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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서울대 “패키지 하나에 27억…학술지 전자구독 보이콧 할 판”

등록 2021-03-17 18:32수정 2021-03-18 07:21

김명환 관장, 서울대 구성원 공개서한 보내
“2021년 엘스비어(사이언스 다이렉트) 구독에만 27억원”
지식공유연대 “교육부, 공개접근 출판지원 사업 전면실시해야”
서울대학교 정문.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대학교 정문.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이 엘스비어 등 거대 학술지 출판사들이 독점하는 전자자료 구독료를 대학 재정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며 ‘보이콧’을 언급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대학과 연구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김명환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은 지난달 16일께 학내 구성원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매년 인상되는 전자자료 구독료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17일 해당 서한을 보면, 김 관장은 “전자자료 구독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3~9% 정도로 인상되는 구독료와 환율 차이로 인한 손해액 등으로 누적 적자가 2020년까지 21억2천만원에 이르렀다”며 “누적 적자 외에도 2021년 엘스비어(사이언스 다이렉트) 전자자료 구독만을 위해 27억원을 지불해야 했는데 중앙도서관 전체 전자자료 예산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해외 주요 대학의 도서관들이 거대 학술지 출판사들에 맞서 보이콧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서울대도 국내 다른 대학과 연대해 보이콧에 앞장서야 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는 올해 초 예산 부족을 이유로 의약학 분야 저널인 포틀랜드 프레스저널과 조선일보 아카이브 등 16개 전자자료에 대한 구독을 중단했다.

엘스비어의 사이언스 다이렉트 누리집 갈무리.
엘스비어의 사이언스 다이렉트 누리집 갈무리.

엘스비어는 2천600개에 이르는 학술지를 발행하는 세계 최대 규모 학술지 출판사이자 유통회사다. 과학연구 정보 데이터베이스인 ‘웹 오브 사이언스’에 게재되는 논문의 절반이 세계적으로 가장 규모가 큰 엘스비어와 스프링어, 와일리 세 곳을 통해 출판된다.

그러나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용 금액이 비싸다는 게 문제로 지적돼왔다. 김 관장은 외국 사례를 소개하며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공개접근(Open Access) 출판 운동을 대안으로 조심스레 제기했다. 김 관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활발하게 공개접근(OA) 출판 운동이 제기되고 있다. 유럽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공개접근 출판 전환계약을 조건으로 와일리, 엘스비어와 협상이 진행됐다”고 전했다. 공개접근 출판 방식은 기존에 학술지 출판사가 논문 출판비용을 대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나 연구자가 소속된 대학 쪽에서 출판비용을 감당하는 대신 논문의 구독료를 ‘0’원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공개접근 출판은 도입 초기에는 빠르게 성과를 내고 싶은 일부 연구자의 욕심과 영리를 추구하는 일부 학술지의 이익이 맞물리면서 ‘와셋’, ‘오믹스’ 등 함량 미달 학술지 출판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엘스비어와 같은 수준 높은 학술지 출판사들도 공개접근 출판 계약을 속속 맺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UC) 소속 10개 대학은 엘스비어 자료 구독료로만 매년 120억원이 넘는 금액을 지급해 오다가, 16일(현지시각) 공개접근 출판 전환계약을 맺었다.

국내 대학 중에서는 가장 예산이 많은 서울대가 공개적으로 전자자료 구독 비용 부족을 토로하면서 ‘공개접근’ 방식의 논문 출판을 소개한 것은 이례적으로, 학계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이어질지 주목된다. 학계에서도 서울대 도서관의 호소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산대학교 도서관장을 지낸 이수상 부산대 교수(문헌정보학과)는 <한겨레>에 “코로나19 중에 학술자원이 인류의 지식으로 공공재라는 인식이 확산했고, 코로나19 관련 논문은 모두 공개접근 출판이 된 것도 영향이 있었다”며 “거대 학술지 출판사와 대학의 관계는 뉴스 전재 계약을 맺는 포털사이트와 언론사의 관계와 같아, 개별 대학 차원에서는 대응하기 어려우므로 국내 대학들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공유접근 출판 방식을 주장해오고 있는 지식공유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 “학술연구의 결과는 사회적 축적과 협업의 결과로 독점되지 않고, 가능한 널리 더 자유롭게 이용될 때 보상도 더 커질 수 있다”며 “연구자의 권리를 지키고 연구성과를 헐값에 영리 업체에 양도하지 않는 공개접근 출판지원 사업을 교육부가 전면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아래는 김명환 서울대 중앙도서관장 서한 전문.

안녕하십니까? 설 명절 잘 지내셨을 줄 믿습니다.

전자자료 구독 문제와 관련하여 학내 연구자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고자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중앙도서관에서는 지난해 말 학내 의견조회 등 절차를 거쳐 이용이 저조한 전자자료 상당수를 구독 중단했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듯이, 이는 예산 압박에 따른 조치였으며 다행히 구독 중단 대상 전자자료 중에서 각 학과(학부)에서 구독 유지 요청이 들어온 자료들은 빠짐없이 계속 구독하게 되었습니다.

중앙도서관의 전자자료 구독 문제는 지난 10년 이상 악화되어 온 뜨거운 이슈입니다. 자료구입 예산은 한정되어 있지만, 각 분야의 연구에 필요한 전자자료 구독 유지를 위해 해마다 3~9% 정도로 인상되는 구독료와 환차손 등으로 누적 적자는 작년 2020년까지 약 21.2억원에 이르렀습니다. 누적적자 외에도 2021년 엘스비어(Elsevier)의 ScienceDirect 전자자료 패키지 구독만으로도 약 27억원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는 중앙도서관 전체 전자자료 예산의 3분의1 이상을 차지할 정도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ScienceDirect에 대해 종량제 전환(학내 연구자 1명이 1년에 이용 가능한 논문 수를 제한하는 제도로서 부산대가 2년 전부터 시행)도 고민했지만, 다행히 대학본부가 5.1억원의 예산을 추가 지원하는 동시에 엘스비어 측도 구독 모델을 일정하게 변경해줌으로써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도서관의 지속적인 예산 추가 요구에 대한 대학본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올해 법인 예산에서 자료구입비 6.4억 원을 증액했을 뿐만 아니라 20억이 넘는 누적적자를 일괄해서 해결했습니다. 그러나 예산 증액이 기존 전자자료를 모두 유지할 수 있는 규모가 되지 못해 부득이 일부 이용이 저조한 전자자료를 끊게 되었습니다. 물론 신규 자료들도 심의절차를 거쳐 일부 구독을 시작함으로써 새로운 학문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자자료 문제는 우리 서울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국내 모든 대학과 연구소가 같은 고민을 안고 있으며, 지난 십여년간 KERIS, KISTI 등의 기관에서 컨소시엄 협상단을 구성하여 엘스비어, 스프링거, 와일리 등 해외의 거대 출판사를 대상으로 협상력을 강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지난 2018년에는 서울대를 중심으로 거점국립대학교 도서관장이 모여 ‘전자저널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국회와 협력하는 등의 노력도 있었습니다.

해외에서도 거대 출판사의 독점적이고 일방적인 구독료 인상에 맞서는 동시에 지식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오픈 사이언스 운동의 일환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활발하게 Open Access 운동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유럽의 경우 2018년부터 2020년까지 OA 출판 전환계약을 조건으로 와일리, 엘스비어와 협상이 진행되었으며, 와일리는 독일, 스웨덴 등에서 2019년 OA 출판 전환 계약의 최종 모델인 PAR 모델로 계약을 체결하였고, 엘스비어의 경우 스웨덴, 노르웨이와 OA 출판 전환으로 계약이 체결되었으나, 독일의 경우 협상이 결렬되어 ScienceDirect 구독이 중단되었습니다. 이렇게 각 국가에서 개별 협상이 진행됨과 동시에 2018년 9월 유럽의 12개국이 2021년까지 각국 정부와 공공기관의 연구비로 수행한 연구결과를 논문으로 출판 시 무조건 OA 로 출판한다는 ‘OA 2020’, ‘PlanS’와 같은 이니셔티브 아래 OA 확산을 위한 목표를 세우고 국가적 차원에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미국의 경우도 University of California의 10개 캠퍼스가 단결하여 출판비(APC)와 논문이용료를 통합하여 구독비용을 낮출 것을 엘스비어에 요구함과 동시에 캘리포니아 대학 소속 연구자의 연구논문을 OA로 이용하도록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2019년 2월 협상은 결렬되었고 2020년 7월 협상이 재개되었지만, 줄다리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각 나라에서는 협상이 결렬되는 일이 잦고, 협상 결렬 후 독일의 연구자들은 엘스비어 관련 저널의 편집장과 편집, 자문위원회 등을 사임했고, UC 교수진 사이에서는 이메일을 통하여 Cell Press를 비롯한 엘스비어 관련 저널에 논문 투고를 거부하는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개별 도서관에서는 연구자가 필요한 논문을 다른 Open Access 사이트를 찾거나 상호대차를 이용하고, 심지어 필요한 논문을 개별 구매하여 연구자에게 신속하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엘스비어에 연간 수백만 달러를 지불해온 뉴욕, 노스캐롤라이나, 아이오와 주립대, 플로리다 주립대학 도서관 등 개별 대학들도 2020년 구독계약을 취소하고 개별 저널에 대해 선별적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플로리다 주립대학은 대학평의회에서 만장일치로 도서관과 엘스비어의 빅딜 계약 취소를 지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으며, 소속 교수들은 도서관 예산의 확보가 중요함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국내와 해외의 고등교육기관과 정책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자자료 구독에 대한 논란은 뚜렷한 성과 없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올해 국내대학 도서관의 컨소시엄인 KCUE 협상단이 와일리와의 협상을 재개할 예정이고, 서울대는 엘스비어와의 3년 계약이 끝나는 2023년에는 다시 어려운 협상을 시작해야 합니다.

해외 주요 대학의 도서관 책임자들은 결국 거대 학술출판사들의 전자자료에 관한 횡포에 맞서기 위해 보이코트 운동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이 보이코트의 성공 여부는 학내 연구자들의 이해와 지지임을 강조합니다.

우리 서울대도 국내 다른 대학들과 연대하여 보이코트에 앞장서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올해처럼 해마다 구독 중단 혹은 신규구독을 결정하기 위해 각 학과의 우선순위를 요청하여 구독 순위를 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작년에 실시한 구독 순위 평가기준을 보완하여 분야별로 꼭 필요한 저널이 중단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여러분들의 이해와 지지를 호소합니다.

전자자료 문제는 예산 증액과 도서관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우며, 이제는 대학도서관만이 아니라 국가적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문제와 관련하여 자주 알려드릴 예정이오니 깊은 이해와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건강 조심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2021. 2. 16.

중앙도서관장 김명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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