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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남들 앞에만 서면 얼음! ‘땡’ 하고 풀어줘볼까?

등록 2018-04-03 09:24수정 2020-02-28 09:01

[함께하는 교육] 스피치 교육

개정 교육과정 말하기 성취기준 추가
내 생각 조리있게 말하는 능력 중요
초·중·고뿐 아니라 대학 이후까지 영향
일상의 내 감정 단어로 표현하기부터
신문 속 어휘 찾아 발표하기까지
‘말하기 불안’ 떨치는 훈련 해봐
지난달 30일 경기 아인초등학교의 방과후학교 ‘방송스피치부’ 학생들이 스피치 수업을 받고 있다. 박소연씨 제공
지난달 30일 경기 아인초등학교의 방과후학교 ‘방송스피치부’ 학생들이 스피치 수업을 받고 있다. 박소연씨 제공

“아이들 대화 들어보면 ‘대박’, ‘레알?’을 비롯한 ‘급식체’ 참 많이 쓰더라고요. 말을 시켜 봐도 ‘몰라~’, ‘귀찮아~’ 하는 반응이 8할입니다.”

인천에 사는 학부모 이서현씨의 말이다. 초등학교 6학년 자녀를 둔 이씨는 “아이가 남들 앞에서 조리있게 말 잘하는 것은 모든 부모의 바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게임 채팅창 등 단답형 대화 방식에 익숙해서 아이들이 ‘주장 있는 말하기’를 낯설어하는 것은 아닐까 노파심도 든다”고 했다.

‘말하기 불안’을 아시나요?

2015 개정 교육과정(이하 개정 교육과정) 중학교 1~3학년 듣기·말하기 영역에 ‘말하기 불안에 관한 내용 성취기준’이 추가될 정도로 일상 대화, 목적을 가진 스피치 등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입시 측면으로만 봐도 구술면접, 디베이트 능력 등은 필수적이다.

‘스피치’는 청중과 공감대를 형성하길 바라는 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조리있게 말하는 것을 뜻한다. 부모세대에게는 보통 ‘발표’로 통한다.

한국교원대학교 국어교육과 최숙기 교수는 “일상 의사소통 기능 가운데 ‘말하기’가 약 45% 비중을 차지한다. 듣기, 읽기, 쓰기와 비교해봐도 말하기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주도적인 의사소통 기능”이라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서도 스피치는 개인 간 대화에서뿐 아니라 대중 앞에서 자신의 의견과 느낌을 공적으로 전달하는 기술이다. 최 교수는 “결국 스피치는 공동체 구성원들과 교류하는 능력이자 사회화 역량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했다.

최근 교육현장에서는 이런 스피치 능력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경기 아인초등학교 김덕희 부장교사는 “교실에서도 교사 1인이 일방적으로 수업하는 방식을 지양하는 편이다. 교과 수업, 체험활동 시간 등에 토론을 통한 협업과 ‘자기 의견 정확히 전달하기’ 등은 초·중등 시절 유의미하게 다루는 성취기준”이라고 강조했다. 짜장면 주문마저 말 한마디 없이 스마트폰 앱에서 터치 한번으로 가능해진 시대지만, 역설적으로 ‘논리적 말하기’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는 셈이다.

학교에서 반장, 회장 등 임원을 하고 싶은 학생들에게만 스피치 능력이 중요할까? 스피치는 단순 말하기 능력에 더해 발음과 발성, 억양, 어휘 선택 같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과정이다.

개정 교육과정의 중학교 1~3학년 듣기?말하기 영역 성취기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할 때 부딪히는 어려움에 효과적으로 대처한다’ 등이 적혀 있다. 공교육 현장에서 ‘말하기 불안 완화하기’ 등을 주요 내용으로 삼는 것이다.

신문 속 단어 오려 ‘한 문장’ 만들고 발표

서울 강서구청 소속 ‘강서구영상미디어센터’(이하 센터)에서는 ‘찾아가는 스피치 교실’을 비롯해 ‘내가 하고 싶은 말’, ‘나를 찾아 떠나는 스피치’ 등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초등 저학년 시절, 발표에 흥미가 없었다는 서울 등원중학교 2학년 김려원양. 김양은 초등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센터 스피치 강의를 들었다. 김양은 “수업시간에 손 들고 발표하거나 모둠활동이 있을 때 앞에 서는 걸 꺼렸다. 아빠가 이 수업을 권유해 듣게 됐다”며 “생각을 글로 먼저 표현해보고, 글을 토대로 앞에 나가서 스피치 연습을 해보니 지금은 말하기 자체에 자신감이 붙었다”고 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고 있거든요. 그래서 글만 잘 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스피치를 배워보니 ‘말’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경청하는 것의 중요성도 알게 됐어요. 제 생각도 확장되는 느낌이 들었고요.”

‘찾아가는 스피치 교실’ 등을 이끌어온 센터 소속 아나운서 김민주씨는 8주 과정을 통해 1분 말하기, 즉석 스피치 훈련, 시사 들여다보기, 사자성어 등 스피치에 활용 가능한 우리말 수업을 진행한다. 특히 신문을 많이 활용하는 편이다. 아이들에게 무작정 ‘말해봐라’ 하면 거부감을 갖거나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김씨는 “관내 신문 등을 한 부씩 가져오게 한 뒤 지면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단어’, ‘지금 내 기분을 나타내는 단어’, ‘내가 이루고 싶은 꿈’ 등에 해당하는 단어를 5~7개 정도 오리라고 한다. 수첩에 붙인 뒤 그 단어를 활용해 한두 문장을 써보게 한다”고 설명했다. “스피치의 뼈대가 되는 것도 결국 글이거든요. 마음과 기분 등을 짧은 문장으로 쓰게 한 뒤 앞에 나와 발표해보는 겁니다. 쭈뼛거리던 아이들도, 또래 친구들이 한마디씩 하는 것을 보면서 ‘내 감정, 내 생활’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하고 싶어 해요.”

지난달 30일 경기 아인초등학교의 방과후학교 ‘방송스피치부’ 학생들이 스피치 수업을 받고 있다. 박소연씨 제공
지난달 30일 경기 아인초등학교의 방과후학교 ‘방송스피치부’ 학생들이 스피치 수업을 받고 있다. 박소연씨 제공

개미?염소 목소리 등으로 비유되는 우물쭈물 힘없는 소리의 원인은 입모양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 가지 입모양으로 ‘아, 야, 어, 여, 오, 요’ 등의 발음을 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한 문장을 읽더라도 자음과 모음 등 각각의 입모양을 달리해 확실히 발음할 수 있어야 한다. 김려원양은 “영어·중국어 등 외국어를 배울 때는 발음, 발성 하나하나에 신경 쓰면서 의미를 전달하려고 노력하는데, 막상 한글 발음은 그렇게 해본 경험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며 “발음 연습을 통해 전달력을 키우니, 다른 친구들 앞에서 말하는 경우가 생겨도 자신감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스피치 교육에 있어 ‘부모 역할’이 중요하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아이들이 아무리 학교와 센터 등에서 스피치를 배워도, 가정에서 부모가 경청해주지 않고 말을 자르거나 귀찮아하면 ‘도로아미타불’이라는 말이다. 아이가 말하면 잘 들어주고, 부모 역시 차근차근 말을 건네는 것이야말로 스피치 교육의 ‘알맹이’라고 할 수 있다.

발성·더빙 등으로 ‘말하기 효능감’ 쑥쑥

스피치 교육을 잘하면 ‘말하기 효능감’도 높일 수 있다. 말하기 효능감이란 아이 스스로 ‘말하기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믿는, 즉 말하기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효능감이 낮은 경우에는 말하기 불안이 나타날 수 있다. 최숙기 교수는 “말하기 불안 관련한 연구를 진행해보면 ‘나는 말을 잘할 수 있다’와 같은 문항에 체크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며 “공교육 과정에서 스피치 등 대중 의사소통 역량을 키워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피치는 초?중등 시절뿐 아니라 고교, 대학, 사회생활까지 이어지는 ‘핵심역량’입니다. 하지만 아이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 주입·강제식으로 진행하면 역효과만 나겠죠. 학부모와 지도교사 모두 ‘하우투’(HOW TO)를 잘 찾아야 해요. 말하기 못지않게 중요한 건 경청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경기 아인초등학교는 지난해부터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스피치부’(이하 스피치부)를 운영하고 있다. 김덕희 부장교사는 “아이들 흥미?적성을 살려주면서 직업 체험도 해볼 수 있는 활동을 고려했다. 학생 자신이 아나운서, 기자, 쇼핑호스트 등이 되어 그 직업군에 해당하는 말하기 훈련을 진행해보니 반응이 좋다”고 했다.

지난해 8월4일 서울 강서구영상미디어센터에서 스피치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김민주씨 제공
지난해 8월4일 서울 강서구영상미디어센터에서 스피치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김민주씨 제공

이 학교 스피치부에서 강의하는 박소연씨는 70분의 수업 시간 가운데 30분을 복식호흡과 발성연습에 사용한다. 스피치라고 해서 ‘크게 말해봐라’ 식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다. 먼저 볼과 광대 등 얼굴 근육을 풀어주고, 배로 호흡하는 법을 공들여 설명한다. 말하기도 ‘신체훈련’의 하나라는 점을 알려주는 것이다. 조음기관 운동을 통해 아이들에게 목소리가 어떻게 나오는지, 전달력을 높이는 말하기란 어떤 것인지 등을 설명해주면 수업 집중도도 꽤 높다.

경기 광명학습지원센터(이하 센터)에서도 ‘더빙으로 배우는 스피치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친숙한 애니메이션을 수업 자료로 사용하며 ‘더빙하기’를 통해 말하기에 자신감을 붙여주는 것이다. 센터 노진남 팀장은 “아이들이 날씨나 숙제 이야기, 오늘 본 만화 이야기 등 다양한 일상 대화를 하며 살아간다. 여기에 더해 ‘말하기’ 자체가 자신의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주면 대인관계 능력도 좋아지고, 자신감 있는 생활을 하게 된다”고 했다. “시사 뉴스 등을 활용해도 좋지만,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은 애니메이션 대사를 활용하면 아이들도 ‘말하기’를 어색해하지 않더군요. 작품 속 대사를 통해 희로애락까지 표현해볼 수 있어 정서적으로도 교육 효과가 높습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뉴스 보며 ‘스피치 롤모델’ 함께 찾아봐요

‘논리적 말하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교육에서도 ‘어린이 아나운서 교실’, ‘키즈 스피치’ 등 고가의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한다. 하지만 공교육 현장에서 스피치 교육을 담당하는 강사들은 ‘집에서도 해볼 만하다’고 말한다. 아이가 가족 구성원과 대화를 나누는 자체가 스피치 연습이라는 것이다.

티브이(TV)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도 직업별 화법(아나운서, 기자, 예능인, 정치인 등)과 태도 등을 분석해보면 우리 일상 속 말하기 방법이 얼마나 다양한지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아이가 읽고 싶은 책을 고르게 한다. 매일 책을 한 쪽씩 읽게 하는데, 이때 중요한 건 자세다.

거실 바닥에 책을 펼쳐놓고 인사하듯 90도로 허리를 빳빳하게 굽힌 상태에서 글자를 또박또박 읽어본다. 스피치의 기본은 복식호흡과 발성인데, 이 자세가 배에 힘을 길러준다. 배에 힘이 들어간 상태에서 한 쪽 분량의 글을 3~4개월만 읽어봐도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부모와 아이가 각자 ‘스피치 롤모델’을 정해보는 것도 좋다. 뉴스 또는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나 주변인 가운데 전달력과 표현력 좋은 사람을 선정해 따라 해보는 것이다. 왜 그 사람을 롤모델로 삼고 싶은지 가족끼리 둘러앉아 이야기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또렷한 발음, 풍부한 제스처, 공감하는 표정, 설득력 있는 말하기 등을 꼽아보면서 가족 구성원 각자가 타인의 언어생활 가운데 어떤 부분을 장점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신문 칼럼이나 사설 등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논리적이면서 주장이 있는 글을 속으로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입으로 직접 발음해보는 경험도 중요하다. 이때 녹음 앱 등을 활용하면 좋다. 자신의 목소리를 반복해 들어보면서 말의 억양과 속도, 흐릿한 발음 등은 무엇인지 체크해보는 것이다. 아이의 경우 교과서나 자습서 등을 활용하는 것도 추천한다. <도움말: 강서구영상미디어센터 방송스피치 강사 김민주씨>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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