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4호선 고교생들이 직접 여는 ‘특별한 배구 리그’

등록 2018-06-04 20:24수정 2020-02-27 15:49

[함께하는 교육] 생활체육 활성화 현장을 가다
지난 1일 경기도 안산 ‘상고초려’ 배구팀과 범계중학교 학생들이 친선경기를 치른 뒤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1일 경기도 안산 ‘상고초려’ 배구팀과 범계중학교 학생들이 친선경기를 치른 뒤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공을 끝까지 봐야지! 하나, 둘, 백핸드 스트로크!”

지난달 28일 오후 5시 경기도 오산시 죽미체육공원 테니스장. 초등·중학생 10여명이 코트에 흩어져 연습 게임을 한창 벌이고 있었다. 노란 공을 하나둘 주고받으며 합을 맞추던 아이들은, 테니스 전 국가대표 이진아 코치의 힘찬 호루라기 소리에 코트 한가운데로 모여들었다.

“유나는 끝까지 집중하며 공을 보니까 훨씬 잘 치더라. 하은이, 승민이도 라켓과 코트를 수평에 맞춘다 생각하고 다시 한번 해보자!”

지자체·체육회 도움으로 볼링, 하키, 조정 배워

테니스장에 모인 아이들은 인근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이다. 매주 2~3회 학교 수업을 마친 뒤 이곳에 와 강습을 받는다. 코트에서 땀 흘리며 공을 치는 그 느낌이 좋아 ‘취미 테니스’를 이어가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고, 이 종목의 매력에 빠져 선수의 길을 걷게 된 학생들도 있다.

확실한 건 경기에서 1위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노동’에 가까운 고된 훈련도 없다는 것이다. 이진아 코치는 “최근 학부모와 학생들이 ‘나만의 평생 운동’을 찾는 추세다. 오산시체육회와 함께 무료 테니스 레슨 등을 진행하면 대기자가 생길 정도로 신청 문의가 많다. 운동을 통해 신체발달은 물론 집중력과 자신감, 리더십을 키울 수 있어 꾸준히 수강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오산 문시초등학교 4학년 강재나양은 학원 수업을 마친 뒤 라켓부터 열심히 챙긴다고 한다. 강양은 “학교·학원 수업이 끝나면 조금 힘들 때도 있지만, 테니스장을 밟으면 일단 즐겁다”며 “‘새싹부’에서 기본자세와 용어를 익힌 뒤 처음 공을 쳐봤을 때의 느낌이 여전히 생생하다”고 했다.

‘체육’이라 하면 보통 학생들은 ‘시험기간이 아닐 때 잠깐 피구나 축구를 하는 과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 프랑스 등 교육 선진국에서는 공교육 시절 ‘생활체육’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한다. 생활체육은 ‘개인 또는 단체가 일상생활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참여하는 자발적인 신체활동’을 말한다. 체육교사를 비롯해 국가대표 선수 출신 등 전문가들은 엘리트 체육이 아닌 평생 교육 관점에서 보는 생활체육, 스포츠클럽 활동 등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한데 공교육 현장에서도 ‘체육의 일상화’ 등을 시도해보기가 쉽지 않다. 당장 아이들이 뛰고 연습할 수 있는 공간 확보부터 문제다. 조종현 범계중학교 체육교사는 “간혹 농구, 배구, 배드민턴 등에 관심을 갖고 학교 운동장을 활용해보고 싶다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데 지역 주민들의 조기 축구회나 운동 모임 등 대관이 잡혀 있거나 강당 관리·감독 문제로, 정작 아이들이 학교 체육관을 쓰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도 종종 생긴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도교육청은 올해 관내 10개 지자체와 손잡고 ‘지(G)-스포츠클럽’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고양(볼링), 평택(하키), 용인(조정), 오산(테니스, 수영, 축구, 배드민턴) 등 지역체육회가 주관한다. 선수 지망생은 물론 모든 학생이 참여하는 스포츠클럽을 활성화하자는 취지다. 맹성호 경기도교육청 체육건강교육과장은 “각 지자체가 2~4종목을 집중 지원하며 생활체육 저변 확대를 목표로 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매주 2~3회 교육청·지역체육회 등이 지정한 연습장을 찾아 테니스, 배드민턴 등 다양한 종목을 경험해보는 것입니다.”

지난달 28일 경기도 오산시 죽미체육공원 테니스장에서 학생들이 이진아 코치의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달 28일 경기도 오산시 죽미체육공원 테니스장에서 학생들이 이진아 코치의 설명을 듣고 있다.

공교육에서 체육은 ‘덜 중요한 과목' 아니라

일상생활 스며야 하는 필수 신체활동

테니스·수영 등 생활체육 저변 확대 목표

경기교육청, 지자체와 ‘G-스포츠클럽' 운영

‘주말에 배구하고 싶다'며 리그 만든 학생들

엘리트 선수 목표 아닌 ‘좋아서 하는 운동'

스스로 훈련, 심판·경기운영까지 직접 해봐

안산 세 학교 손잡고 만든 배구부 ‘상고초려’

학생들이 경기 운영부터 심판, 리그 개최까지 도맡으며 주말을 ‘운동으로 불태우는’ 곳도 있다. 이름도 독특하다. 경기 안산의 ‘상고초려 배우구 리그’. 안산 지역 지하철 4호선을 따라 상록고등학교, 고잔고등학교, 초지고등학교 등의 앞글자를 딴 뒤 배구를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모여 즐기자는 의미에서 ‘려’(侶) 자를 붙였다. 배구리그지만, 학생답게 ‘배우며’ 즐겨보자는 의미에서 리그 이름도 ‘배우구’ 리그다. 각 학교 재학생 남녀 3팀과 졸업생 2팀까지 총 8개 팀이 생활체육으로 배구를 접하고 있다.

고잔고 10여명이 의기투합해 배구 연습을 취미로 해본 게 시작이었다. ‘주말에 배구 경기를 하는 애들이 있다’는 입소문이 주변 학교에 돌면서 ‘우리도 함께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세 학교 학생 90여명이 배구라는 교집합으로 매주 모이다 보니, ‘편 가르기’보다는 ‘페어플레이’가 우선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같은 학교, 같은 팀이라는 정체성보다 ‘배구의 규칙’이라는 큰 틀을 중시하며 경기를 하기 때문이다.

‘상고초려’를 이끄는 학생들은 스스로 훈련하고 경기운영까지 해낸다. 학생들은 시합에서 승패도 중요하겠지만, 자발적으로 훈련하고 운영·총괄을 해보면서 스태프와 코치, 감독 등 다양한 팀 구성원의 입장을 이해하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상록고 2학년 김현수양은 “우리 리그에서 뛰는 학생들은 선수가 아니다. 생활체육 활동을 통해 말 그대로 ‘진짜 운동하는 재미’를 몸으로 느낀 친구들로 이뤄져 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배구 경기를 티브이 방송으로도 안 봤거든요. 근데 직접 다 같이 모여 해보니까 이만한 취미가 없더라고요. 초등학교 체육 시간에 ‘여자는 응원, 남자는 축구’였는데 하얀 공을 때리면서 ‘스파이크’하는 재미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어요. ‘이런 기회가 더 일찍 주어졌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지난 1일 경기도 안산 ‘상고초려’ 배구팀과 범계중학교 학생들이 친선경기를 치른 뒤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1일 경기도 안산 ‘상고초려’ 배구팀과 범계중학교 학생들이 친선경기를 치른 뒤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배우구 리그’는 9명이 한 팀을 이뤄 2주 동안 체육관에서 연습하고, 시험기간을 제외한 3주째 토요일에 리그전을 치르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조종현 교사는 고잔고 재직 시절부터 학교를 옮긴 지금까지 ‘상고초려’ 등을 통해 아이들과 꾸준히 배구를 즐기고 있다. 그는 학교 현장에서 가르치는 체육 교과 못지않게 ‘자발적 리그’가 선사하는 기쁨이 크다고 했다. 올해 범계중학교 부임 뒤에는 곧바로 배구부를 만들어 점심 시간 및 토요일 오전 등을 활용해 아이들과 ‘생활배구’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안산 ‘상고초려’ 배구팀과 범계중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친선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조 교사는 “시간이 지나 교사 개인이 학교를 옮기게 돼도, 이 리그가 안산 4호선의 생활체육 전통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심판 보는 법 등을 알려주면서 아이들 스스로 리그 운영을 할 수 있게끔 자생력을 키워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십대 시절 시작한 생활체육이 ‘평생체육’으로 이어지려면, ‘매너 있게 경기하는 법’을 경험해보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이긴 팀에 박수 쳐주고 진 팀에는 악수를 건네며, ‘최선을 다했어도 질 수 있구나’라는 걸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것까지가 체육이라는 이야기다.

조 교사는 “생활체육인으로서 한 종목에 정성을 들여 오래 경기할 수 있으려면 팀 구성원 모두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네트를 치는 일, 경기 뒤 빈 음료수 병을 치우고 정리하는 일, 승부를 떠나 함께 땀 흘린 친구에게 격려를 보내는 과정 전부가 체육·협동 교육입니다. 이 모든 것을 자연스레 체득하고 실천해야 ‘생활체육인’이 되는 것이지요.”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윤석열 “계엄이 왜 내란이냐” 1.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윤석열 “계엄이 왜 내란이냐”

김해공항서 에어부산 항공기에 불…176명 모두 비상탈출 2.

김해공항서 에어부산 항공기에 불…176명 모두 비상탈출

‘내란의 밤’ 빗발친 전화 속 질문…시민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3.

‘내란의 밤’ 빗발친 전화 속 질문…시민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단독] 명태균 “윤상현에 말해달라”…공천 2주 전 김건희 재촉 정황 4.

[단독] 명태균 “윤상현에 말해달라”…공천 2주 전 김건희 재촉 정황

‘강제동원’ 이춘식옹 별세…문재인 “부끄럽지 않은 나라 만들 것” 5.

‘강제동원’ 이춘식옹 별세…문재인 “부끄럽지 않은 나라 만들 것”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