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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여자애가 무슨 권투야” 설마 아직도 이런 말을 하나요?

등록 2019-11-11 19:31수정 2022-02-07 14:41

[인터뷰] 박은지 트레이너

2011년부터 자기방어훈련 교육
중·고등학교, 대안학교 등에서
‘내 몸 돌보고 사랑하는 법’부터
고함치기, 실기 훈련까지 진행

최근 <여자는 체력> 펴내
성별·나이·장애·비장애 넘어서는
체육 교육에 관심 갖기를…

지난 7일 오후 서울 성동구에 있는 운동센터 ‘프롬더바디’의 박은지 트레이너가 스쿼트 랙(squat rack)에 앉아 사진을 찍고 있다. 선일여중, 경희여중, 대안학교 등 교육 현장에서 ‘자기방어훈련’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박 트레이너는 최근 &lt;여자는 체력&gt;을 펴냈다. 김지윤 기자
지난 7일 오후 서울 성동구에 있는 운동센터 ‘프롬더바디’의 박은지 트레이너가 스쿼트 랙(squat rack)에 앉아 사진을 찍고 있다. 선일여중, 경희여중, 대안학교 등 교육 현장에서 ‘자기방어훈련’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박 트레이너는 최근 <여자는 체력>을 펴냈다. 김지윤 기자

“그렇게 하면 살 안 빠져. 근육 키우면 남자친구가 안 좋아할 텐데?”

여느 운동센터에 가면 회원 가입과 동시에 트레이너에게 듣는 말이다. 이런 말은 성인뿐 아니라 십대 여성 청소년들도 듣게 된다. “여자애가 무슨 권투야. 여자가 힘세져서 뭐 하게” 같은 말을 듣게 된 여학생은, 초·중·고교 시절 학교 운동장을 맘껏 누리지 못하고 골대 밖으로 밀려났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지난 7일 오후 3시 서울 성동구에 있는 운동센터 ‘프롬더바디’를 찾았다. 기존 운동센터가 여성의 몸을 대하는 무례하고 가부장적인 방식에 문제 제기를 한 트레이너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다. 프롬더바디는 박은지 트레이너가 이우연 트레이너와 함께 설립한 곳이다.

무례하지 않은 운동센터, 어디 없나요?

박은지 트레이너는 2011년부터 자기방어훈련 교육을 시작해 2018년부터는 서울 소재 여중, 여고 및 대안학교 등에서 십대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매주 수요일 서울 경희여자중학교 자유학기제 수업 시간에 자기방어훈련을 가르치고 있다.

박 트레이너는 서울 은평구에 있는 살림의료복지 사회적협동조합 운동센터 ‘다짐’에서 7년 동안 일하며 인권센터와 서울여성재단, 장애여성단체 등에도 특강을 나갔다. 2004년에는 대한합기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위를 차지했다. 대학 전공도 문헌정보학에서 체육 쪽으로 옮겼다. 연세대 운동생리학(스포츠의학) 석사 과정을 밟은 뒤 건강운동관리사로 일해오고 있다.

이쯤 되면 박 트레이너가 ‘운동밖에 모르는 사람’ 같지만, 최근 <여자는 체력>(메멘토)을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박 트레이너가 10년 가까이 교육 현장, 운동센터 등에서 느낀 문제의식과 고민, 해결 방법 등이 담겨 있다.

교육 현장에서 자기방어훈련의 의미는 무엇인지, 청소년 시기에 ‘내 몸’을 아는 교육이 왜 중요한지에 관해 박 트레이너와 일문일답을 나눠봤다.

-대부분 ‘자기방어훈련’이란 말을 낯설게 느낀다.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자기방어훈련이라고 하면 흔히 호신술을 떠올린다. 한데 자기방어는 위협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는 신체적 대응방법만 말하는 건 아니다. 정신적으로 무장돼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자기 몸을 쓰는 방법을 모른다면 폭력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 이 훈련은 신체적·사회적으로 자신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인지 탐색하는 시간을 갖는 데서 시작한다. 여기에 (성)폭력에 대한 감수성 키우기, 위험 상황에서 고함지르기, 폭력 상황의 당사자나 목격자일 때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고 대응 시나리오를 작성해보는 프로그램 전부를 자기방어훈련이라고 한다.”

-프로그램 내용 가운데 ‘고함지르기’가 인상적이다.

“성인뿐 아니라 대부분의 십대 여학생들이 일상 속에서 고함을 질러본 적이 없다. 학교 수업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하지 마!’라는 말을 크게 외쳐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못 한다. 평소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대중교통이나 길거리에서 범죄 상황을 처음 마주하게 되면 순간적으로 불안을 느낀다. 이 불안이라는 감정을 동력으로 다음 행동을 선택하게 하는 것, ‘자기 안의 경보를 무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자기방어훈련의 목표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교육을 위해서는 먼저 ‘자기’를 알아야 한다. 내 몸과 마음의 약점과 강점을 발견한 뒤 보완법을 생각해보는 방식이다.

훈련이라고 해서 체력 측정 등 실기만 있는 게 아니다. 종이와 연필을 들고 ‘나의 움직임 역사 그래프 그리기’ ‘몸 지도 그리기’ 등을 해보며 ‘내가 내 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무엇을 해보고 싶은지’를 깨닫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난해 4월25일 서울 선일여자중학교에서 박은지 트레이너가 ‘자기방어훈련’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박은지 트레이너 제공
지난해 4월25일 서울 선일여자중학교에서 박은지 트레이너가 ‘자기방어훈련’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박은지 트레이너 제공

-구체적으로 어떤 수업을 하나?

“십대 여학생들을 위한 자기방어훈련 수업에서는 ‘탐색하기’ ‘인지하기’ ‘돌아보기’ ‘활용하기’라는 네 가지 관점을 중심축으로 설명한다. 자기방어란 일상에서 끊임없이 마주치는 차별과 혐오에 대응하는 일임을 자연스레 깨닫고 고민하게 된다. 실기 시간에는 기초체력을 키우고, 자기 몸을 돌보는 운동과 자기방어의 기본자세와 원리를 배운다. 이런 활동을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배제된 십대 여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자기 몸을 돌보고 지킬 수 있게 하는 것이 수업의 목표다.”

-외국의 체육 수업은 한국과 조금 다르다고 들었다.

“그렇다. 미국 네이퍼빌 고등학교의 체육 수업 시간에는, 학생들에게 경기하는 법이 아니라 건강 관리법을 가르친다. 안전하게 설계된 근력 운동 기구를 이용해 상·하체 근육 단련하는 법, 내장지방량 조절하는 법 등을 배우는 것이다. 운동이 평생 해야 하는 ‘생활체육’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한국에서는 주로 체력과 운동 기술을 점수로 측정·평가한다면, 미국의 경우 학교 스포츠클럽을 통해 여학생과 남학생 모두 축구, 농구, 수영, 육상 등 다양한 운동을 경험해보며 핵심 체력을 기를 수 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성동구에 있는 운동센터 ‘프롬더바디’의 박은지 트레이너가 스쿼트 랙(squat rack)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선일여중, 경희여중, 대안학교 등 교육 현장에서 ‘자기방어훈련’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박 트레이너는 최근 &lt;여자는 체력&gt;을 펴냈다. 김지윤 기자
지난 7일 오후 서울 성동구에 있는 운동센터 ‘프롬더바디’의 박은지 트레이너가 스쿼트 랙(squat rack)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선일여중, 경희여중, 대안학교 등 교육 현장에서 ‘자기방어훈련’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박 트레이너는 최근 <여자는 체력>을 펴냈다. 김지윤 기자

-주변 어른들이 청소년 ‘몸’에 주는 피드백도 중요할 것 같은데.

“여학생들이 자기 몸을 혐오하는 것은 내가 중학생이던 20여년 전과 다르지 않다. 최근 중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자기 몸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위를 그려보고, 왜 그런지 말해 달라고 해본 적 있다. ‘키가 너무 작아요(또는 커요)’ ‘허벅지에 살이 쪘어요’ ‘피부가 까매요’ 등 미디어에 나오는 ‘실체 없는 몸’과 비교하며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긴 세월 동안 내 몸을 지독히 혐오한 여성으로서, 다이어트라는 이름으로 내 몸을 학대한 나날을 거쳐 운동처방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사람으로서 직접 경험한 ‘여성과 운동’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 책을 썼다.

여성 청소년들이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이 내 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미적 기준에 맞춘 어깨의 좁고 넓음이 아니라 ‘얼마나 기능적으로 단련된 어깨인지’ 등에 초점을 맞추고 운동을 시작해보면 좋겠다.

여학생이 ‘아, 나는 어차피 못해. 원래 힘이 약하니까’라며 자기 잠재력과 가능성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면 속상하다. 이럴 때 어른들이 무심코라도 ‘여자라서 약하다’거나 ‘사내 녀석이 그것밖에 못 하느냐’는 식으로 성별을 구분한 피드백을 주지 않도록 신경 쓰자. 아이 스스로 움직임의 범위, 세기, 속도에 대한 통제력을 키우는 데 주변의 피드백이 매우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가 성별뿐 아니라 인종, 성 정체성, 경제적 상황 등에 상관없이 체육 수업을 통해 존중받는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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