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8일 이현민(왼쪽 둘째)양이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 대학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이현민양 제공
수능 등 입시 뉴스 쏟아지는 때
공교육·대학교육 코스 밟지 않고
남과 다른 길 걷는 청소년도 있어
중학교 자퇴 뒤 사회서 꿈 찾거나
‘대학은 나중에’ 가능성 열어두고
지금 하고 싶은 일 먼저 해보는 등
용감하게 내 길 걸어보는 사례들
높은 등록금·실용학과 위주 대학 아닌
줄세우기 없는 대안 대학 선택하기도
수시, 정시, 논술, 면접, 그리고 수능…. 매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 다가올수록 고3 수험생 등 ‘학교 안 청소년’들을 위한 입시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대학 교육이 의무교육처럼 되어버린 탓에 통념상 사회적 의무교육 기간은 약 16년(초·중·고교 12년, 대학 4년 등). 많은 이들이 약 16년 동안 학교 안 교육을 받지만 대다수와 달리 십말이초(10대 말, 20대 초) 시기에 학교 밖 배움을 선택하는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
청소년기본법 기준으로 만 9살 이상부터 24살 이하까지는 모두 청소년이다. 교육통계서비스(2012)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매년 6~7만 명이 다양한 이유로 학교 밖 청소년이 되고, 학령기 청소년의 6%에 해당하는 38만7000여명이 학교 밖 청소년으로 추산된다. 입시 뉴스에 ’해당하지 않는’ 청소년들도 그만큼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학교 밖 청소년이라고 해서 위기 청소년만을 떠올릴 일은 아니다. ‘학교 밖’을 계획성 있게 선택했고,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걸어나가는 친구들도 늘고 있다. 조금만 다른 길을 걸어도 쉽게 흠잡는 한국 현실에서, 일반적인 학교 공부 테두리를 벗어나 나만의 길을 걷는 청소년을 <함께하는 교육>이 만나봤다.
고3 나이에 ‘간호조무사 자격’ 취득한 이유
박예인양은 최근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만으로 18살. 학교에 있었다면 올해 고교 3학년이다. 박양은 지난 2015년 말 중학교를 다니다 그만두면서 학교 밖 청소년으로 지내고 있다. 학교를 그만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성적 순으로 줄 세우고 차별하는 교실 분위기가 학교를 나오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지난 2016년 4월부터는 광주광역시북구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검정고시반인 ‘저스트 두잇’(Just do it)에서 공부했고, 중·고등 검정고시에 차례로 합격했다. 박양은 “검정고시반에서 멘토 선생님과 공부하고, 친구들과 진로 등 정보를 공유하며 ‘학교 울타리’ 못지않은 보람찬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4월3일 광주광역시북구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검정고시반 청소년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있다. 광주북구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제공
학교 담장 밖에서 지내며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인식 개선 문제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 길을 걷다 누군가 ’학생’이라고 부를 때, 박양은 망설인다. 공식적(?)으로는 학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속이 없고, 교복을 입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회가 주는 시선이 불편했다. 이런 불편함을 겪으며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도 싹트기 시작했다.
올해 초부터는 광주꿈드림청소년단 활동도 시작했다. 지난 8월9일에는 ’국민정책소통플랫폼 광화문1번가’에서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정책 제안도 해봤다. ‘학교 밖에도 청소년이 있다’, ‘학생 말고 청소년으로’, ’학교 밖 청소년에게도 학습권이 있다’ 등 캠페인을 진행하며 실제 ‘학생 할인’이라는 말이 ‘청소년 할인’으로 바뀌는 것도 지켜봤다. 박양은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학습을 포기한 게 아니다. 여러 이유로 학교를 떠나거나 그만둔 청소년들에게도 배움의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양은 검정고시에 이어 간호조무사 등 꾸준히 합격의 기쁨을 맛보면서, 인생 설계도 더욱 촘촘하게 해보게 됐다. “센터에서 3년 동안 생활해오면서, 타인을 돌보거나 더 나은 상황에 놓일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참 멋져보였어요. 좌절한 사람에게 손을 건네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회복지와 상담심리 분야를 공부해보고 싶어요. 더 노력해서 사회복지사라는 꿈도 이루고 싶고요.”
황수주 광주북구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장은 “학교 밖 청소년이라고 대학 입학 등 진학에 관심 없는 게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탈학교’한 아이들에게도 학습권이 있고, 여기에 맞춘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검정고시반에도 60~70명의 학교 밖 청소년들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대학생 멘토들이 일대일 지도를 해주거나 진로 로드맵도 함께 짜보고요. 학교 테두리 안에서는 반강제적으로라도 직업 체험 등을 하지요. 학교 밖 청소년들은 그럴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여성가족부,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의 지원을 받는 전국 꿈드림센터에서 학습뿐 아니라 진로체험, 직업훈련 등에도 관심 갖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대입은 선택”…문화 기획자 꿈꾸는 20대 팀장
대학 입학이라는 선택지를 뒤로 하고 예비 사회적기업에서 일하는 ‘20대 초반 팀장’도 있다. 서울 도봉구 청소년 복합문화공간 ‘엘오이’(LOE)에서 기획자로 일하는 이하정(22)씨는 매일매일 다양한 십대들을 만나고 있다. 최근에는 고민을 들고 찾아온 십대들과 함께 ‘테마가 있는 부산-남해 여행’을 다녀왔다. ’사춘기의 복잡한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는 여행’이라는 콘셉트에 맞춰 일정을 하나하나 함께 짰다.
이씨는 고교 2∼3학년 때 한국청소년학술대회(KSCY, 이하 학술대회) 초기 멤버로 활동하며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일’에 대한 질문을 해봤다. 학술대회 멤버로서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때 ‘학생부에 한 줄 채우기 위한 소논문 말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자’라고 생각했다. 남들 수시모집 원서 접수하고, 수능 대비한다며 모의고사 준비할 때, ’십대들을 웃게 만드는 프로그램’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6월1일 서울 도봉구 청소년복합문화공간 엘오이(LOE)에서 십대들과 ‘책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하정씨 제공
왜 대학생이 아닌 ‘청소년 문화 기획자’가 됐을까? 이런 물음에 이씨는 “대학을 거부한 건 아니다. 다만 내 인생을 걸어나가는 과정에 있어 ‘순서’를 바꾼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대학 입학은 수많은 선택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요. 남들이 1-2-3-4를 가는 거라면, 저는 1-3-4-2를 갈 수도 있는 거죠. 고교 졸업 뒤 대학에 못 갔다고 해서 나락에 떨어지거나, 크게 좌절하는 청소년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학교와 학원, 입시에 지친 청소년들이 주도적으로 참여·진행할 수 있는 왁자지껄한 ‘판’을 만들어주면서 마음의 힘을 키워주는 게 동시대 청소년으로서의 제 사명이고 일입니다.”
이씨는 현재 서울 도봉구 관내 청소년들과 함께 세상에 단 하나뿐인 책 만들기, 북콘서트 등을 진행하며 십대들에게 발언권 주는 자리를 만들고 있는데, 앞으로는 서울 전역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한 ‘대안 대학’서 공부해요
대학은 대학인데 ‘대안 대학’에 다니는 학교 밖 청소년도 있다. 경기 소재 외국어고등학교를 다니다 지난해 자퇴한 이현민(19)양은 올해 1월까지 청소년인권단체 ‘아수나로’에서 반상근 활동가로 일했다. <요즘 것들>이라는 청소년 신문의 취재·편집 등을 최근까지 담당했고, 여전히 아수나로 수원지부에서 ‘열일’하고 있다. 이양의 진로 로드맵에서 ‘인권’은 언제나 첫 번째 열쇳말이다.
이양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자신의 미래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 올해 초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이하 지순협 대안대학)에 입학했다. 2년제(1년 4학기)로 운영하는 이 대학에서 3학기 과정을 듣고 있다. 일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등급 매겨지는 입시를 준비하고 싶지 않았다.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면서 교육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던 터라 턱없이 높은 등록금, ‘실용학과’ 위주로 재편되는 대학의 문제도 잘 알고 있었다. ’대안 대학’이라는 배움 공간을 선택하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부모님 덕분에 일찍부터 사회 이슈와 참여의 중요성을 알게 됐어요. 수원역에 피켓 들고 참 많이 나갔지요.(웃음) 제가 선택한 이 ‘로드맵’을 가장 지지해주고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부모님이고요.”
정치·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미디어·테크놀로지 정치 쪽으로 넓히게 되면서, 최근에는 여느 대학생과 다름없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대안대학 생활 역시 학생회, 교과위원회, 졸업논문 프로포절, 담임 교수회 등으로 빠듯하다. 학기마다 열리는 예술학·미학입문, 한국근현대사의 쟁점, 페미니즘 이론, 현대과학과 동양사상, 지각생태학 등의 강의를 수강해야 학점도 받을 수 있다. “영상기획워크숍 수업을 통해 지식을 시각화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글로벌 시대에 ‘인권’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도 하게 됐고요. 제도 교육 밖에서도 얼마든지 원하는 공부를 하면서 살 수 있어 행복합니다. 당연히 무한한 책임이 따르지만요. 학교 밖에서 얻은 배움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곧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