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에게 듣는 나의 전공/화장품 연구개발자 이혜원씨 “똑같은 브랜드라도 지난해에 산 화장품과 올해 산 화장품이 조금 다를 수 있어요. 고객이 요구하는 방향에 따라 제품 성분을 조금씩 조정하거나 더 좋은 품질의 원료로 바꾸거든요. 최근에는 촉촉한 느낌이 오래가는 화장품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서 그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 태평양 기술연구원 스킨케어팀 이혜원씨는 올해로 경력 6년째를 맞는 화장품 연구 개발자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석사학위를 받은 뒤 지난 2000년 신입사원 공채로 입사했다. 순수학문을 연구하던 그가 ‘화장품’이라는, 조금은 변덕스럽고 공식을 뛰어넘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성격 탓이다. “화장품은 유행에 민감하고 소비자들의 반응이 빠른 제품이니까 딱딱한 실험실 연구보다 훨씬 재미있고 변화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죠. 예상은 맞았지만, 그 만큼 바람 잘 날이 없다는 게 문제죠.”(웃음) 요즘 소비자들은 화려한 색조 화장보다 피부 건강에 도움이 되는 기초 화장품에 더 신경을 쓴다. 그의 책임이 더욱 무거워졌다. 기존 제품을 소비자 요구에 맞게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물론, “소비자를 감동시킬만한” 신제품도 만들어내야 한다. “미백 기능을 강화한다고 해서 미백 성분 원료를 무조건 많이 쓰면 안되거든요. 비타민이 좋다고 무조건 많이 바르면 안되는 것과 같죠. 효과가 좋은 화장품 원료일수록 지나치면 독이 됩니다. ” 시장의 요구와 제품의 콘셉트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안전한 제품을 만들려면,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소비자들의 기호와 유행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면서도, 다양한 임상실험을 거쳐 끊임없이 안전 여부를 검증하는 ‘과학자’로서의 면모를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신제품을 개발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년. 가격과 품질, 안전, 제품 경쟁력 등 신상품 출시에 필요한 요건들을 모두 고려해 드디어 제품을 세상에 내놓으면,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조바심이 난다.
“소비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마음에 들어할까. 온갖 생각에 잠이 안오죠. 인터넷을 뒤져가며 반응을 알아보기도 하고요. 반응이 좋으냐 나쁘냐에 따라 개발자들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죠.” 이 씨는 외국 브랜드의 시장 점유율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 “외국 브랜드 중에서 한국에 현지 연구소를 두고 한국인의 피부와 제품을 연구하는 곳은 한군데도 없거든요. 국내 업체들이 한국인의 피부에 맞는 화장품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와 연구 개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제 자부심이기도 하고요.” 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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