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조난 상황에서는 구조될 때까지 최대한 우리 몸의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고 했죠? 아까 배운 ‘잎새 뜨기’ 방법으로 다시 한 번 물에 떠봅시다!”
지난 7월23일 오전 10시, 서울 잠실야외수영장 앞 강가에 마련된 ‘폰툰’(pontoon, 임시로 가설한 수상 플랫폼)에서 정창인 강사(수련지도사)가 말했다. 이날 서울길원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은 ‘안심 생존수영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생존수영’이란 긴급 상황 시 생명을 지키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견디는 목적의 수영을 말한다. 이론 교육, 잎새 뜨기, 체온 유지, 구명벌 탑승 및 구조 신호 보내기 등의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실내 수영’과는 엄연히 다른 ‘생존수영’
지난해 8월 인천의 한 해수욕장에서 물놀이하던 10대 청소년이 높이 2.5m에 달하는 너울성 파도에 휩쓸려 육지에서 800m 떨어진 곳까지 떠밀려 간 일이 있었다. 당시 인천해양경찰서는 “아이가 물을 많이 먹기는 했지만 무사히 구출됐다. 거센 물에 휩쓸려갔음에도 20여분가량 버틸 수 있었던 건 생존수영 덕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소년은 ‘잎새 뜨기’ 생존 수영법으로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서울시교육청 소속 대천임해교육원 성열운 수련지도사는 “여름방학을 맞이해 가족?친구 단위 물놀이를 계획하는 경우가 많다. 강과 바다에서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생존수영은 꼭 필요한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생존수영 교육을 2020년까지 초등 전 학년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국민의 재난·안전사고 예방 및 대처능력 향상’이 공교육 과정에서 주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는 추세다. 생존수영은 물속이 훤히 보이는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복 등을 갖춰 입고 자유형으로 헤엄치는 것과는 다르다. 성 수련지도사는 “실내 수영을 곧잘 하는 학생들도 막상 강이나 바다에서 고립되거나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크게 당황한다. 이런 때를 대비해 ‘살아남는 수영법’ 및 구조 프로세스를 알려주는 게 바로 생존수영 교육이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6월26일 대천임해교육원이 잠실야외수영장 앞 한강에 ‘안심 생존수영 교육지원센터’를 열었다. 오는 10월26일까지 강과 바다를 이용한 생존수영 교육 활동을 펼치게 된다. 9월까지 예약이 꽉 찰 정도로 관심도가 높다. 서울시교육청 소속 초등학교 5∼6학년을 대상으로 학교 단위 신청을 받고 있다. 오전(9:30∼11:30) 및 오후(13:30∼15:30)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다.
물에 들어가기 전, ‘잎새 뜨기’ 등 연습해봐
생존수영의 첫 단계인 ‘잎새 뜨기’는 말 그대로 나뭇잎처럼 팔을 벌리고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말한다. 체력을 많이 소모하지 않고도 비교적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어 실제 응급 상황에서 활용도가 매우 높다.
잎새 뜨기는 몸에 힘을 빼고 폐에 공기가 충분히 들어가게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하늘을 바라보고 물에 대자로 눕는 방법이다. 부력으로 몸이 물 위에 뜨게 되는데, 이때 호흡을 내뱉으면 다리부터 가라앉게 된다. 다시금 숨을 최대한 들이마시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 오래 떠 있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해수욕장에 가기 전 부모와 아이가 전문 교육과정 등을 통해 충분히 연습해보면 좋다”고 강조한다.
잎새 뜨기를 배우기 전에는 ‘입수 교육’을 받는다. 점프하듯 물에 뛰어드는 게 아니라, 한 손으로는 코를 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몸의 주요 부위를 가리고 걸어 들어가듯 물 아래로 떨어지는 방법이다. 정 강사는 “실제 강이나 바다에 입수 시, 몸을 다치게 할 수 있는 장애물이 있는 경우가 많다. 보통 아이들은 점프하듯 뛰어드는데, 생존수영에서는 천천히 걸어가듯 물 아래로 떨어지는 방법부터 알려 준다”고 설명했다.
“생존수영은 ‘살아남기 위한’ 목적이 분명히 있는 수영입니다. 이론 및 입수교육 뒤 강가에 설치한 폰툰에서 잎새 뜨기를 먼저 배우고 한강 실습에 들어가게 되지요. 특히 잎새 뜨기는 구명조끼가 없거나 수영을 못하는 아이들도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라 생존 수영의 핵심으로 불립니다.”
어릴 때부터 실내 수영장에서 자유형, 배영 등을 배워 물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아이들도, 보트를 타고 막상 한강 한가운데로 들어가자 사뭇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구명조끼를 입은 채 친구들과 물놀이하며 장난을 칠 법도 했지만, 깊고 너른 강 한가운데서 ‘실제 상황’을 접한 아이들은 강사의 지도 속에 차분히 생존 수영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자, 이제 한강 한가운데에 왔습니다. 모두 보트에서 내려 저쪽 구명벌까지 이동해 볼까요?”
이날 교육의 목표는 기본 배영으로 구명벌까지 움직여 탑승하고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 “발이 닿지 않아요”, “물살도 빠르고 너무 깊은 것 같아요”, “실내 수영장과는 다르게 물 색깔이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여요” 등 아이들의 소감(?)이 들려올 때쯤 동행한 강사들이 체온 유지법을 실전에서 알려주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지도에 따라 한강 한가운데서 원형으로 모여 팔짱을 꼈다. “물에서는 체온 유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구조 상황에서는 흩어져 있기보다 뭉쳐있어야 구조대의 눈에 잘 보일 수 있겠지요!” 정 강사의 말에 아이들은 서로 단단히 팔짱을 끼며 원을 만들었다.
지난 7월23일 서울 잠실야외수영장 앞 한강에서 서울길원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생존수영 실습교육을 받고 있다. 두 시간에 걸쳐 입수 교육
한강 한가운데서 구조 신호 보내봤어요
형광 주황색의 구명벌까지 강사들과 함께 ‘기본 배영’으로 이동하면서 아이들의 표정도 더욱 진지해졌다. 20여명이 탑승할 수 있는 구명벌에 하나둘 도착하자, 먼저 오른 아이들이 뒤에 올라오는 친구들을 힘껏 끌어올려 줬다. 성열운 수련 지도사는 “구명벌에는 호루라기와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작은 도끼 등 응급도구가 함께 실려있다. 호루라기를 5초 동안 불고, 5초 동안 쉬는 것은 전 세계의 강과 바다에 통용되는 구조 신호”라며 “구명정 및 구조대가 올 때까지 1분 동안 6번 규칙적인 신호를 보내는 법도 알려주고 있다”고 했다. 이날 교육에 함께 참가한 박소연 교사는 “취미로 수영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흐르는 강물에서 실제 몸을 움직여 훈련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공교육 과정에서 안전에 방점 찍은 생존수영 등의 프로그램이 아이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이들의 힘찬 구조 신호를 듣고 출동한 보트가 구명벌에 연결된 뒤 폰툰에 다시 도착하는 것으로 생존수영 실습교육이 마무리됐다. 이날 교육에 참가한 최예은·구건모 학생은 “물놀이와는 전혀 다른 ‘실전 수영’이었다. 수영장에서 즐겁게 노는 것과는 별개로, 체력과 체온을 유지하는 법을 배운 게 큰 도움이 됐다. 조난 및 생존수영, 구조 과정까지 직접 몸으로 경험해보니 쉽게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구명벌에 올라 호루라기를 불면서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게 기억에 남아요. 장난치듯 호루라기를 부는 게 아니라 규칙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깊은 물을 무서워하는 친구들을 돕고 서로 격려하면서 ‘안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글·사진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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