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제안 공모전을 열어 소책자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학생 자치’에 대한 세미나를 진행해보고 싶어요.”
“공연팀 섭외하는 대로 전체 메신저에 공유해주세요.”
서울·경기·대전·광주·부산·충청 등 전국에서 모인 19명의 학생들. 지난 9월16일 오후, 대전 케이티(KT) 인재개발원에서 ‘2018 학교민주시민교육 포럼’ 학생 기획단(이하 기획단) 1차 협의회가 열렸다. 기획단에서 두 달 가까이 활동하고 있는 중·고교생들은 이날 2시30분부터 5시까지 열띤 회의를 진행했다.
‘내가 경험한 민주시민교육’ 알리고 싶어요
이날 전국 곳곳의 학생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 회의를 연 이유가 있다. 오는 11월10일 서울 방배동 서울시교육청 교육연수원에서 열리는 ‘2018 학교민주시민교육 포럼’(이하 포럼) 세미나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기획단은 포럼에서 ‘학교 속 민주시민, 학생들의 소소한 노력과 이야기’를 주제로 사례 발표를 하게 된다. 어른들 행사의 ‘들러리’가 아니라, 교육 주체로서 동등한 자격으로 포럼을 준비했다. 단장을 맡은 대전 대성중학교 3학년 신선규군은 “포럼 오후 세션인 ‘학생이 만드는 학교, 학생자치의 활성화’를 주관하고 있다”며 “전국 학생 대표 19명이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 소통하며 홍보, 재정관리, 협의회 진행·구성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 지역 학생 대표들이 학교 안에서 경험한 민주시민교육 사례를 직접 발표할 예정입니다. 세월호 추모 행사, 학생자치회 구성하는 법, 리더의 자세 등 ‘민주주의’에 방점 찍은 자치 활동 이야기를 풀어낼 거예요.”
포럼 주제가 ‘학교민주시민교육’인 만큼 세미나에서는 인권과 평화, 학생자치와 혁신교육 관련 내용이 많다. 학생들은 포럼 성격에 맞게 직접 학생 기획단을 구성했다. 또래 친구들을 대상으로 정책 제안 공모전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 홍보·공연팀 섭외·민주시민교육 소책자 만들기·재정 관리까지 모두 도맡아 한다. 이들에게는 학교민주시민교육 포럼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민주시민교육’이 된 것이다. 신선규군은 “학생회장 선거를 치르면서 공약 만들기, 선거 포스터 만들기 등을 해봤다. 이 과정에서 느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함께 나누고 싶어 발표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큰 행사는 어른들만 열 수 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기획단을 통해 뜻을 모아보니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다’는 아이들. 최지아 부단장(부산 부경고 2학년)은 “‘2022년 대입제도개편 시나리오 워크숍’에 부산 학생 대표로 참가한 경험을 이어나가고 싶었다”며 “내가 경험한 다행복학교(혁신학교) 프로그램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 지원했다”고 밝혔다. “우리 학교가 다행복학교로 지정된 뒤 학생 자치활동에 더욱 관심 갖게 됐어요. 성적 위주의 줄 세우기 식 입시 경쟁 교육에서 벗어나, 학교 안팎의 문제에 우리가 직접 목소리를 내고 대안을 찾아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이지요.”
[관련 영상] 2018 학교민주시민교육 포럼오는 10일 ‘학교민주시민교육 포럼’ 열려
교육정책 제안 공모전 직접 열고
기획단 꾸려 사례 발표 나선 학생들
‘들러리’ 아닌 ‘교육 주체’로 자리매김
민주시민교육은 ‘시민 되기’ 배우는 것
기성세대가 받은 반공 교육과는 달라
학생자치회 통해 소통·공감하는 학생들
교칙 설문조사 통해 민주적으로 바꿔나가
지난 9월16일 오후 대전 케이티(KT) 인재개발원에서 ‘2018 학교민주시민교육 포럼’ 학생 기획단 1차 협의회가 열렸다. 대전 대성중학교 3학년 신선규군
지금 왜 ‘민주시민교육’인가?
‘민주시민교육’이라고 하면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현장 교사들은 “12년 동안의 공교육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이라고 강조한다. 인권, 연대, 다양성, 노동과 언론·미디어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교과 융합이 가능한 게 바로 민주시민교육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공교육 과정을 거쳤다면 학력이나 가정형편 등에 상관없이 사회 속 ‘한 명의 시민’으로 성장해 권리와 의무를 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시민교육이 ‘주권자 교육’이기도 한 이유다.
민주시민교육의 내용과 방법이 무엇이든 적어도 한 가지 요소만은 갖춰야 한다. 바로 우리 헌법 1조에 뿌리를 둔 ‘주권자 교육’으로서의 민주시민교육이다. 정원규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국가, 사회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으며,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운영 원리가 무엇인지 등을 교육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의 의견이 제도와 정책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는지 등을 교육과정을 통해 충분히 익히는 것이 민주시민교육의 목표입니다. 한마디로 이 사회의 ‘시민’을 길러내는 과정이지요.”
최근에는 경기도교육청이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도 펴냈다. 초등, 중등, 고등 과정으로 ‘민주공화국 사용 설명서’, ‘모두의 과제를 연대로’, ‘타인이 되어 보기’, ‘언론과 미디어-1인 방송의 그림자’ 등 기성세대가 접해보지 못한 단원들이 교육 과정으로 들어왔다. 학교시민교육 전국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는 허진만 교사는 “학부모와 교사 등 어른들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던 게 바로 ‘민주시민교육’”이라며 “그동안 공교육 현장에서 제대로 학습하지 못했던 영역이지만, 이제부터는 ‘시민 되기’ 교육을 교과서를 통해 공부하고 익혀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학생자치회’로 ‘선도부’ 분위기 바꿨어요
오는 10일 포럼의 학생기획단 세션에서는 최지아양(기획단 부단장)을 비롯한 5명의 학생이 ‘내가 경험한 민주시민교육’ 사례를 발표한다. 최양은 부경고가 ‘부산 다행복학교’(혁신학교)로 지정된 뒤 학생자치회(이하 자치회)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낼 예정이다.
특히 자치회가 아침 등굣길 문화를 ‘훈훈하게’ 바꾼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부경고 자치회는 올해 3월 첫 학기부터 ‘즐거운 등굣길 만들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교문 앞에서 명찰이나 교복 착용 지적, 벌점 매기기 등 학생 통제 기능을 담당했던 기존 학생회 선도부가, ‘만나면 좋은 친구’로 변화한 것이다. 큰 잘못도 아닌데 다른 학생들에게 ‘전시하듯’ 교문 앞에 벌을 세워두고 망신 주는 방식은 비민주적이라는 학생들의 고민과 결정 덕분이었다. 자치회는 커다란 게시판을 만들어, 학생들이 친구나 선생님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짧게 써서 붙일 수 있게 했다. 우편함에 들어온 메시지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직접 전달해줬다. 마음을 담은 편지와 쪽지가 오갈수록 교문 앞뿐만 아니라 교실 문화도 따뜻해졌다.
서로를 감시하고 벌점으로 ‘처벌’하는 전근대적 등굣길 문화가 사라지니, 오히려 교칙에 관심 갖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교칙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관점이 ‘강요·강제’에서 ‘약속·협력’으로 바뀐 것이다. 최양은 “자치회에서 매년 ‘공동체 생활협약’(교칙) 민주 회의를 한다. 모두들 교칙 제·개정 과정에 적극 참여한다”며 “지금보다 더 나은 대안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해보는 게 바로 민주시민교육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핵심은 민주적 생활문화 자리잡는 것
오는 10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열리는 포럼은 학교민주시민교육의 지향점을 알아보고 현장 사례를 발표·토론하는 자리다. 학생, 교사, 연구자, 정책 담당자, 시민단체 등 교육 관계자들 모두 참여할 수 있다. 정원규 교수는 “지금의 학교는 예전의 학교와 너무 많이 다르다. 학생들이 자율성과 자치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며 “기성세대가 받았던 반공 교육, 의식화 교육은 민주시민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이제는 공감과 연대, 제안과 참여 등 ‘민주적 생활문화와 태도’가 일상에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포럼은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하고 서울시교육청과 징검다리 교육공동체, 학교시민교육 전국네트워크가 주관하며 교육부와 경기도교육청, 인천광역시교육청, 전라남도교육청이 후원한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