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하 철도노조 케이티엑스 지부장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한겨레 사설] 김 대법원장, ‘사법농단’ 진실 규명에 자리 걸어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 보고서의 파장이 만만찮다.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들이 회의를 소집하고 케이티엑스(KTX) 해고승무원들이 대법정에 들어가 항의하는가 하면 전교조는 회견을 열어 ‘판결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특조단이 공개한 극히 일부 문건만 봐도 사건 당사자들이 분노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그럼에도 법원행정처는 ‘치유와 통합’을 내세워 문건을 대부분 비공개했고 김명수 대법원장은 고발 여부를 놓고 장고 중이다. 재판권 독립을 침해받은 판사들뿐 아니라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를 유린당한 당사자들을 외면하는 처사다.
특조단은 확보한 410개 문건 중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집행정지 관련 검토’ 등 3건만 내용을 공개했다. 그런데 3건은 물론 나머지 407건 중에도 제목만 보더라도 ‘사법농단’의 의혹이 짙은 문건들이 적잖다. 2015년 8월6일 박근혜 대통령과 양승태 대법원장 면담을 전후해 작성된 ‘VIP(대통령)보고서’(2015년 8월3일)에는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법원’ ‘노동문제 해결 프로세스 혁신’ 등의 목차가 들어 있다고 한다. ‘BH 민주적 정당성 부여 방안’(9월5일)이나 ‘한명숙 판결 이후 정국전망 및 대응전략’(8월23일)이란 문건도 있다. 제목만 봐도 대법원이 아니라 정부·여당에서 만들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조선일보>가 여러 문건에 등장하는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조선일보 홍보전략’ ‘조선일보 보도 요청사항’ ‘조선일보 방문 설명자료’ 등 10건에서 실명으로 등장한다. 조선일보는 이 사건 초기부터 ‘블랙리스트는 없다’며 판사들이 없는 ‘괴담’을 만들어냈다는 식으로 과도하게 ‘양승태 대법원’을 옹호하는 보도를 해왔다.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판사들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보수 언론을 통해 대응 논리를 유포하고 반대 입장을 폄하·고립화하며 진보 성향 판사들의 돌출성 언행 전력을 부각시킨다’는 전략(‘상고법원에 대한 법원 내부 이해도 심층화 방안’, 2015년 7월6일 작성)을 짠 행정처의 ‘홍보’와 ‘설명’이 효과를 본 것인가.
문건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면 의혹만 키울 뿐이다. 판결을 놓고 정권과 뒷거래했다는 의혹투성이 문건들이 쏟아져 나온 사법사상 초유의 사건 앞에서 김 대법원장은 진상 규명에 직을 걸어야 한다. 그러려면 문건을 공개하고 관련자들을 모두 고발해야 마땅하다.
[중앙일보 사설] 사법 불신만 키운 14개월의 ‘판사 블랙리스트’ 소동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사법부 내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25일 발표된 조사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일부 판사의 성향을 평가한 문서는 있지만, 그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이 부여됐음을 인정할 만한 자료는 발견할 수 없다’이다. 둘째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관심 사안과 관련된 재판에 법원행정처가 ‘협조’ 의사를 밝히며 상고법원 설치에 도움을 받으려 했다는 것이다. 셋째는 법원행정처가 특정 판결 내용 때문에 법관 징계를 검토했다는 내용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의 필요조건으로 명단에 오른 판사에 대한 인사적 불이익을 거론했다. 그 기준에 따르면 블랙리스트라고 불릴 만한 것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 이것이 1년2개월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진행한 조사(진상조사, 재조사, 추가조사)의 결말이다. 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 통상임금 분쟁 등의 재판과 관련해 청와대에 ‘협조 노력 또는 공감 의사 표시’를 한 것으로 기록된 문서가 나오기는 했지만 실제로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물증은 찾지 못했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유화적 제스처를 보인 것뿐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셋째 사안은 박정희 정권 시절의 긴급조치에 의한 피해 배상을 인정하는 판결을 한 판사에 대한 것인데, 대법원 판례를 따르지 않는 하급심 문제는 대법원이 안고 있는 오래된 고민거리다.
지난해 3월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진 뒤 일부 판사들은 법원 내부에 엄청난 ‘적폐 세력’이 있는 것처럼 말해 왔다. 그런데 조사 결과는 이처럼 허무하기 짝이 없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다소 무리한 일들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재판 농단’과 같은 음모론을 확산시키는 일은 이제 멈춰야 한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재판 불복으로 이어진다.
[추천 도서]
[키워드로 보는 사설] 사법권의 독립과 책임 우리 헌법에는 국민의 기본권 중 재판청구권 규정에서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헌법 27조 1항)고 규정하고 있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로 인해 사법부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103조)고 규정하고 있다.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는 까닭은 법관이나 법원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다. 판사는 오직 법과 양심에만 구속되어 자율적으로 판단해야 편파성을 피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법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국민 여론이 64%에 이른다고 한다. 사법권의 독립은 정치·경제 권력에 대한 기관의 독립도 중요하고, 내부의 간섭에 대한 법관의 독립도 중요하다. 양승태 사법농단 의혹은 이 두 가지가 중첩되어 있다. 대법원이 자발적으로 삼권분립을 무너뜨리고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은 전자에 해당한다. 사법행정권이 관료화되어 개별 판사들을 사찰하고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의혹은 후자에 해당한다. 그 결과 사법 피해를 본 국민들은 목숨을 끊을 만큼 좌절하고 일선의 판사들은 참담함과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법원은 사법파동이 벌어질 때마다 사법권 독립을 내세워 조직 내 자체 해결을 강조해왔다. 국민들도 이번에 3차에 걸친 자체 조사를 기다려주었다. 그러나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 국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섰다는 점에서 상황이 달라졌다. 사법부도 권한을 벗어난 행위에 대해서는 제재를 받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이다. 국민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독립이 아니라 자기 조직을 위한 독립을 앞세운다면 파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연재사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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