 교실에서는 ‘다름’과 ‘존중’에 대한 토론수업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아이들 스스로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 인종차별을 받는다면?’ 등의 질문을 만들어 다문화 학생 입장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활동도 했다. 최 교사는 “피부색이나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차별하거나 비하해서는 안 된다는 걸 느낀 것”이라며 “다문화교육을 통해 ‘역지사지’가 가능해진 것이다. 다문화교육은 ‘인성교육’”이라고 했다.
다문화도서관·센터 등 학교 밖 프로그램도 있어
다문화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고, 친구와 소통하는 창구도 많아 참고할 만하다. 다문화어린이도서관 ‘모두’는 ‘다국의 날’, ‘다국 스토리텔링’, 다문화 가정을 직접 방문하는 ‘책 길잡이 활동’ 등을 진행해 다문화 학생과 지역사회가 소통할 고리를 만들어주고 있다.
서화진 사무처장은 “다문화 청소년들이 가족 아닌 어른들을 만나 관계 맺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며 “‘대학생과 1:1 언어 멘토 연결해주기’,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세계 각국 전통의상 입어보기’, ‘새해 풍습 및 다국적 음식 만들어 보기’ 등 체험 행사를 운영해 교실 밖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들이 편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나라에 대해 알지 못해서’입니다.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세계 23개국 언어로 출판된 다양한 책들을 보면서 시야를 넓히고, 자연스레 어울리며 동네 친구가 되고 있어요.”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무지개청소년센터’의 직업훈련 프로그램 ‘꿈을 잡(Job)아라’는 코오롱의 후원으로 다문화 학생이 자신만의 재능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언어·문화 차이, 체류자격 등을 이유로 직업훈련 및 취업에 제약이 있는 이주배경 청소년들의 역량 개발을 도와 안정적인 사회진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필기 3번, 실기 4번의 도전 끝에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고미르군은 “베트남에서 ㄱ, ㄴ, ㄷ만 배우고 2년 전 한국에 왔을 때 정말 막막했다”며 “낯선 환경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이제는 베트남과 한국이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고 했다. “한국어 공부를 하고 조리사 자격증 취득하면서 ‘식당 경영’을 해보겠다는 꿈이 생겼어요. 프로그램을 통해 목표가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일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다문화 학생을 위탁교육하는 초·중·고 통합 기숙형 공립 대안학교도 있다. 공립 인천한누리학교는 짧게는 6개월에서 최대 2년까지 한국어 교육은 물론 영어·수학·과학 등 수업을 진행한다. 한국어 수준별·무학년제 편성으로 우리말을 전혀 모르는 학생도 입학해 교육받을 수 있다. 박형식 교장은 “언어문제 등 차별을 겪은 뒤 어두운 표정으로 입학하는 학생들 얼굴이 6개월만 지나면 밝아진다”며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다문화교육 정책으로 학생들이 학습을 중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전했다.
낙인 벗고 사회서 제역할 하도록 교육해야
현장에서 발로 뛰는 교사 및 단체 활동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선 교육 현장에서는 ‘다문화’라는 세 글자가 낙인으로 존재한다.
서울 동대문구 소재 중학교에 다니는 이아무개양은 “종례 뒤 선생님이 ‘다문화 남아!’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며 “나도 이름이 있는데 ‘다문화’로 부르셨다. 선생님이 내가 마치 잘못을 했다는 듯 말씀하셔서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최윤아 교사는 “부모 가운데 한 명이 타국적자인 경우 아이들은 끝까지 숨기고 싶어 한다. 또래집단에서 ‘다름은 곧 싫음’이기 때문이다”라며 “사춘기 때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한다면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초교뿐 아니라 중·고교 다문화 학생이 늘어나는 만큼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19일 발표한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에 따르면 위에서 언급된 인종차별적 발언은 모두 ‘혐오표현’으로 ‘영혼의 살인’으로 불린다. 연구팀은 “어떤 개인·집단에 대해 그들이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속성이 있다는 이유로 차별·혐오하거나 적의·폭력을 선동하는 것이 바로 혐오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사회 구성원 전반의 인식 개선도 중요하다. 최 교사는 “다문화교육은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된다. 한국 사회에서 모두 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미디어 등을 통한 대대적인 캠페인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학교폭력도 예전에는 부모 및 학생들이 ‘때릴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꾸준한 홍보와 인식 개선을 통해 지금은 ‘폭력’을 바라보는 인권감수성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다문화 학생 및 소수자 전반의 ‘다름과 차이’를 존중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