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실무사가 급식을 만들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서울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하는 조리실무사 박아무개(48)씨는 13년 간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며 ‘테니스 엘보’라는 병을 얻었다. 야채를 썰고 솥을 닦는 등 팔꿈치 근육으로 반복적인 작업을 많이 하다보니 힘줄과 인대에 염증이 생긴 것이다. 정형외과를 다니며 치료를 받지만, 무거운 식재료를 나르는 작업을 할 때면 여지없이 통증을 느낀다. 방학 때 쉬면서 집중 치료해도 학기 중 일을 시작하면 또 재발한다. 1회에 2~3만원 드는 통증 치료 비용은 박씨가 부담한다. 박씨는 “급식실 매뉴얼에 중량 10kg 이상은 두 사람 이상이 들어야 한다고 돼있지만 2~3시간 안에 1인당 210명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급식실은 식재료를 함께 들자고 동료에게 요청하고 기다리는 분위기가 아니다. 오전 8시에서 낮 12시까지는 화장실도 못 가고 참으며 바쁘게 움직이니 2인 1조로 일하기엔 인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동료들이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거나 날카로운 조리 기구에 베이는 일도 빈번하다. 세척제 등 화학 물질이 얼굴이나 눈에 튀는 일도 일어나고 쌀포대 같은 무거운 짐을 나르다 보면 근골격계 질환을 달고 산다. 박씨는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언제 다쳤는지 알수 없는 피멍은 기본이고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는 일도 다반사다. 끓는 물이나 세척제 같은 화학약품에 화상도 자주 입지만 대부분 스스로 치료하고 만다”고 말했다. 초·중·고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조리사, 조리실무사들이 고온의 환경에서 화상, 근골격계 질환, 칼로 베이는 사고를 빈번히 겪지만 대체로 산업재해 처리를 하지 않고 자가치료에 그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울 서대문구 근로자복지센터는 학교급식 종사자들이 얼마나 산업 재해를 자주 겪는지 추정하기 위해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서울지부와 함께 지난 10월부터 두 달 간 ‘서대문구 학교 급식 노동자 근골격계 질환 전수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이 실태조사는 서대문구에 있는 초등학교 19곳, 중학교 14곳, 고등학교 7곳 등 40곳 학교를 모두 방문해 설문에 응한 304명의 조리사 및 조리실무사들을 면대면 조사한 것이다. 그 동안 학교급식 종사자들의 건강권 실태에 관한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서대문구라는 한 자치구를 전수조사해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조사 결과, “지난 1년 간 칼로 베임, 화상, 부딪힘 등 조리실의 작업환경으로 인해 사고(사고성 재해)를 당해 병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이는 전체 응답자의 39.5%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 1년 간 허리, 어깨, 손목, 무릎 등에 나타난 근골격계 질환으로 인해 병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이는 응답자의 64.1%였다. “1년 동안 접촉성 피부염, 무좀, 두드러기 등과 같은 피부질환으로 인해 병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0.4%로 나타났다.
하지만 “병원 치료 때 치료비 부담을 누가 했느냐”는 추가 질문에 사고성 재해 경험 응답자의 90.8%가 “자신이 부담했다”고 답했다. 사고를 당한 뒤 치료비를 학교 및 위탁업체(4.2%)에서 부담하거나 산업재해 보험 혜택(5%)을 받았다는 응답은 총 9.2%에 불과했다. 근골격계 질환을 치료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98.9%가, 피부질환 치료 경험이 있는 이들은 100%가 “치료비를 자신이 부담했다”고 답했다.
이윤금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2016년 우리나라의 공식 산업재해율이 0.5%인데 이 조사에 응한 급식 노동자들의 사고성 재해 경험률이 39.5%라면 무척 높은 수치”라며 “근골격계 질환 발병률이 높게 나타나는 자동차 조립 공정 종사자들도 최근 1년 간 병원 치료 경험을 물었을 때 응답율이 20~30%수준으로 측정된다. 급식 조리사, 조리실무사들은 64.1%로 훨씬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학교 급식은 지난 1981년 학교급식법 제정 이후 2003년 전후 초·중·고에서 전면 실시됐으나, 식재료 기준의 강화나 친환경 농산물의 사용 등 학생 건강에 대한 논의 외에 급식 생산 주체인 급식 종사자들의 건강과 안전은 다소 소홀히 다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경순 서대문구 근로자복지센터장은 “전국의 학교 급식실 종사자들이 업무 중 사고성 재해나 질병을 겪는 일이 많을 것으로 추정되나 산업재해로 처리 되지 않고 대부분 자가 치료에 그치고 있다. 급식노동자의 건강권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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