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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진로 고민할 기회, 우리에게도 필요해요”

등록 2018-10-01 20:21수정 2020-02-27 15:32

다문화학생 10만명 시대의 진로교육

다문화학생 매해 1만명씩 늘어나
우리나라는 이미 ‘다문화 사회’
한국서 터 잡고 살아갈 아이들
이들 위한 진로·직업교육 체계 갖춰야
현재 국내에 제천 다솜고 한 곳뿐
학교밖 미등록 이주 아동·청소년 파악하고
진로·적성 찾아주며 학습과 성장 도와야

지난 6월28일 한국폴리텍 다솜고등학교(교장 권대주) 3학년 학생들이 한국폴리텍대학 이석행 이사장(사진 가운데)과 졸업 사진을 찍고 있다. 다솜고는 국내 하나뿐인 다문화·중도입국 청소년을 위한 기숙형 기술고등학교다. 변경환 교사 제공
지난 6월28일 한국폴리텍 다솜고등학교(교장 권대주) 3학년 학생들이 한국폴리텍대학 이석행 이사장(사진 가운데)과 졸업 사진을 찍고 있다. 다솜고는 국내 하나뿐인 다문화·중도입국 청소년을 위한 기숙형 기술고등학교다. 변경환 교사 제공

다문화학생 수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2018 청소년 통계’를 보면 2017년 초·중·고 다문화학생은 10만 9천명으로 전년보다 10.3% 늘어났다. 특히 전체 학생수와 학령인구는 꾸준히 감소 추세인 반면, 다문화학생은 최근 5년 동안 매해 1만 명 이상 늘어나, 지난 2017년 처음으로 10만 명 선을 넘었다. 이 통계에는 불법체류로 인한 미등록 이주 청소년이나 외국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건너온 중도입국 청소년 수치가 빠져있다.

진로교육 사각지대 놓인 다문화 청소년

여성가족부의 ‘2015년 전국 다문화가족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중도입국 청소년 10명 가운데 4명만 학교에 다닌다. 이들을 위한 기술고등학교도 충북 제천시에 위치한 ‘한국폴리텍대학 다솜고등학교’(이하 다솜고) 한 곳뿐이다. 나머지 6명꼴은 학교밖청소년으로 추정한다. 공교육 과정에서 자유학기제, 자율동아리 등으로 학생들의 진로와 전공적합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에, 이들만은 진로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이다.

한국다문화교육학회장을 지낸 차윤경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미등록 이주 아동·청소년들이 많다. 이 아이들은 현재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앞으로 한국사회에서 터를 잡고 살아갈 가능성이 무척 높다”며 “사실상 다문화사회인 우리나라에서 이들을 위한 진로교육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성적 경쟁이 치열한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에서 다문화 학생들이 고교 졸업 뒤 대학 입학이라는 ‘주류 한국 교육의 코스’를 밟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편이다. 하지만 이들도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교육 받을 권리가 있다. 차 교수는 “차별 받지 않는 사회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적성과 관심사를 살펴 한국에서 한 명의 시민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군 부사관 꿈꾸고 ‘자격증 부자’ 됐어요”

2015년 한국노동연구원의 ‘체류 외국인 및 이민자 노동시장 정책과제’를 보면 15~24세 중도입국 청소년의 니트(NEET, 교육과 직업훈련을 받지 않고 취업하지도 않은 청년 세대)족 비율은 40%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다솜고는 국내 하나뿐인 다문화?중도입국 청소년을 위한 기숙형 기술고등학교다. 부모 가운데 한 사람만 한국인이면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아도 입학이 가능하다. 고용노동부 장학금 지원으로 입학금, 수업료, 기숙사비를 내지 않는 등 장점이 있어 아이들의 진로?직업교육에 관심 있는 다문화 가정에서 입학 문의를 많이 한다.

권대주 교장(사진 가운데)과 학생들이 졸업식 사진을 찍고 있다. 다솜고 제공
권대주 교장(사진 가운데)과 학생들이 졸업식 사진을 찍고 있다. 다솜고 제공

컴퓨터 기계, 플랜트 설비, 스마트 전기 기술 등의 전공이 개설돼 있고 방과 후에는 한국어 강의를 비롯해 각종 자격증반을 운영한다. 귀화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 대상으로는 ‘한국 사회의 이해’라는 수업을 진행한다. 지난 2012년 개교한 뒤 다솜고 졸업생의 80%가 대학에 입학하거나 취업해 한국 사회에 안착했다.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를 둔 정재호군은 다솜고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정군은 베트남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지난 2011년 가족들과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중도입국 청소년인 것이다. 베트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2년 더 다녀야 했다. 한국어를 배워야 했고, 적응 기간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처음 한국에 온 뒤 ‘잘 알지도 못하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마음 상하는 일도 더러 있었다. 단지 겉모습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낯선 이들한테서 날선 말을 듣기도 했다. 진로 고민에 밤잠 못 들며 중학교 졸업 무렵 방황도 했다. 그런데 정군은 다솜고 플랜트 설비과에 입학하면서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군은 다솜고에 입학하며 제대로 된 진로교육을 받게 됐다.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는 큰 배를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꿈도 품게 됐다. ‘용접기술 명장’을 목표로 설비?시공 자격증을 딴 뒤 이 분야 대가가 되겠다는 인생 밑그림이 생긴 것이다. 지난해에는 해군 장교였던 아버지의 길을 따라 ‘해군 부사관’이 되겠다는 더욱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지난 9월 해군 부사관 1차 필기시험도 치렀다.

같은 학교 전기과 3학년 손우훈군은 ‘자격증 부자’다. 중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7년 전 부모와 한국으로 온 손군은 철도전기신호기능사, 승강기기능사, 전기기능사, 한국사 1급, 한어수평고시(HSK) 6급 등을 땄다. 중도입국 다문화 청소년이라는 ‘딱지’는 손군에게 오히려 기회가 됐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또래들이 미래에 대한 큰 고민 없이 학교밖을 떠돌 때, 손군은 학교의 체계적인 교육과정 속에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다. 손군은 “학교 교육 환경이 좋아서 ‘공부할 맛’이 났다. 서울에 있는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와 교류하는 등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한국 친구들을 만나 좋은 자극도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자격증 한 개만 있으면 내 앞에 놓인 길이 하나뿐이잖아요.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다솜고에 다니면서 ‘하면 된다’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다솜고 입학을 위해 다문화 가정 부모들은 제천 근처로 이사 가기도 한다. 양질의 교육과정을 제공하면서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교육기관이 마땅치 않은 탓에, 제주도와 강원도 등 전국 각지에서 다솜고로 입학 문의를 하는 상황이다. 변경환 다솜고 교사(한양대 다문화교육학 박사과정)는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교과 수업 외에 직업기술 훈련이 가장 필요하다”며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처지에서는 우리 학교와 같은 진로?직업 교육을 위한 공간이 지역 권역별로 한 개씩 더 생겼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고 털어놨다.

변 교사는 졸업 뒤 사회에 안착한 제자들을 보면 이런 바람이 더욱 커진다고 전했다. 이 학교 컴퓨터 기계과 졸업 뒤 충북 음성의 한 기업에 취업한 이문희(22)씨는 현재 직장에서 ‘우수 사원 표창’을 받을 만큼 사회에 잘 적응했다. 방글라데시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덕에 영어는 물론 방글라데시어, 한국어 등 3개 국어에 능통하다. 재학 중 밀링, 선반기능사 등 자격을 취득해 졸업하자마자 취업한 ‘효녀’이기도 하다. 이씨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보다는 차별이나 편견 면에 있어 사회 분위기가 좀 나아진 편이다. 다국어를 할 수 있다는 장점과 공인된 자격증 덕분에 자신 있게 사회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했다. “취업 뒤 또 다른 꿈이 생기더라고요. 기회가 되면 야간 대학에서 기계쪽 공부를 더 해보고 싶습니다.”

‘동화주의 교육’에서 ‘구체적인 진로 교육’으로

한국에서 다문화 교육에 본격적으로 관심 갖기 시작한 때는 지난 2006년부터다. 올해로 13년째다. 당시 정부는 한국이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이행하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인식하고 ‘여성결혼이민자 가족 및 혼혈인·이주자 사회통합 지원방안’을 채택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2006년 5월 ‘다문화가정 자녀 교육지원 대책’을 발표하고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대학생 멘토링, 교사와의 일대일 결연 등을 통해 다문화 가정 자녀의 학습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동안 공교육 현장에서 ‘다문화 교육’이라는 말이 너무 좁은 의미로만 규정돼 왔다고 설명한다. 변 교사는 “지난 2006년부터 시작한 다문화 교육은 아이들을 일방적으로 한국사회에 적응시키기, 한글 가르치기 등 ‘동화주의’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며 “이제 다문화 교육은 ‘한국사람 만들기’가 아닌 ‘함께 일하며 살아가는 시민 양성하기’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다문화학생들을 ‘얼마나 한국 사람이 됐느냐, 너는 왜 우리와 다르냐’의 관점으로 볼 게 아니라,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진로와 직업을 택해 시민으로 살아가게 될 것인지 장기적으로 고민할 때다. 차윤경 교수는 “10년 전 어린이였던 다문화 학생들이 이제 청소년이 됐다.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진로·직업 교육이 절실하다”며 “이 나라에서 자신이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 것인지 고민할 기회를 주는 것, 그게 공교육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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