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하는 시민’ 등에 대해 활발히 토론했다. 김지윤 기자
“지난달 20일 발표된 제10차 헌법 개정안에는 ‘생명권과 안전권’이 새로 생겼습니다. 민주사회의 모든 국민이 안전하게 살 권리를 헌법 조문에 뚜렷하게 명시한 것이지요. 오는 16일은 세월호 참사 4주기입니다. 재난 발생 시 국가의 역할과 주권자의 권리에 대해 알아볼까요?”
지난 2일 안산 시곡중학교 3학년 1반 4교시 수업 시간. 이 학교 염경미 인문사회부장 교사는 ‘4·16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를 주제로 교과융합 수업을 진행했다. 염 교사의 뒤편으로는 학생들의 세월호 추모 작품이 붙어 있었다. 앞서 3교시 조주영 교사의 ‘공공미술, 집단적 애도의 여러 가지 표현’ 미술 시간의 결과물이었다. 시곡중은 4월 한 달 동안 사회-미술 교과융합수업 등을 통해 나온 추모 작품을 ‘기억의 벽’이라는 이름으로 중앙현관에 전시할 예정이다.
우리 사회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
기획·토론·발표해보는 민주시민교육
시곡중 교과융합·시민단체 연계수업
국가 역할, 주권자 권리 생각해봐
삼일상고 ‘근로계약서’ 써보며
사회 나갔을 때 필요한 내용도 살펴
지난 2일 안산 시곡중학교 3학년 1반 교실에서 염경미 인문사회부장 교사가 ‘4·16 세월호 참사와 국민 안전권’ 계기교육을 하고 있다. 이날 2교시에 걸쳐 진행한 사회-미술 교과융합 수업에서 학생들은 추모 작품(공공미술)을 만든 뒤 ‘주권자
“갈등·토론·합의 배우는 과정입니다”
최근 <선생님, 민주시민교육이 뭐예요?>를 펴낸 염 교사는 교과융합 수업 외에도 자율동아리 및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통해 다양한 프로젝트성 민주시민교육을 이어간다. 특히 4월은 제주4·3 희생자 추념일, 4·13 임시정부 수립일, 4·16 세월호 참사, 4·19 혁명, 4·25 법의 날 등이 있는 달이라 ‘민주시민’에 방점을 찍고 계기수업을 하기 좋다.
이날 수업은 크게 ‘도입-전개1-전개2-안내-차시 예고’ 등 5단계로 진행했다. 도입부에서는 세월호 관련 뉴스와 사진 자료 등이 학생들을 더욱 집중하게 했다. 촛불집회와 시민 주권, ‘연대하는 도시―광주와 안산’, 생명과 안전권, 정부 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감시 등 밀도 있는 설명이 오갔다. “시민이라면 국가권력을 감시하며 좋은 정책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참사 발생 시 ‘윗분들’에게 보고하는 것보다 구조 인력이 먼저 달려가도 괜찮다는 법을 만들자”…. 3학년 김영채양과 최진언군, 박유진군 등을 비롯해 8개의 모둠으로 나눠 앉은 학생들은 재난 발생 시 정부의 역할 등을 주제로 다양한 의견을 냈다.
민주주의, 민주시민…. 누가 들어도 ‘좋은 말’이지만 막상 그 뜻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손병노 한국교원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는 “훗날 아이들이 만들어가야 할 사회의 모습을, 교실 안에서부터 지속적으로 기획·토론해보는 것이 민주시민교육이다”라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학교에서 문제 발생, 갈등, 토론,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교육받고 공동체성을 고민해보는 수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개인 간 고민거리뿐 아니라 사회적 쟁점들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의무교육 과정에서 ‘다름’을 수용하는 법, 갈등 없이는 합의에 쉽게 이를 수 없다는 것 등을 가르치는 게 바로 민주시민교육입니다.”
시민단체 연계한 ‘살아있는 수업’도
민주시민교육에는 선거, 평등, 연대, 노동, 시민경제, 다문화, 통일 등 다양한 카테고리가 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과 접점이 없을 수가 없다. 염 교사는 2016년 ‘학교 민주주의 지수’ 결과 내용 가운데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학교를 만들자’는 학부모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했다. 교육과정을 마련해 안산 지역 시민단체와 손잡고 통일교육(안산통일포럼), 소비자교육(안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인권교육(안산 탁틴내일) 등을 함께 진행했다.
한 해 동안 총 7개 시민단체를 섭외해 20차시에 걸쳐 수업을 꾸렸다.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가 직접 학교를 방문해 교사와 팀티칭으로 3시간 연속 수업을 하자 학생들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염 교사는 “민주시민교육이 다른 게 아니다. 사회적으로 논쟁이 되는 것을 교실에서도 논쟁하게 하는 것”이라며 “교과서에 밑줄 몇 번 치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학생들이 중등 시절에 ‘참여’의 의미를 아는 것만으로도 교육 효과가 충분하다”고 했다.
염 교사는 2013년 경기도교육청에서 발행한 중학교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집필팀장을 맡으며 ‘민주시민교육 실천교사’라는 정체성도 확고히 하게 됐다. 지난해에는 시곡중 사회참여 동아리 ‘좌충우돌’을 이끌고 1년에 걸쳐 ‘민주주의 현장답사’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민주시민교육에서 청소년의 사회참여활동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국립4·19민주묘지,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6월항쟁 30주년 기념식, 청계천 전태일 다리, 수요시위, 박종철기념관, 임진강과 민통선 등을 3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찾았다.
사회참여 동아리 등을 통해 ‘주제가 있는 토론 교실’을 운영해보면 민주시민교육을 더 쉽게 접할 수도 있다. 국민주권과 대통령, 청소년과 선거권, 탈핵과 국민안전, 다문화 사회와 민주주의, 학생인권과 학교 민주주의 등 월별로 다양한 이슈를 제시하면 교실은 ‘살아있는 토론의 장’이 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교과지식을 재구성하고 토론을 통해 공감능력을 키워보는 등 책임있는 자세를 배울 수 있다. 염 교사는 “민주시민교육은 토론과 합의 과정을 익히는 교육”이라며 “교실 안 지식과 교실 밖 경험을 합리적 관점으로 통합·표현해내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최저임금·수당 등 권리 아는 것도 중요해
수원 삼일상업고등학교 허진만 교사는 민주시민교육의 첫 발걸음을 ‘노동’과 ‘경제생활’이라고 본다. 상업고등학교 특성상 졸업 뒤 바로 취직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를 고려해 근로계약서의 의미와 중요성을 민주시민과 인권으로 엮어 설명한다. 국어, 영어, 수학 등 교과지식 못지않게 알아둬야 하는 것이 바로 ‘계약서 쓰는 법’이라는 것이다.
허 교사는 “스스로 주체가 되는 법을 알려주는 게 민주시민교육이다. 당장 졸업 뒤 자취방 구하기, 아르바이트 및 직장 구하기 등에서 계약서 쓰는 법을 모르면 아이들이 무척 당황한다. 20대 초반, 학교와 사회라는 약한 연결고리에 놓일 경우 아이들은 자신의 권리를 쉽게 포기하게 된다”고 했다. 12년간의 공교육 과정을 마치기 전에 근로계약서 쓰는 법 등 ‘생활밀착형’ 교육이 더욱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허 교사는 계약서 내용의 불합리함을 인지한 뒤 협상을 시도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려준다. “실제 아이들이 일하며 최저임금은 물론 휴일·야근수당 못 받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노동자와 사용자, 갑과 을, 집주인과 세입자, 우리가 내는 세금의 종류와 쓰임새 등 사회 속 복잡한 관계와 관련 법 등을 학생들도 알아야 해요. 권리를 찾고 의무를 다하는 것이 ‘민주시민’이죠. 계약서 보는 법, 쓰는 법 등이 민주시민교육인 이유입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