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경찰관 제복 입고 사진 찍으면 진로체험 끝?

등록 2018-07-02 20:09수정 2020-02-28 09:36

[함께하는 교육] ‘일의 의미’ 알려주는 진로체험 사례
지난 6월21일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크리킨디센터’의 마스터클래스 미장 수업 현장.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김성원 흙부대생활기술네트워크 대표와 강화경 보조 강사의 설명을 듣고 미장 벽화 및 광택 작업을 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지난 6월21일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크리킨디센터’의 마스터클래스 미장 수업 현장.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김성원 흙부대생활기술네트워크 대표와 강화경 보조 강사의 설명을 듣고 미장 벽화 및 광택 작업을 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지난 2016년부터 전국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를 전면 시행하고 있다. 학생들의 진로와 적성을 찾아주는 게 이 제도의 핵심이다. 학교 안팎에서는 진로체험이 대세가 되면서 ‘직업인과의 하루’ 등 관련 프로그램이 다수 열리고 있다.

한데 경찰관 꿈꾸는 학생들은 제복 입고 사진 찍기, 판사가 되고 싶은 아이들은 모의법정 체험해보기 등 보여주기식 일회성 교육이 많은 상황이라, 이같은 단발성 프로그램의 교육 효과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제는 아이들이 진로체험을 ‘소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무엇을, 왜 하고 싶은지에 대한 ‘자기 질문’을 가져야 할 때라는 것이다.

경찰관 제복 입고 사진 몇 컷 찍고

모의법정 찾아 판사 체험하고…

단편적인 진로교육 효과 점검해봐야

체험 ‘소비’보단 ‘나만의 꿈 질문’ 갖게

미장수업 등 통해 ‘삶의 기술’ 터득

장인들 멘토로 ‘일하는 마음가짐’ 배워

실재형·사회형 등 성격검사 기초로

동네일터 지도 펼쳐놓고 직업체험도

지난 6월15일 서울 공릉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학교 주변 약국과 지하철 6호선 태릉입구역 등을 찾아 ‘동네일터 스탬프 투어’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사회·학교·학부모가 손잡고 3년째 ’진로 투어’를 꾸려가고 있다. 상상이룸센터 제공
지난 6월15일 서울 공릉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학교 주변 약국과 지하철 6호선 태릉입구역 등을 찾아 ‘동네일터 스탬프 투어’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사회·학교·학부모가 손잡고 3년째 ’진로 투어’를 꾸려가고 있다. 상상이룸센터 제공

‘직업 철학’ 깨닫게 하는 은평구 ‘크리킨디센터’

입시 위주 한국 교육에서는 ‘진로’와 ‘진학’이 같은 말로 쓰이지만, 전문가들은 진로체험 교육의 목적은 ‘어느 대학 가야 한다’가 아닌 ‘사회적 관계의 확장’에 있다고 강조한다. 주변 어른들이 실제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고 직접 질문을 만들어보는 게 진로체험에서 얻을 수 있는 교육 효과라는 뜻이다.

지난 6월21일 서울 은평구 ‘크리킨디센터’(서울시립은평청소년미래진로센터, 이하 크리킨디센터) 3층 작업장을 찾았다. 이날은 ‘마스터클래스 미장수업’의 마무리 단계인 광택 미장, 질감 표현하기 등의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 센터는 지난 4월26일 문을 열었다.

“처음엔 ‘미장’이 무슨 말인가 했죠. 근데 지금은 이 파란 작업복이 익숙해요. 이걸 입고 흙을 물에 개어서 벽에 바르는 과정을 일주일 동안 배웠거든요. 미장 벽화 만들기, 광택 표현 등을 해보면서 ‘삶에 필요한 진짜 기술’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해보게 됐어요.”

벽에 흙을 바르며 한창 작업 중이던 조수빈(17)양이 말했다. 조양은 학교 밖 청소년으로, 센터에서 진행하는 이 수업을 통해 ‘미장 마스터’를 만나 도제식 교육을 받았다. 석회 가루가 날리는 작업장은 마스크가 없으면 숨쉬기 힘들 정도였지만 참가 학생들과 지도 강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작업과 작업에 필요한 핵심 대화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최근 진로체험 프로그램은 단연 드론과 코딩 및 3D프린팅에 집중돼있다. 한데 크리킨디센터 프로그램을 보면 미장을 비롯해 ‘시와 물레’, ‘목신 공방’ 등 생태 분야 교육들이 많다. 김희옥 센터장은 “디지털 기술 외에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와 환경들을 경험해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각 분야 마스터(장인)들을 청소년과 만나게 함으로써, 하나의 작업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중시하는 게 핵심이라고도 전했다.

김 센터장은 “아이 혼자 고민하는 게 아니라 마스터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협업의 중요성과 문제 해결 능력 등을 키우게 한다”고 설명했다. “미장 등의 작업이 당장 아이의 진로가 되지는 않겠지요. 다만 일주일 혹은 분기별로 ‘삶의 기술’을 배우는 경험을 해보면 아이들의 시야가 또렷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나는 왜 못하겠지, 왜 하기 싫은 거지’에서 ‘스마트폰 밖 세상에도 우리 인생을 가꾸는 많은 기술과 방법들이 있었구나’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크리킨디센터(krkd.eco)는 7~8월에도 여름방학 마스터클래스를 연다. 미장수업을 비롯해 오토마타(목공기술 기반으로 한 기계 예술품 제작), 목신(버려진 나무로 숟가락, 접시 등 생활물건 제작), 젠더감수성 캠프를 비롯해 어린이·청소년 팝업 프로그램으로 ‘목화 일주일학교’, ‘시와 물레’ 과정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지역·학교·학부모가 손잡고 ‘진로 투어’ 만들다

지역사회와 학교, 학부모가 손잡고 3년째 진로체험 교육을 진행하는 곳도 있다. 노원상상이룸센터(이하 상상이룸)와 서울 공릉초등학교는 지난 2016년부터 ‘동네일터 스탬프 투어’(이하 스탬프 투어)를 꾸려가는 중이다.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해 학교 주변의 관공서 및 일터를 탐방한다. 진로체험을 국어?사회?실과 등 교과목과 연계했다.

아이들의 스탬프 투어를 위해 상상이룸과 공릉초, 학부모지원단 등은 두 달 동안 사전 준비를 한다. 지난 6월15일에는 공릉초 6학년 전교생이 스탬프 투어에 참여했다. 이은숙 공릉초 교육협력부장 교사는 “홀랜드 검사를 통해 아이들의 직업 유형 등을 미리 파악하는 과정을 거친다. 상상이룸과 학교, 학부모지원단이 발품 팔아 만든 ‘동네 일터 지도’를 활용해 아이들 한 명당 두 곳의 일터를 경험해보게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실재형(R)’과 ‘사회형(S)’이 나온 아이는 동네 치과와 주민센터 등을 찾아 직업인들을 직접 만나고 오는 것이다.

학교 주변 일터를 발굴?섭외해 진로체험을 진행하니, 직업과 진로에 대한 관심도가 더욱 높아졌다. 이 학교 6학년 오윤영양은 “수의사를 꿈꾼 적 있는데 실제 우리 동네 동물병원에서 진로체험을 해보니 너무 신기하고 좋았다. 대동물과 소동물의 수술법에는 차이가 있는지 등을 수의사 선생님한테 질문했을 때 뿌듯했다”고 했다. 서정화 센터장은 “진로체험이라는 게 결국은 아이들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이해로 이어진다”며 “동네 어른들이 생활을 꾸려가는 삶의 현장을 방문하면서 ‘좋은 직업’과 ‘나쁜 직업’ 등의 편견도 사라진다”고 했다.

스탬프 투어가 자리를 잡게 된 데는 학부모들 노력도 컸다. 스탬프 투어 학부모지원단에서 3년째 활동하고 있는 조주현씨는 “무작정 아이들에게 ‘네 꿈이 뭐니’, ‘나중에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묻는 건 진로교육이 아니다. 부모세대는 공부만 잘하면 됐지만, 지금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찾고 싶어한다”고 강조했다. “10여명의 학부모들과 함께 협력하며 지원단 활동을 하고 있어요. 상상이룸과 학교, 학부모지원단이 3주체가 되어 아이들의 진로를 함께 고민하고 연구합니다.”

스탬프 투어 뒤에는 ‘직업인에게 엽서 쓰기’, ‘우리동네 일터 신문 만들기’ 등 사후활동을 진행한다. 이은숙 교사는 “사진 찍고 돌아오는 단발성 진로체험이 아닌, 학교 주변 걸어서 10분 거리 일터를 찾으니 아이들이 일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살아가는 관계’에도 관심 갖게 된다. 인성교육도 더불어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윤석열 “계엄이 왜 내란이냐” 1.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윤석열 “계엄이 왜 내란이냐”

‘강제동원’ 이춘식옹 별세…문재인 “부끄럽지 않은 나라 만들 것” 2.

‘강제동원’ 이춘식옹 별세…문재인 “부끄럽지 않은 나라 만들 것”

‘내란의 밤’ 빗발친 전화 속 질문…시민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3.

‘내란의 밤’ 빗발친 전화 속 질문…시민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뿔 달린 전광훈 현수막’ 소송…대법 “공인으로 감당해야 할 정도” 4.

‘뿔 달린 전광훈 현수막’ 소송…대법 “공인으로 감당해야 할 정도”

서부지법 판사실 문 부순 ‘사랑제일교회 특임전도사’ 구속 5.

서부지법 판사실 문 부순 ‘사랑제일교회 특임전도사’ 구속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