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한국우진학교에서 학생과 활동보조인이 휠체어가 빼곡한 복도를 오가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수업이 시작되고 교실 옆에 휠체어들이 나란히 줄지어 섰다. 넓어보였던 복도가 휠체어 2대도 오가기 힘든 공간으로 바뀌었다. 경사로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함께 경사로를 이동할 수 없다.
“경사로 끝에서 기다렸다가 상대방이 내려오면 올라가야 해요. 사실 이 경사로도 기울기가 너무 급해요. 전동 휠체어가 아닌 이상, 중증 지체장애학생들은 스스로 경사로를 이용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게 맞죠.” 한층에 놓인 엘리베이터는 단 3대. 서울 마포에 있는 한국우진학교 관계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특수학교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최근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다녀간 뒤에 엘리베이터를 추가로 설치해주기로 했어요” 우진학교의 숙원사업 중 하나가 어렵게 해결됐다.
우진학교 교실에는 침대 1~2개가 놓여 있다. 뇌병변 등 중증지체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우진학교에는 모든 교실마다 침대가 놓여있다. 이곳에서 누워서 수업을 듣기도 하고 가림막을 치고 기저귀를 갈기도 한다. 학생들 상황에 따라 일부 교실에는 화장실이 있면 좋겠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1층 화장실에 ‘접이식 기저귀교환대’는 선생님들의 자랑이다. “시중 판매제품은 600만~700만원인데다, 변기랑 손잡이가 설치된 비좁은 공간에 기저귀갈이대를 설치하려니 쉽지 않더라고요. 기성제품을 우리 조건에 맞추면 비용이 많이 올라가고요. 결국 선생님들 아이디어를 모아 학교에서 자체 제작한 겁니다” 우진학교 선생님들은 모두 ‘발명가’다. 화장실 공간이 좁으니 기저귀교환대를 변기 위에 반접이식으로 설치했다. 교실과 복도만 있는 학교를 장애학생들을 위한 학교로 탈바꿈시킨 건 선생님들이다. “중간중간 필요한 시설을 추가하고 건물을 증축하다보니 일부 시설은 학생들이 사용하기 불편한게 사실이에요. 새로 짓는 특수학교는 현장의 목소리를 잘 반영해 지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우진학교 선생님은 모두 ‘발명가’다. 학교 선생님이 아이디어를 내 직접 제작한 ‘접이식 기저귀교환대’.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서울에 새로운 특수학교가 들어선다. 17년만이다. 서울 서초구 옛 언남초등학교와 강서구 옛 공진초등학교 자리에 각각 세워지는 나래학교(가칭)와 서진학교(가칭)가 그 주인공이다. 서진학교는 지난해 9월 주민 토론회에서 장애학생 학부모들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향해 찬성해달라며 무릎을 꿇고 호소했던 학교다. 나래학교 역시 주민들의 강한 반발에 어려움을 겪다 최근 설계를 마쳤다. 개교 시점은 내년 9월이다.
힘들게 첫 삽을 뜬 두 학교가 최근 공사비로 또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3월 서진·나래학교 설계를 확정했다. 학교를 짓는데 서진학교는 220억원, 나래학교는 240억원 가량 들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학교설립을 위해 올해 교육부가 지원 결정한 특별교부금은 161억원과 171억원이다. 교육청은 학교를 설립할 때 교육부로부터 특별교부금을 지원받고, 부족 부분을 자체 예산으로 충당해왔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진·나래학교 설립에만 130억원의 예산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교육부는 초·중·고교 학급수에 따라 교부금을 차등 책정한다. 특수학교는 별도의 기준없이 고등학교와 동일하게 교부금을 지원한다. 그 결과 장애학생의 특성은 반영되지 않은 채 ‘복도에 교실밖에 없는’ 학교가 들어서곤 했다. 실제 2017년 조달청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특수학교와 성격이 비슷한 복지시설은 공사비가 ㎡당 평균 224만원이지만, 나래학교 교부금은 ㎡당 172만원에 그친다. 고등학교 평균 공사비인 ㎡당 187만원에도 못 미친다. 교육부 역시 이런 비판을 일부 수용해 “올해부터 특수학교에 20억원 가량 추가로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를 반영하더라도 나래학교 교부금은 ㎡당 192만원에 불과하다.
교육부는 ‘지금까지 학교를 짓는데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특수학교의 교부금 지원 기준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18년간 국내외 특수학교를 설계해 온 파크이즈건축사무소 박인수 대표는 “장애학교는 교육이라기보다 보육의 개념에 가깝고 그에 맞는 설계·건축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나래·서진학교의 설계안에는 ‘병원용 엘리베이터 4개’, ‘1교실 1화장실’, ‘교실 바닥난방’, ‘재활치료실 및 직업교육실’ 등이 포함돼 있다. 나래학교의 경우 주민 반발을 줄이기 위해 5억5000만원의 예산을 배정해 주민 휴게공간과 야외체육시설도 지을 예정이다.
전영훈 중앙대 교수(건축과)는 “우리나라는 특수학교에 대한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없다보니 특수학교에 얼마의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지 기준이 없다”며 “20억원 더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것보다 통계를 바탕으로 특수학교에 적용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