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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쓰인 안내문…살아 있는 언어교육장이죠

등록 2021-06-14 18:16수정 2021-06-15 10:47

연재ㅣ쉬운 우리말 쓰기
동·식물원 속 우리말 ①

‘봉입’ ‘불비’ ‘귀책사유’…
어려운 용어가 소통 가로막아

숙제하러 많이 가는 장소에선
교육적 효과 높이는 언어 필요
난감했다. 몇달 전 ‘쉬운 우리말 쓰기’ 연재 의뢰가 들어왔을 때 ‘쉬운 우리말’이란 어려운 한자를 죄다 풀어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쉬운 우리말 쓰기보다는 한자로 이루어진 단어를 국어사전으로 하나씩 찾아보면서 어휘력과 사고력을 키우는 게 좋다고 말하면 요즘 말로 젊은 꼰대 소리도 들을 테다. ‘국민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자 사랑꾼(?)으로 지내왔기에 ‘꼭 풀어 써야만 할까?’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지난달 29일 서울 광진구 서울어린이대공원 동물원에서 한 가족이 재규어에 관한 설명을 보고 있다. 박물관이나 동·식물원 등 공공영역에 놓인 안내문은 시민들이 직접 마주하는 ‘살아 있는 언어 현장’이므로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이 더욱 필요하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지난달 29일 서울 광진구 서울어린이대공원 동물원에서 한 가족이 재규어에 관한 설명을 보고 있다. 박물관이나 동·식물원 등 공공영역에 놓인 안내문은 시민들이 직접 마주하는 ‘살아 있는 언어 현장’이므로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이 더욱 필요하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공공영역서 치러야 할 언어 비용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다. ‘언어 비용’이라는 게 있단다. 공공영역에서 ‘봉입’ ‘불비’ ‘귀책사유’ 등 어려운 용어 때문에 치러야 하는 시간 비용이 꽤 된다고 한다. 2010년 국립국어원의 ‘공공언어 개선의 정책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행정 용어뿐 아니라 정책 이름에도 어려운 말이 붙어 국민과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박물관이나 동·식물원 등 공공영역에 놓인 설명문은 시민들이 직접 마주하는 ‘살아 있는 언어 현장’이다.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의 필요성도 커진다. 김형주 교수(상명대 국어문화원)는 “서울식물원의 하루 평균 방문객이 1만8천여명이다. 1년이면 1천만명가량이 왔다 간다. 학명일지라도 팻말 등에서 시민들이 어려운 말을 접했을 때 느끼는 불편함이 있을 것”이라며 “아이에게 설명을 못 해줘 부끄럽거나 짜증을 느끼는 것 등 스트레스도 언어 비용에 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식물원에는 아이들이 숙제하러 많이들 갈 텐데 이때 쉽고 아름답게 쓰인 우리말을 접하면 교육적으로도 효과가 더욱 좋을 거라는 이야기다.

‘생업’을 위해 찾은 동물원

지난 5월29일 토요일 서울 광진구에 있는 서울어린이대공원 동·식물원을 찾았다. 가족 단위로 대공원을 찾은 시민들을 만나 어려운 표현이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귀여운데 (갇혀 있어서) 불쌍해요”라고 말하며 ‘검은꼬리 프레리도그’를 구경하던 최규원(12) 학생은 설명판에 쓰인 ‘군집성 동물’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군집성’은 ‘사람이나 동물이 여럿이 한곳에 떼를 지어 모이려는 성질’을 뜻한다. ‘군집’의 순화어로는 ‘무리’가 있다.

아프리카에 사는 동물과 부족에 관한 설명문을 보는데 ‘생업’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살아가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고 풀어보니 주말에 일하는 내 처지를 더욱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생업과 비슷한 말로는 벌이, 직업, 산업 등이 있다.

‘방화용수’가 뭔가요?

식물원으로 이동했다. 얼마 전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어서인지 식물원에 입장하자마자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멋들어진 나무를 보며 내내 감탄하다가 마스크를 쓰고 무리 지어 오는 네 명의 여학생들을 만났다. 말을 걸었고 동행하기로 했다.

서울어린이대공원 식물원. 김지윤 기자
서울어린이대공원 식물원. 김지윤 기자

“‘방화용수’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한국이 원산지인 ‘인동과’의 ‘아왜나무’ 앞에서 학생들은 고민에 빠졌다. 아왜나무의 설명문은 이랬다. ‘불에 잘 타지 않아 방화용수나 생울타리용으로 이용한다’.

학생들의 추리가 시작됐다. “방화가 불을 막는 거잖아. 용수는 물 같은 거고. 그러면 ‘불 끄는 물’이라는 뜻이려나?” 찾아보니 ‘방화용 수목’(防火用 樹木)을 줄인 말이었다.

방화용 수목은 화재를 방지하거나 지연시킬 목적으로 심는 나무류인데, 비교적 잎이 두껍고 함수량이 많으며 수관층이 치밀하게 발달한 활엽수종이 적당하다고 한다. 가시나무, 굴거리나무, 동백나무, 사철나무, 식나무, 후박나무 따위를 방화용 나무로 쓴다.

나무는 불이 나면 그저 태워지고 마는, 수동적인 존재로만 여겨왔는데 자신의 몸은 물론 숲까지 지킬 수 있는 쓰임새의 나무가 있다니!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를 읽고 나무를 더 이상 정적이거나 소극적인 생명으로 생각하지 않게 됐는데 아왜나무를 만나 반가웠다.

‘생(生)울타리’도 낯설어 찾아보니 ‘산울타리’의 비표준어이다. 산울타리는 산 나무를 촘촘히 심어 만든 울타리로 탱자나무, 측백나무 등을 주로 이용한다. 산울타리는 ‘산울’이라고도 한다.

사총사의 날카로운 취재

초록빛이 이어지는 식물원 길을 따라 아이들과 취재 겸 산책을 이어갔다. 사총사는 나와 몇차례 대화를 나눈 뒤에는 사명감이 생긴 듯 날카로운 눈으로 ‘취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남양삼나무 앞에 섰다.

“여기 ‘세계 3대 정원수 중 하나로 수형이 매우 아름답다’고 되어 있는데요. 중학생인 우리는 대충 뜻을 알겠는데 어린 동생들에겐 ‘수형’이라는 말이 어렵지 않을까요?” 수형은 ‘종류나 환경에 따른 특징을 지닌 나무의 모양’을 뜻한다. 사전에 따르면 뿌리, 줄기, 가지, 잎 따위로 전체의 모양을 이루고 높이에 따라 교목(喬木), 아교목, 관목(灌木)으로 구분한다고 돼 있다.

두릅과인 ‘헤데라 헬릭스’에서는 ‘지피식물’이라는 말이 어려웠다. ‘아이비라고도 불리며 지피식물로 이용된다’라는 설명에서다. 지표를 낮게 덮는 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숲에 있는 입목(땅 위에 서 있는 산 나무) 이외의 모든 식물로 조릿대류, 잔디류, 클로버 따위의 초본(지상부가 연하고 물기가 많아 목질을 이루지 않는 식물)이나 이끼류가 있다.

풀어 쓰니 쉽게 다가오는 뜻

이 밖에 우리가 찾아낸 말들은 ‘엽란’ 설명판에 적힌 ‘이뇨제’ ‘강심제’ ‘거담제’, ‘드라세나황필립’ 설명문에 쓰인 ‘총칭’, 수경식재관의 ‘식재’, ‘트리안’에 관한 설명에서 ‘줄기가 와이어처럼 가늘고 질겨서 와이어 플랜트라고도 불린다’ 등이다. 운향과 금감(금귤)을 설명한 ‘남부지방에서 과수로 심는다’에서 ‘과수’, 식물원 2층에 주제별로 꾸며진 작품 중 ‘고향산천’에서는 ‘고사목’이 어려운 말로 꼽혔다.

이뇨제는 오줌을 잘 나오게 하는 약제, 강심제는 쇠약해진 심장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약, 거담제는 가래를 묽게 하여 삭게 하는 약인데 병원과 온갖 약에 익숙한 어른에게만 쉬운 단어인 듯싶었다. ‘총칭’의 비슷한 말은 ‘통칭’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는데 더 쉽고 쓰기 편한 우리말은 없을까?

초목을 심어 재배한다는 뜻을 가진 ‘식재’의 비슷한 말은 재배라고 한다. 와이어는 여러 가닥의 철사를 합쳐 꼬아 만든 줄이라 바꾸어 쓰면 어떨까. ‘과수’의 경우 아이들에게 ‘과수원’을 말해주니 바로 알았지만 단독으로 쓰이니 ‘열매를 얻기 위하여 가꾸는 나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 쉽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고사목은 ‘말라서 죽어버린 나무’라고 풀어보니 오히려 전시실의 작품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사총사와의 즐거운 만남을 뒤로하고 식물원을 나왔다.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입구로 가는 길, 커다란 돌탑에 적힌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을 차근차근 읽어봤다.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고 나라의 앞날을 이어 나갈 새사람으로 존중되며…’. 영유아나 어린이의 출입을 금지하는 곳을 뜻하는 ‘노 키즈 존’이라는 차별 언어가 신조어 자격을 가지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늘 못마땅하다. 그나저나 ‘헌장’은 어떻게 바꿔 쓸 수 있을까?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감수 상명대학교 계당교양교육원 교수 서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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